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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의 화폐개혁에 대한 상반된 평가

오늘을 마무리하는 발췌 포스팅.국민정부는 은본위제를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 위에, 1935년 11월 4일 (...) 폐제개혁을 급히 선포하였다.(...)종래 폐제개혁과 미국 은구입 정책에 대한 평가로는 영미일의 중국 화폐권 쟁탈의 결과라는 견해가 대부분이었다. 즉 미국의 은구입 정책은 중국 폐제개혁에 대한 영국의 주도적 역할을 의식하여, 국민정...

1935년 중화민국 화폐개혁에 대한 잡상

국민정부는 1933년 3월, 그때까지 사용되던 은의 화폐단위 '량'을 '위안'으로 일원화시키고(폐량개원) 나아가 관리통화 체제로 이행을 꾀했다. 1935년 11월의 화폐제도 개혁이다. 국내에 유통되는 은을 국유화하고 그 대신에 정부계 은행이 발행하는 지폐인 '법폐'를 통일 화폐로 정하는 획기적인 조치였다.당연히 법폐가 안정적인 통화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

중화민국 군벌들에 대한 재평가? -사천성을 중심으로-

민국 시기 엄연히 중국을 지배했던 지역 정권 혹은 체제 자체를 정면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던 것은 대략 실사구시적 연구가 중시되면서부터였다. 중화민국사나 국민정부사 등 새로운 연구 분야에 주목하는 등 중국근현대상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과거 혁명사, 공산당사 위주의 역사연구 방법론이 유행했던 시기에 사천에 대해서는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서 무력을 근...

국민정부는 군벌이나 득실거리던 오합지졸에 불과하지

간단히 갈기는 잡글인데, 국민정부를 논하는 얘기들을 보면 중화민국? 그거 순 군벌이나 가득하고 통일은 사실상 안되었던 거 아니냐?라는 식으로 폄하하는 경향이 많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 근거로 반장전쟁, 중원대전 등을 들먹이면서 '이렇게 장개석에게 개기는 놈들이 많은데 통일은 무슨 통일이냐? 모택동 없었으면 중국 통일은 불가능했을 것'라는 식으로 결론을...

북양정부의 빚내기 놀이

위안스카이가 집권한 1912년부터 1916년까지 중앙과 지방은 총 68회에 걸쳐 5만 5646여 만량에 달하는 외채를 조달하였다. 50회의 외채는 주로 군비지출에 사용되었고 그밖에 철도, 전신 건설 등에도 사용되었다. 1912년에서 1927년으로 시기를 확대해보면 외채를 468회 빌렸고, 총대출금은 13억 4800만 원에 달했다.(청나라는 208회,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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