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이 회고하는 대약진운동 북괴 이야기

1958년 11월, 나는 김일성을 수행하여 서기실장과 함께 중국과 베트남을 방문했다. 나로서는 베트남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 본토 방문도 처음이었다. 중국은 대약진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중국 측에서는 김일성을 마중하기 위해 간부들이 단둥까지 나와 있었다. 간부들 가운데는 외교계에서 일하는 조선 동포들도 섞여 있었다. 11월 말경인데도 밭에 추수하지 않은 옥수수와 수수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어서 내가 물어보았다.


"왜 저 옥수수와 수수는 추수하지 않습니까?"
"아, 저거 말입니까? 저것들은 추수를 하나마나입니다. 내년부터는 1정보부터 200톤 내지 600톤의 소출을 내는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농민들이 추수를 서두르지 않고 있습니다."

당시 중국은 심경밀식(소위 빽빽이 심기...)의 방법으로 엄청난 수확을 올릴 수 있다고 떠들어댔다. 우리가 중국으로 향하기 전에 중앙당에서도 소문이 돌기를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소련이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것에 비할 데 없이 큰 사변이라고들 했다. 그들은 벼를 빽빽이 심은 논의 벼이삭 위에 아이가 올라앉아 있는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열차가 산해관을 지나자 밤이 깊어졌다. 그런데 철길 옆으로 불빛이 이어졌다

"저 불빛은 뭡니까?"

동행한 중국 관리가 대답했다.

"예, 저건 토법으로 강철을 생산하는 불빛입니다. 우리 중국은 앞으로 15년 안에 영국을 따라잡기 위해 대약진을 하고 있습니다. 강철도 전체 인민이 현대식 용광로를 쓰지 않고 저렇게 재래식으로 생산하고 있습니다."

(...)

다음날 김일성이 돌아와 말했다.

"마오쩌둥을 만났는데, 중국에서는 앞으로 경지면적을 3분의 1로 줄이고 나머지는 목장과 공원을 조성한다고 하는군. 3분의 1에만 농사를 지어도 식량이 남아돈다는 거야."

우리는 다음날 저우언라이 총리의 안내로 무한의 어느 인민공사를 방문했다. 도중에 목화밭을 지날 때였다. 김일성이 갑자기 차를 세우더니 수행하는 인민공사 사장에게 목화를 1정보당 얼마나 따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사장은 15톤을 딴다고 대답했다. 또 밀밭에서는 1정보당 70톤을 수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북한에서는 3톤을 겨우 수확하는 정도였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전국에서 올해 5억톤의 양곡을 생산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그 이듬해 가을, 중국에서 우리를 안내했던 교포가 평양의 친척집을 방문했다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중국의 1958년 양곡 총 생산고는 5억 톤이 아니라 1억 8천만 톤이라면서 식량이 모자라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다고 했다.

황장엽 회고록, 시대정신, 145~148페이지, 

여담.
대약진운동은 김일성의 외국 의심병이 좋은 결과를 낳은 얼마 안된 사례가 될 것 같은데 3분의 1의 경작지만 재배해도 대성공할 수 있다는 중국의 주장에 혹한 국가계획위원장 이종옥 등이 북한에서도 대약진을 할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김일성은 외국 방식을 기계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교조주의적인 일이라고 주장하며 평양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중화 시험재배장에서 중국에서 하는 것처럼 빽빽하게 농작물을 재배해보았다. 중국의 이론대로라면 400톤을 수확했어야 했지만 4톤 밖에 수확량이 나오지 않았고 김일성은 당연히 대약진운동을 따라하지 않았다.

김일성 의문의 1승....

덧글

  • 無碍子 2018/10/28 21:00 # 답글

    밀식대신 다락밭으로...~~ 결과는같은듯합니다.
  • 2018/10/28 22:3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KittyHawk 2018/10/29 00:17 # 답글

    그러나 그 북괴는 결국 주체농법에 의해...
  • ㅇㅇ 2018/11/06 09:24 # 삭제 답글

    시간나면 나중에 태영호씨가 쓴 3층서기실의 암호관련 내용좀 알수있을까요>
  • 전위대 2018/11/08 12:59 #

    시간 되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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