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학은 왜 이상주의적으로 시작되었는가? 2차 대전

본격적으로 국제정치학에 대해 공부하면서 공부삼아 써보는 포스팅.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과 마찬가지로) 국제정치학의 경우도 처음부터 목적론적 측면이 두드러졌다. 그것은 (1차) 세계대전의 참화에서 비롯되었다. 이 새로운 학문의 창시자들의 한결같은 목적은 국제정치라는 육체에 전쟁이라는 질병이 도지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전쟁을 방지하자는 열정이 이 학문의 방향과 내용을 지배했다. 다른 모든 유치학문과 마찬가지로 국제정치학은 솔직히 유토피아적인 성격이 두드러졌다. 초기 단계에는 소망이 사고를, 이론화가 관찰을 앞섰다. 있는 사실과 쓸 수 있는 사실 수단에 대한 분석은 거의 없었다. 거의 전적으로 목표에만 매달렸다. 목표의 중요성을 강조한 나머지 수단에 대한 분석적 비판은 파괴적이거나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출발하는 미국의 윌슨 대통령에게 한 보좌관이 <국제연맹>에 대한 그의 복안이 성공할 것이라고 믿느냐고 묻자 윌슨은 이렇게 대답했다.

"안되면 되게 하라!"

국제경찰, 혹은 집단안전보장이나 기타 국제질서에 대한 여러 복안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비판론에 대응하는 방식은 대개 그 복안이 왜, 그리고 어떻게 작동할 것이라고 설명하는 대신 그것이 실패할 경우 초래될 결과를 강조하면서 반드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아니면 대안을 내어 보라는 식이었다. 연금술사들이나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자들도 누가 납이 어떻게 금이 되는가, 혹은 인간이 어떻게 사회주의 모델 사회에서 살 수 있는가 물으면 아마 그런 식으로 대답했을 것이다. 비판적 사고는 무시되었다.

1919~39년간 국제정치에 대한 저작들은 경제학자 마셜이 성급한 유토피아적 주장의 무책임한 신경질을 마치 실력없는 장기꾼이 혼자 초와 한 말을 다 움직여 장기를 두는 것에 비유한 것과 같았다. 이와 같은 지적 실패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이 시기 초기에는 장기꾼의 실력이 워낙 형편없어 실력 있는 훈수꾼조차 게임이 어렵다는 사실을 거의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1931년 이후 드러난 일련의 사태로 인해 의욕만으로 국제정치학의 기반을 삼을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다. 국제문제에 대한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생각이 발붙일 수 있는 여지가 겨우 마련된 것이다.

20년의 위기, E.H 카, 녹문당.
12~13페이지.

여담

1. 실제로 국제정치학이 태동하던 1910년대는 낙관적이기 그지 없었다. 1차 세계대전 직전에 더 이상은 전쟁은 불가능하다는 노먼 에인절의 <거대한 환상>이 출간될 정도였으니.

2. 고전적 현실주의 이론가 키신저 역시 자신의 저작인 <세계질서>에서 윌슨의 전후 구상에 대해 경직된 강국과의 동맹으로 유지되던 질서를 불안정한 집단안보로 바꾸었을 뿐이라고 혹평한다.

3. 본문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카는 1910~30년대의 이상주의적 국제정치학 학풍을 들어 연금술이나 플라톤의 철인정치론에 비유한다.

덧글

  • 파리13구 2018/09/12 10:55 # 답글

    국제정치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환영하지만,

    지금 읽고 계신 책은 최악의 번역 중 하나이니

    참고 바랍니다. ^^

    국제정치학에 대한 흥미를 읽게 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ㅠ
  • 전위대 2018/09/12 11:09 #

    어억... 안그래도 읽으면서 오타가 많아서 몇개 수정해가면서 포스팅했는데 그런 비하인드가...

    충고 감사합니다.
  • 까마귀옹 2018/09/12 12:50 # 답글

    1931년 이후의 사태라면.....뭐 뻔하군요. 경제 대공황, 만주 침공, 뮌헨 협정, 스페인 내전, 그리고 '1차 세계대전보다 더 화끈한 블록버스터 속편'.
  • 전위대 2018/09/12 13:56 #

    이제 낭만은 죄악이다 ㅠ
  • Fedaykin 2018/09/12 14:09 # 답글

    ㅋㅋㅋㅋ연금술ㅋㅋㅋㅋ수은으로 금을 만들어야한다! 아니면 경제가 망한다! 아니면 다른 대안을 내놔봐라!
    크..바로 이해가 가는 비유의 힘이네요
  • 함부르거 2018/09/12 17:31 # 답글

    과학도 그랬지만 모든 학문은 연금술과 다를 바 없는 돌팔이로부터 시작하는 거군요. ㅎㅎㅎ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8/09/12 22:40 # 답글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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