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덕분에 잠시 부활한 토법고로 ㄴ공산중국

이 행님 하는 거 보고 잘 배우라 해~


(1969년, 중국과 소련의 긴장 상태가 고조되자) 도시에 남은 사람들에게는 전쟁에 대비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상하이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 소책자가 배포되어 사람들에게 포탄 궤적이 그냥 수직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행기의 진행 방향으로 사선을 그린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핵공격이 가해질 경우에 대피하는 요령, 참호를 파는 요령, 소총을 이용한 대공사공요령, 건물의 안전한 쪽에 대피하는 요령, 응급 처치 요령, 화재 진압 요령, 외국 전투기 식별 요령 등을 설명했다. 소련과 미국의 항공기와 헬리콥터에 부착된 표식과 전체적인 형태를 설명하는 광고판도 등장했다.

(...)

헌혈을 부추기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무엇보다 참호와 방공호를 파서 국가에 기여하도록 요구했다. 주석은 <동굴을 깊게 파고 최대한 많은 곡물을 저장하라>라고 독려했다. 이미 1965년 6월에 마오쩌둥은 <집 아래에 대략 1미터 깊이로 대피소를 파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모든 집을 땅굴로 연결한다면 그리고 집집마다 각자 대피소를 구축한다면 국가로서는 어떠한 비용도 부담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라고 제안했던 터였다. 독일군이 치열한 백병전을 벌이며 거리의 모든 집에서 러시아인들과 싸워야 했던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연상시키는 종말론적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그는 모든 도시가 시가전에 대비하여 준비를 갖추길 바랐다.

(...)

적어도 수도에서 주석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 건설 광풍이 불면서 베이징은 1년 이상 흙더미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벽돌로 뒤덮였다. 백화점과 정부 청사 내부에 깊은 땅굴이 파였으며 이 땅굴은 좁은 터널과 벙커를 바탕으로 엘리베이터까지 갖춘 거대한 규모의 지하 세계와 연결되었다. 한편 톈안먼 광장에는 군이 인민 대회당을 미로 같은 터널과 연결하는 막대한 임무를 맡으면서 기중기과 파일 드라이버를 가리기 위해 거대한 광고판이 등장했다.

(...)

사람들은 또 벽돌을 기증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강철 생산량을 부대로 늘리라는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토법고로를 만들었던 대약진 운동이 떠오를 정도로 모든 마을과 도시에 벽돌을 굽는 임시 가마가 등장했다. 땅을 팔 때 나오는 진흙으로 벽돌을 만들어서 지하 대피소를 보강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베이징에서는 거대한 흙더미 주변에 진흙 가마들이 등장했고 1인당 벽돌 서른개씩 할당량이 주어졌다. 어쩌면 이미 예상했겠지만 벽돌에는 반소 구호가 새겨졌다. 

한 보고서가 열변을 토했듯이 상하이에서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집에 있는 닭장과 수도를 허물어서 벽돌을 가져왔다. 심지어 침대와 가구를 괴거나, 담장을 보강하거나, 난로를 받치거나, 바닥에 깔았던 벽돌을 가져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사람들은 임시 가마에 사용할 석탄을 기증했다. 이들 임시 가마를 통해 기존의 건물에서 회수하거나 찾아낸 것을 제외하고도 700만 개에 달하는 벽돌이 생산 된것으로 알려졌다.

사망자 수는 벽돌 개수만큼 꼼꼼히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모래나 돌, 점토, 벽돌 등으로 제작한 일부 가마가 무너지거나 폭발한 사례를 고려하면 그 수가 결코 적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상하이에서 1971년 국경절을 맞이하여 벽돌 생산량 신기록을 달성하고자 했을 때 푸퉈 구역의 가마 중 하나가 무너지면서 열두명이 매몰되거나 부상을 당했다. 임시 가마는 1970년대 중반까지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했다.

(...)

무지막지한 공을 들였음에도 대부분은 쓸데없는 짓에 불과했다. (...) 결과적으로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토끼 굴같은 지하 시설은 완성과 동시에 빠르게 사람들에게서 잊혀갔으며 곰팡이와 해충에게 점령당했다. 머지 않아서 많은 땅굴이 폐쇄되었다. 지하 연결망은 군사 기밀로 간주되었고 맨손으로 그처럼 엄청난 일을 해낸 당사자들에게 출입이 금지되었다.

문화대혁명, 프랑크 디쾨터, 열린책들.
332~339페이지.

여담

1. 당연하지만 주석님께서 전문가들을 머리에 마구니가 가득 찬 부르주아라고 비난해주신 덕분에 공사에 전문가들의 개입은 없었고 많은 공사장이 부실공사로 매몰되거나 지반 째로 함몰되어 수많은 시민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2. 나중에 이런 짓은 북한에서도 하는데 미친 놈들 특징은 이런 짓을 기술에 의존하는 나약한 부르주아지들에 대비되는 사회주의 로력 영웅이라고 칭송한다는 점이다.

3. 결국 마오가 잘못했네.

덧글

  • KittyHawk 2018/08/30 16:59 # 답글

    스위스처럼 할 게 아니라면 하지 말아야 할 짓을...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8/08/30 21:20 # 답글

    반우파운동, 참새대학살, 대약진, 토법고로, 문화대혁명. 디쾨터 책 한 페이지를 다시 봐도 영화 이블 데드의 네크로미콘을 뛰어넘을 정도야. 미래의 인류가 크툴루 신화를 다룰때 마오를 니알라토모씨의 분신으로 그려야 하나 싶네요. 강철의 대원수로 할려나~?
  • 존다리안 2018/08/30 21:26 # 답글

    정신력....그러고 보니 이거 대전기 왜군들도....
  • 명탐정 호성 2018/08/31 01:27 # 답글


    사망자 수는 벽돌 개수만큼 꼼꼼히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모래나 돌, 점토, 벽돌 등으로 제작한 일부 가마가 무너지거나 폭발한 사례를 고려하면 그 수가 결코 적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 아......
  • SUPERSONIC 2018/08/31 17:37 # 답글

    차라리 소련이 중국을 쳤어야 했는데...
  • 1111 2018/08/31 19:24 # 삭제 답글

    공산당 뽈갱이들은 왜 기술을 반동으로 보는걸까요
  • 전위대 2018/09/10 10:37 #

    사회주의 대약진에 태클을 걸어서요.
  • 냥이 2018/09/07 23:29 # 답글

    만약 지하 대피소가 쓸모 없어진 이후로 개인공간으로 쓸 수 있다고 허가 했더라면 지금까지 잘 유지 되었을껀데...( https://www.youtube.com/watch?v=SY59wxuW69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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