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일본군이라 해도 후임을 함부로 패면 이렇게 됩니다. 2차 대전

밤, 고타쓰에 들어가 책을 읽는데 구니오가 불쑥 찾아왔다. 앞서 신이치로한테서 구니오가 사라졌다는 말을 듣고 내내 걱정했는데 얼굴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

"도대체 어디 갔다 온 거야? 그것도 보름 씩이나."
"그냥 답례 인사를 좀 다니느라고..."

구니오는 화롯불에 손을 쬐면서 여느 때처럼 자포자기한 사람이 지을법한 엷은 웃음을 입가에 띄웠다. 나는 '답례 인사'가 무슨 뜻인지 대번에 알아듣지 못했는데, 알고보니 군대에 있을 때 이유없이 괴롭히거나 떄린 선임병들의 집을 한곳한곳 찾아다니면서 그때의 보답이라면서 기분이 풀릴 때까지 흠씬 패주고 왔다는 말이었다. 서쪽으로 야마구치현의 이와쿠니로부터 북쪽으로 아오모리현까지 돌아다녔다는데, 주소는 전역할 떄 확실히 적어뒀고 열차표 대신 사용할 전역 증명서까지 몇장 마련해뒀다고 하니 일찍부터 답례인사를 하기로 계획한 모양이었다.

"보고 싶어서 찾아왔다는 식으로 둘러대고 한놈 한놈 바깥으로 꾀어내서는, 아주 뒈지게 패버렸어. 군에 있을 땐 이놈이고 저놈이고 으스대는 꼴이 눈에 거슬렸는데, 사회에 나오니까 다들 부처님처럼 얌전해졌더라. 우리가 '수염 도깨비'라고 불렀던 햐쿠리하라 항공대의 선임반장 놈은 나가노현 오카야에 사는데, 2주 전에 식을 올리고 한창 신혼 재미에 빠져 있더라고. 끼니를 챙기는 것보다 우릴 패는 게 더 좋다고 떠벌리는 자식이었는데 말이지. 찾아갔을 때가 마침 저녁이라 색시와 둘만 있었는데, 그 자식은 그냥 집 안에서 패버렸어. 브래스너클을 낀 주먹으로 다짜고짜 코뼈를 날려버렸더니 그 자식 마누라가 꺄꺅 난리를 치기에, 내친김에 그 여자도 두세대 쥐어박아줬지. 뭐, 남편이 원한을 샀으니 부창부수지. 

제일 꼴사나웠던 건 이와쿠니 항공대의 분대장 놈이야. 그 자식은 사관학교 출신 중위였는데 말이지, 아주 미친놈처럼 날뛰었다고. 그놈한테서 맞아서 병원에 실려갔다가 나흘 만에 죽은 동기도 있고, 나도 앞니가 두대나 부러졌을 정도니까. 교묘하게 아부쿠마 강변으로 꾀어내서 흠씬 패주긴 했는데, 그 자식 글쎄 땅바닥에 엎드려서 고개를 처박고 우는 소리를 늘어놓는 거야. ....그때는 계급상 어쩔 수 없었다, 용서해라, 이렇게 사과할 테니 좀 봐달라... 그래서 내가 한마디 했지, 그딴 우는 소리 들으려고 후쿠시마현까지 일부러 찾아온게 아니라고. 그러고는 동기들 몫까지 해서 초주검이 되도록 패고 피범벅이 될 때까지 자근자근 밟아줬더니 강변에 두꺼비처럼 널브러지더라."

구니오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손가락 마디를 눌러서 우둑우둑 소리를 냈다. 녀석이 흥분했을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예정대로라면 답례할 상대는 일곱 명이었던 모양이지만, 그중 셋은 공습을 당해서 아예 집이 사라졌거나 타지로 일을 나가고 없었기 때문에 만난 사람은 넷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말이지, 이제 원한은 조금 풀렸는데 기분은 별로 개운치가 않아. 왠지 묘하게 쓸쓸한 기분도 좀 들고. 복수란게 원래 이런 걸까..."

구니오는 이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마쓰에가 갖다준 탁주를 연방 홀짝였다. 그나저나 보름 사이에 잘도 돌아다녔다. 그 집념에는 나도 감탄했다. 나한테도 구니오처럼 '답례 인사'를 해주고 싶은 놈들이 언뜻 대여섯명 떠오르지만, 우연히 마주쳤다면 모를까 내가 일부러 찾아가고 싶지는 않다. 원한이 옅어졌다기보다는 그런 놈들의 낯짝을 두번다시 보고싶지 않아서다.

산산조각 난 신, 와타나베 기요시, 글항아리.
212~215페이지.


여담

1. DP 개의 날보다는 좀 후련하게 끝나네... 이게 뭔지 모르시는 분들은 나무위키란 좋은 물건이 있으니 거기로 읍읍...

2. 저자 와타나베 기요시도 전역하면서 그 지긋지긋한 정신주입봉을 볼 일이 없는 걸 후련하던...

3. 좆좆위키에 따르면 전후 일본에는 하도 선임에게 뺨을 맞아서 청력이 손상된 청년이 그렇게 많았다더라....

덧글

  • 까마귀옹 2018/08/24 16:02 # 답글

    '남의 일'이 아니죠 뭐. 한국군에서도 제대한 뒤에 선임 찾아가서 두들겨 팬 사례가 꽤 있을걸요?
  • 명탐정 호성 2018/08/24 22:04 #

    지금도 가능합니다.

    소액 민사 소송 걸면 무슨 사실조회신청서를 보낼수있는데

    그걸로 주소를 알아낼수있습니다.

    자세한건 변호사와 상담을....

    대신 경찰 조사할때 누가 사실조회신청서를 보냈는지 조회는 됩니다.
  • 전위대 2018/08/25 12:41 #

    DP 개의 날을 보면 탈영해서 그러는 얘기도 있더군요.
  • 無碍子 2018/08/24 16:48 # 답글

    80년도이전 군생활한 사람들 중에는 '제대한다음 한번 보자'라는 생각을 하지않은 사람은 없을겝니다.
  • 전위대 2018/08/25 12:41 #

    누구였나... 송해였나... 원로 연예인이 그런 얘길 하는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 도연초 2018/08/24 17:10 # 답글

    그야말로 계급장 벗으니...
  • 전위대 2018/08/25 12:45 #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한 일의 결과가 꽤 무서울 떄가 있죠.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8/08/24 17:31 # 답글

    계급과 완장이 생기면 이상해지는데, 계급과 완장이 없으면 평범해(?)지는... 어느 나라든, 어떤 사람이든 있는 현상인데. 비범한 일본 제국도 예외는 없죠.

    ... 오랜만에 책장에 있는 짐바르도 교수의 루시퍼 이팩트나 읽어야 겠습니다.
  • 전위대 2018/08/25 12:45 #

    최근에 스탠퍼드 실험이 조작이었다는 늬우스를 본... 여튼 그 책 사놓고 아직 안읽었군요.
  • 나인테일 2018/08/24 19:38 # 답글

    누구나 그럴 듯한 계획을 갖고 있지. 브래스 너클에 쳐맞기 전까지는.

    예절주입기 앞에선 누구나 평등한 법이죠.
  • 전위대 2018/08/25 12:44 #

    역시 몽둥이가 약?
  • RuBisCO 2018/08/24 20:18 # 답글

    역시 저동네도 법보다 주먹이 가깝군요
  • 전위대 2018/08/25 12:42 #

    GHQ시절인건 감안해야죠.
  • 무지개빛 미카 2018/08/24 20:51 # 답글

    절대 남의 일이 아닙니다. 진짜로.

    한국군이라 하여 뭐 다른게 없어요. 보복폭행으로 맞은사람, 때린사람 사이좋게 경찰서 가서 군 시절 가혹행위 진술해 버리면 그야말로 과거 선임이란 사람은 X되는 겁니다.

    저런 이야기가 잘 알려지지 않아서 모를 뿐, 아마 상당히 많을 껍니다.
  • 명탐정 호성 2018/08/24 22:03 #

    지금이라도 당시 선임이 어디 살고 있는지 알고 싶으면 변호사에게 문의하면 됩니다.

    변호사가 사람 뒷조사하는데는 프로입니다.
  • 전위대 2018/08/25 12:43 #

    최악의 경우가 총기난사로 이어지죠 -ㅅ-
  • ChristopherK 2018/08/24 21:26 # 답글

    전후 혼란기였으니 죽기 일보직전까지 패도 딱히 처벌이 되었을 것 같진 않네요.

    아니 뭐 당사자는 그딴거 생까고 줘팬거겠지만(.)
  • 명탐정 호성 2018/08/24 22:02 #

    그때는 경찰대신 야쿠자가 치안을(?)
  • 전위대 2018/08/25 12:43 #

    아마 안됐겠죠. 어차피 천황도 짤리느냐 마냐인데 판에 -ㅅ-
  • NET진보 2018/08/24 22:02 # 답글

    한국에서도 일제강점기 시절 전쟁말기 소학교 시절 훈련하다가 훈련교관인지 선생님에게 맞아서 청력이 손상되었다는 할머니 이야기를 들은바있습니다.
  • 전위대 2018/08/25 12:42 #

    일본에도 그런 사람들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나라에도 -ㅅ-;;

    하긴 없을리야 없겠군요.
  • NET진보 2018/08/25 19:11 #

    동네 할머니가 자기귀가 청력이 손상된게 일정시정이라고 거의매일 이야기하셧거든요,
    연세가 지금 살아계셧으면 80초반이실텐데...치매가 오셧는지 돌아가셧는지 자녀분들이 데리고가신히 본일이 없었습니다. . 예전에는 장애에대한 인식도안좋앗을텐데 안쓰럽더군요.
  • 명탐정 호성 2018/08/24 22:09 # 답글

    https://mudaimudai.exblog.jp/2498350/


    邦夫・・・お礼参り・・・軍隊にいる間理由もなくいじめたり、殴ったりしたやつのうちを一軒一軒まわり歩いて、・・・片っぱしから気のすむほど殴り倒してきた・・・山口から青森まで・・・「どいつもこいつも軍隊じゃでっかい顔こいていやがったけど、娑婆じゃみんなホトケさんみたいにおとなしくおさまってたぜ」


    쿠니오 ...お礼参り... 군대에있는 동안 이유 없이 왕따거나 때리거나 한 녀석 중을 집집마다 주위 걸어 ... 닥치는대로 마음이 사는만큼 때려 잡아왔다 ... 야마구치에서 아오모리까지 ... "등 항상 녀석도 군대 그럼 커다란 얼굴 새겨 싫어했지만, 사바 게 모두 부처 씨처럼 조용히 가라 있었던거야」




    정말로 나오는군요
  • 명탐정 호성 2018/08/24 22:13 #

    근데 자기 입장에서 이유가 없는거겠죠.

    상대방 말도 들어야
  • 전위대 2018/08/25 12:43 #

    본문에 원 출처까지 적었잖아요.
  • 명탐정 호성 2018/08/25 22:52 #

    그렇군요.
    원제 砕かれた神  ある復員兵の手記
    저자 渡辺清 
  • 냥이 2018/08/26 12:24 # 답글

    브레스 너클은 어디서 구했기에...같이 있다가 맞은 여자는 같이 있었다고 맞은거고...여기서 가장 이득인 사람은 공습으로 집이 사라지거나 타지에서 일하는 사람이군요.
  • 전위대 2018/08/26 17:34 #

    사실 공습으로 집이 사라진 것도 딱히 이득이라고 보기엔??
  • 냥이 2018/08/26 17:40 #

    집이 사라졌으나 너클더스터로 맞지 않았으니 어째 보면 이득인것 같은데....
  • 전위대 2018/08/26 17:42 #

    치료비와 집값의 단순 대비야 차치하더라도 공습으로 어디 집만 사라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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