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혁명 초기 국민당의 반기독교 논리 ㄴ민국시대

공부하던 중 발견한 흥미로운 부분. 국민당 좌익 이론가 감내광은 기독교 타도를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전개합니다.


1926년 말에 국민혁명군 총정치부는 <반기선전대강>을 작성하여 반기운동(반기독교 운동)을 통해 민중을 봉기하여 국민혁명의 완성을 촉성(促成)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여기에서 기독교는 유산계급의 무악부작(無惡不作)의 위선공구(僞善工具)이며 제국주의 침략의 선봉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반기운동의 국공합작체제 하의 국민당의 민중운동 책략의 일부가 됐음은 농민부장 감내광이 1927년 월의 시점에서 "현재의 반기독교, 반문화침략운동은 전처럼 몇몇 학생이 하는 것이 아니고 (당을 통한) 조직적이고 대규모의 것이니 일체의 행동은 모두 본당이 결정한 전체적 책략에 따라야 한다."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감내광의 이 말은 반기운동의 적극적인 추진의 뜻이라기보다는 황소교회사건 이후의 국민당의 반기운동책략 전변(轉變)의 경우와 같은 통제의 의미를 포함할 수도 있겠으나, 국민당이 반기독교운동을 주된 운동목표의 하나로 보고 있다는 점은 나타나 있다. 실제로 1927년 3월의 광주에서의 반문화침략동맹회 확대회의에서 만든 광동각계옹호정부수회교육권운동주비위원회(廣東各界擁護政府收回敎育權運動籌備委員會)는 국민당 성시당 청년부와 국민혁명군 총정치부를 포함한 28개 단체로 구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밖에 국민당의 청년부가 교회공격에 앞장선 예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적지 않게 발견된다.

국민당 요인들의 반기독교적 주장은 호한민, 왕정위, 대계도, 료중개 등이 기독교를 비판하는 입장이었고, 농민부장 감내광은 기독교 교회가 농민을 '안분취범(安分就範)케 하여 무엇이든지 잘못을 자기 탓으로 돌리도록 하여 농민들의 혁명성을 상실케 하므로, 농민운동을 진작하기 위해서는 교회세력의 타도가 필요하다고 하고 있다.

중국초기혁명운동의 연구, 민두기, 서울대학교출판부.
국민혁명운동과 반기독교운동.
326~327페이지.

여담

1. 그런데 손문과 송경령은 기독교 신자.... 이 때문에 국민혁명기에 송경령은 다른 국민혁명 지도자들과 기독교 문제로 좀 싸우기도 했다더라...

2. 장개석의 경우 기독교를 까면서도 휘하 군대에게 절대로 교회를 공격하지 못하게 지시하며 본인은 기독교 그 자체의 금지에 목표를 두고 있지 않다고 입장 표명. 국민당 좌파도 우한으로 천도한 후 교회 보호 조치를 내림.

3. 그리고 장개석은 1930년 중원대전 때 승리한 걸 계기로 감리교로 개종. 이후 대만은 장경국, 이등휘, 마영구 등 기독교 총통을 많이 배출함.

덧글

  • 도연초 2018/07/30 11:42 # 답글

    그러나 정작 반혁명적이라던 참회는 공산당에게는 어느새 자아비판으로 은근슬쩍 부활...
  • 존다리안 2018/07/31 01:36 # 답글

    의외로 기독교는 중국인들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 명탐정 호성 2018/08/05 01:09 # 답글

    장개석이 그런면이 있다니

    글고보니 펑위샹은 기독교를 믿어서 아예 무슬림을 학살했다하는군요
  • 전위대 2018/08/05 20:41 #

    무슬림은 모르겠고 도사, 무당, 중을 상대로 한 박해, 훼불 행위는 꽤 한듯. 중원대전 중에 소림사 박살낸 것도 풍옥상이었으니.
  • 명탐정 호성 2018/08/05 23:42 #

    가장 도덕적인 군벌마저도 그런짓을 하다니 역시 막장시대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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