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이 장칭을 죽였는가? ㄴ공산중국

어쩌면 장칭이 중국 정부를 강하게 도발한 나머지, 그녀의 처리 문제를 두고 위기 상황이 발생했는지도 모른다. 장칭의 유서가 존재한다고 일본의 잡지 <주간문춘>이 보도했다. 하지만 이는 유서라기보다는 장칭이 1991년 봄에 당 지도부에 보낸 항의 편지였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큰 거짓말쟁이입니다."

장칭은 덩샤오핑에 대해 그렇게 썼다.

"그는 모든 사람을 기만했습니다. 마오 주석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는 권력을 잡자마자 모든 것을 다 바꾸어버렸습니다."

장칭은 자신의 오랜 적수인 덩샤오핑에게 직접 모욕적인 언사를 던지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당신이야말로 피고입니다! 당신은 결코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지 못할 것입니다!"

혹시 이런 장칭의 비난에 덩샤오핑이 분노했고, 또 죽은 마오쩌둥의 명성이 올라감에 따라 자신의 인기가 하락하는 것이 두려웠으며, 장칭이 혹시라도 덩샤오핑의 당내 활동 가운데 더러운 측면을 (예를 들어 1973년 권력을 다시 잡기 위해 마오쩌둥에게 아첨한 일) 전 세계에 알리지 않을까 두려워한 것일까? 그래서 덩샤오핑이 장칭의 살해를 지시했던 것이 아닐까? 이러한 설명은 중국의 유명한 망명 투쟁가인 옌자치가 주장한 바다.

"마오의 노년기에 덩샤오핑이 어떻게 마오의 신임을 얻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지켜본 가장 훌륭한 증인이 바로 장칭입니다."

옌자치의 설명이다. 하지만 살해 증거는 없다. 어쩌면 중국 정부의 자기 방어적 태도는 정부 측이 장칭의 자살 의도를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장칭이 자살하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은 가능했다. 심지어 당국자가 장칭에게 자살 시도를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고 도구를 마련해주었다고도 볼 수 있다.

(...)

그러나 장칭 성격으로 볼때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덩샤오핑이 상당히 자유로워지는데 그렇게 했을 것 같지가 않다. 장칭의 자살은 목에 생긴 암이나 고립감, 딸과의 다툼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자신을 감시하고 감독하는 사람들의 행동에 충격을 받고 낙담하여 자살을 시도했을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어쩌면 장칭은 이제 덩샤오핑이 배신하여 버린 마오쩌둥의 혁명 노선을 지킨 순교자로써 생을 마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한편 우울이 깊어지고 마오쩌둥에 대한 충성심에 불탔던 나머지 장칭은 자신의 개인적 이유와 정치적 이유를 하나로 묶어 결국 중국이나 자신에게 더는 희망이 없다고 결론지었을지도 모른다.

중국 정부는 공식 발표문만으로는 장칭의 죽음에 관련된 각종 의문을 잠재울 수 없었다. 정부 측은 질병 치료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내용을 발표문과 다른 언론 기사에 많이 실었는데, 이것은 장칭의 자살이 건강 상태 때문이었다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마오쩌둥의 계승자가 되려 했던 사람들은 누구도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지 못했다.

(...)

옌자치의 말을 따르자면, "덩샤오핑이 자신의 적에 대해 개방적이지 못했고 또 관대하지 못했기 때문에 장칭이 죽었다."는 것이다.

장칭 -정치적 마녀의 초상, 로스 테릴, 교양인.
642~644페이지.

덧글

  • KittyHawk 2018/07/12 15:17 # 답글

    개방적이지도, 관대하지도 못했다라... 덩은 펑더화이 등이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정치적으로 그대로 봐야했던 입장이었으니 당할 바엔 먼저 쳐야만 할 입장이었던게 아니었을지...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8/07/13 02:28 # 답글

    다시 이 대목을 읽어도 장칭의 죽음이 '타살' 이 그럴듯하게 전해지지만, 아직은 음모론. 증거가 없어서 음모론으로 여깁니다. 장칭 성격상 몰락한 처지, 목표가 없어져버린 하얗게 태워진 처지라면 자살하고도 남지만... 장칭이 중공이 드러나서는 안될 더럽고 추악한 것들을 많이 알고 있고, 그 더럽고 추악한 것들의 중심이라 중공의 권력투쟁의 '숙적' 의 몰락 답지 않게 조심스럽게 처리했다 봅니다. 그 장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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