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천안문 항쟁에 대한 장칭의 반응 ㄴ공산중국

장칭과 덩샤오핑은 1989년 위기의 의미를 두고 견해를 달리했다. 덩샤오핑이 볼 때,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은 문화혁명과 비슷한 '소동'일 뿐이었으며 정부의 첫번째 과제는 민주화 운동을 신속하게 진압하는 것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유토피아를 향해 무작정 달려가는 세력이 '개혁'과 '개방'의 성과물을 파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장칭 역시 학생들이 '혁명적'이기보다는 자유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따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장칭은 자유주의가 인기를 얻게 된 데에는 덩샤오핑의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덩샤오핑이 '마오 노선을 변경'했으며 '온갖 종류의 서구사상'이 중국에 들어오게 방조했다고 보았다. 1989년 6월 4일 베이징에서 시위 진압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을 때 장칭은 '학생들을 살해'했다며 덩샤오핑을 비난했다. 장칭 자신과 마오쩌둥은 베이징 거리에서 군중을 살해하도록 군대에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1989년 6월 4일 이후 그해가 끝날 때까지 장칭은 교도소에 있었다.

(...)

장칭은 자신의 잘못을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1990년 7월에 작성된 <인민일보> 기자들을 위한 비밀 문건에는 장칭이 여전히 정치적 상황 전개와 정치인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써 있다. "장칭의 야심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문건에서 내린 결론이다. 장칭을 감시하기 위해 여성 호위병들이 배치되었는데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앞으로 10년을 기다리면 너희들은 마오 주석의 혁명 노선이 다시 살아나고 진정한 혁명가들이 권력을 잡는 모습을 보게 될 거야."

장칭 -정치적 마녀의 초상, 로스 테릴, 교양인.
634~637페이지.

여담

1. 장칭은 수감 중 덩샤오핑과 후야오방에게 꼬박꼬박 편지를 썼고 장칭의 언급에 따르면 놀랍게도 그들은 그때마다 답장을 해주었다고 한다.

2. 장칭은 감옥 안에서 줄곧 덩샤오핑에게 공개토론을 제안하고 자신을 중난하이에서 살게 해달라고 했지만 당연히 덩샤오핑은 씹었다.

3. 1984년에 장칭은 처음으로 덩샤오핑과 후야오방이 합리적 지도자라는 호평을 남겼지만 결국 1991년 봄 덩샤오핑에게 보낸 편지에서 거짓말쟁이, 기만자, 진정한 피고라고 비난하며 편안하게 죽지 못할 것이라고 저주했다.

덧글

  • 찐따 2018/07/11 10:14 # 삭제 답글

    10년이 아니라 근 30년이지만 모 주석의 노선이 부활하고 있군요
    강청 예지력 쩌네요
  • 전위대 2018/07/11 15:21 #

    습씨는 모택동 노선보다는 차라리 장개석이나 원세개에 가까워 보임.
  • 함부르거 2018/07/11 16:28 # 답글

    저 여자도 모택동이 낳은 괴물 중 하나군요. 정치는 한번 맛들이면 죽을 때까지 못 끊는다는 말이 사실인 모양입니다.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8/07/11 21:29 # 답글

    장칭은 마오가 만든 괴물이지만, 중공 전체가 만든 괴물. 소련의 스탈린과 중공의 마오란 공산주의 절대자가 죽은 후에 벌어진 권력 승계 과정을 보면 묘하게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느껴진단 말이에요. 말과 글로 설명할수 없는 느낌? 이젠 더욱 강해진 중공이 언제까지 갈까 싶네요. 경제, 부동산, 국경, 소수민족, 퇴역군인 등. 중공에 쌓인 폭탄이 한 번 터질것 같은데...

    그런데 장칭은 보면 볼수록 왔다 장보리, 내 딸 금사월 같은 아침 & 막장 드라마 악역을 보는 것 같아요, 당연히! 장칭이라면 스케일과 성향은 ㅎㄷㄷㄷㄷㄷㄷ; 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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