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이 회고한 평양 함락의 순간 기타 근현대사

오랜만입니다. 1주일 이상 지독한 편도선염으로 투병 중입니다. 이렇게 심하게 부은 적이 없는데 곤욕스럽군요. 이젠 좀 몸을 추스른 것 같아서 워밍업이라도 할겸 간단한 글을 하나 발췌해보겠습니다.


사단 통신참모인 윤혁표 소령이 나를 급하게 불렀다. 윤 소령이 전화선을 들어 보였다.

"적군 통신선을 잡았습니다. 평양의 인민군 총사령부 교환대를 호출했는데, 아무래도 제가 평양말을 몰라 들킬 것 같습니다."

평양에 남아 있는 적군과 통신을 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대신 우리를 북한군으로 위장해야 했다. 평양 출신인 사단장이 직접 이들에게 말을 걸어보라는 뜻이었다. 나는 전화기를 받아 들어 평양 말투로 물었다.

"동무,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인가?"

그들은 내게 누구냐고 묻지도 않았다.

"미 제국주의자들이 지금 전차 수백대를 몰고 쳐들어온다."

숨이 넘어갈 듯한 분위기였다. 아주 다급한 어투였다. 나는 내친 김에 김일성에 대해 물었다. 내 기억으로는 다른 호칭 없이 물었던 것 같다.

"김일성이는 어디 있는가?"

인민군 총사령부 교환대의 교환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대방은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는가. 우리도 가야 한다."면서 끊으려고 했다. "동무, 최후까지 저항해야 하지 않는가?"라고 말하자, 그는 "빨리 후퇴해서 우리라도 살아야겠다."라고 전화를 끊었다. 그들은 무너지고 있었다. 그런 느낌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내가 생각했던 수준보다 더 훨씬 빠르게 북한군이 붕괴하고 있었던 것이다.

(...)

나는 오전 10시쯤 (대동)강을 넘었다. 강 건너편은 이미 국군과 미군에 의해 대부분 정리가 된 상태였다. 전날 저녁까지 일부 벌어지던 시가전은 모두 사라졌다. 북한군은 평양에서 거의 물러난 상태였다. 먼저, 김일성의 흔적을 찾았다. 만수대 인민위원회라고 하는 곳에 있는 그의 집무실에 들어섰다. 사무실에는 집기만이 그대로 있었다. 김일성의 집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스탈린의 초상이었다. 그 초상이 정무 맞은편 벽에 걸린 채 있었다. 사람의 온기라고는 전혀 없었다. 텅 비어 있는 사무실에 잠깐 서 있었다. 그리고 정면에 놓여 있는 김일성의 책상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의 의자에 앉았다. 김일성이 남침을 계획하고 실행하면서 이 자리에 앉았을 것이다. 그는 무슨 생각에서 이 전쟁을 일으킨 것일까. 한반도에 엄청난 피비린내를 풍겼던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이란 인물은 지금 어디 있을까? 그를 어디로 가서 잡은 뒤 이 심각한 전쟁의 죄과를 물을 수 있을까? 잠시 상념에 젖었다. 그러나 부질 없었다. 그는 이미 도주했고, 지금쯤 평안분도 산천의 험한 계곡을 이리저리 헤집으면서 북상하고 있을 것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는 우리가 평양에 도착하기 사흘 전쯤에 평양을 떠났다고 한다.


백선엽 회고록을 다시보면 참 재밌는 내용이 많습니다.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 1128일의 기억, 백선엽, 중앙일보.
391~407페이지.

덧글

  • 스카라드 2018/05/22 17:17 # 답글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쾌차하시기를 바랍니다.

    김성주의 반정군을 격퇴하고 빨갱이들의 엉덩이를 걷어차 주신 장군님을 종북위키에서는 친일 반역자로 규정하고 있답니다.(-_-) 최서원 출입구 이후로 우리 역사에 모택동의 색으로 물들이려는 무리가 넷상에 우글거려요.
  • 다 맞는말 2018/05/22 18:59 # 삭제

    친일매국노인것도 사실, 625의 구국영웅인것도 사실. 덤으로 "http://roricon.egloos.com/4143959" 같은 글이나 근래 있었던 그의 차명재산과 관련 뉴스 따위를 봐도 알겠지만 부패를 통해 부를 축적한 부패한 사람이기도 하죠. 그나마 개막장 동생의 선인재단 문재와는 '일단' 무관하다곤 하는데....
  • 2018/05/27 15:4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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