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에 유대인 이민을 환영한 하심 왕가 기타 근현대사

아랍 민족주의는 아랍 군대가 연합국과 주축국(추축국의 오타로 추정... 근데 1차 대전이면 동맹국이란 표현이 낫지 않나 싶은디...) 양쪽으로부터 참전 요청을 받고 양쪽에서 전쟁을 수행한 세계대전 기간에 역동성을 발휘했다. 연합국은 자기들 편에서 전쟁을 지원해줄 무수한 민족에게 어음을 남발했다. 펴화가 찾아오자 그 어음 중 일부는 부도가 났다. 특히 아랍인은 자기드이 위조 어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리아와 레바논은 프랑스 보호령이 되었고 팔레스타인과 트란스요르단, 이라크는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평화에 오점을 남긴 교섭과 투쟁으로 최종적인 승리를 거머쥔 아랍인은 아라비아 반도의 사우디족 뿐이었다. 

영국의 후원을 받은 하심 가문의 수장 파이살 1세는 트란스 요르단을 손에 넣은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가 유대인의 정착에 호의적이었던 이유는 유대인이 정착하면 아랍의 생활수준이 올라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파이살 1세는 1919년 3월 3일에 펠릭스 프랑크퍼터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우리 아랍인, 특히 우리 중에 학식을 겸비한 이들은 시온주의 운동에 호의를 보이고 있소. (...) 우리는 고향을 찾으려는 유대인의 소망을 뜨겁게 환영하는 바이오."

그러나 파이살은 유대인과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는 아랍인 온건파의 수와 용기를 과대평가했다.

(...)

아랍인을 진정시키기 위해 영국 당국이 무진 애를 썼고 이 때문에 일부 유대인으로부터 반유대주의 행태라는 비난까지 받았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전쟁이 끝나자 많은 유대인이 이집트에서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백러시아인이 자행한 대학살을 피해 더 많은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으로 피난을 왔다. 아하드 하암의 말을 빌리자면, 아랍인은 이 시점부터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유대인의 역사, 폴 존슨, 포이에마.
733~735페이지.


굉장히 흥미로운데 간단히 정리하자면 초기 유대인 이민의 갈등 발전 양상은 이런 듯 합니다.

1. 유럽의 상황이 나빠지자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하려 했고 일부 아랍 엘리트들이 이를 환영.

2. 하지만 유대인들에게 비싼 값으로 땅을 판매하려는 아랍인 지주들의 욕심+아랍인을 굳이 몰아낼 필요는 없지만 당연히 유대인이 사는 곳에서 아랍인은 2등 시민의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는 시온주의자들이 대다수.

3. 갈등이 첨예화되면서 1920년 예루살렘 폭동을 비롯한 유혈사태 발생이 시작.

4. 일부 시온주의자들이 유대-아랍의 공존을 추구했지만 결과는 시궁창...

앞으로 시간 날때마다 틈틈이 포스팅 해보겠습니다.

덧글

  • KittyHawk 2018/05/03 17:38 # 답글

    예루살렘 일대에서 반유대 운동에 관여했던 알 후세이니의 경우 영국 당국에 쫓기다가 유럽으로 가고는 히틀러의 후원을 받아 한트샤르를 조직하는데 영향력을 발휘해 발칸반도내 유대인들을 해치운답시고 일을 벌였었지요. 하지만 정작 정교도 등이 다수 죽어나가버려 결국 그 지역 무슬림들이 타세력들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게 만드는데 공헌한걸로 압니다. 이걸 무려 한국에도 번역되어 소개된 '네 이웃을 사랑하라'에서 다뤘었는데 그 기록을 접한 후엔 2차 대전 전승국들이 왜 발칸 반도내 무슬림들을 돕는 문제와 관련해 함부로 끼어들기 곤란해한 이유 중에 한 부분을 이해하게 됐지요...
  • 2018/05/03 17:4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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