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루쇼프는 중앙위원회 전체회의 중간 휴식 시간마다 분노를 터뜨리곤 했다.
"마오쩌둥이 나를 어디서 대접했는지 아시오? 수영장, 바로 수영장에서 나를 접대했단 말이오!"
달리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마오쩌둥이 주최 측이었기 때문이다. 외교 의전에서 어긋난 상태에서 흐루쇼프는 옷을 벗어 경호원에게 넘기고 고운 견직물로 만든 수영 팬츠를 입은 채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마오쩌둥이 헤엄을 치며 앞으로 나아가자 흐루쇼프는 따라가느라 허우적거리며 외쳤다.
"나는 광부 출신이오. 우리끼리 하는 말이지만, 나는 수영을 잘 못하오. 너무 피곤하단 말이오."
마오쩌둥은 유별난 손님이 자신과 보조를 맞추느라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애써 모른 척 하면서 의도적으로 정치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고 여러가지 질문을 던졌다. 고의가 분명했다. 계속 꼴깍꼴깍 물만 먹고 있는 흐루쇼프는 제대로 답할 수가 없었다.
(...)
니키타 세르게예비치는 이러한 상황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계속 헤엄을 치다가 결국 너 마음대로 해라. 나는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영장 밖으로 기어 올라와 물에 발을 담그고 흔들어댔다. 이제 나는 위에 앉고 그는 아래에서 수영하고 있는 꼴이 되었다. 통역관은 마오쩌둥과 같이 수영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내 옆에 앉아야 하는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마오쩌둥은 계속 수영을 했고, 나는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나를 올려다보면서 공사인지 뭔가에 대해 뭐라고 말했다. 나는 숨을 고르면서 이렇게 말했다.
'글쎄, 당신이 말하는 공사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한번 두고 봅시다!'
수영장 밖에 나와 있으니 훨씬 기분이 나아졌다. 마오쩌둥은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하지만 동지! 애당초 우리는 이렇게 시작했던 것이라오."
소련 영화감독 미하일 롬의 일기에서 발췌.
마오쩌둥 평전, 알렉산드르 판초프, 스티븐 러빈, 민음사.
651~652페이지에서 재인용.
1. 마오만 빠는 중빠들은 소련이 중공에 사기를 치면서 오만하게 중공을 핍박했기 때문에 중소결렬이 일어났다고 주장하지만 정황을 살펴보면 선빵 때린 건 마오라고 봐야 한다. 초기의 흐루쇼프는 중공에 매우 우호적이었다.
2. 계속되는 불협화음 끝에 위의 일화가 발생한 1958년 7월 31일 흐루쇼프의 중공 방문은 삿대질과 고함이 교차하는 난장판이 되었다.
3. 흐루쇼프에게 마오쩌둥은 식량이 남아돌아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조언을 달라고 흐루쇼프의 처녀지 개간 사업이 실패한 것을 조롱했는데 흐루쇼프는 소련에는 언제나 곡물 생산량이 부족하며 남아도는 식량을 어찌할 지 모르겠다는 것이 모른다면 중국인은 바보냐고 받아치자 마오쩌둥은 잠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중공에는 최악의 식량난이 도래했다.
4. 결국 1959년 6월 20일 소련은 중공에 핵무기 생산 기술을 제공하기로 한 합의를 취소했다. 흐루쇼프는 소련은 중공의 맹목적인 노예가 아니라고 덧붙였고 그해 10월의 매우 불쾌한 정상회담 이후 중소는 완전히 결렬되었다.




덧글
알고보니까 모주석 따라한거였네요
강철의 대원수밑에서 살아남은 흐루쇼프 대인 눈에 마오 주석이 어떻게 비쳤을런지는...
아마도 그 복수인듯? ^^
http://blog.onekoreanews.net/attach/14/1221562273.jpg
그래서 그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