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민국의 화폐개혁에 대한 상반된 평가 ㄴ민국시대

오늘을 마무리하는 발췌 포스팅.


국민정부는 은본위제를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 위에, 1935년 11월 4일 (...) 폐제개혁을 급히 선포하였다.

(...)

종래 폐제개혁과 미국 은구입 정책에 대한 평가로는 영미일의 중국 화폐권 쟁탈의 결과라는 견해가 대부분이었다. 즉 미국의 은구입 정책은 중국 폐제개혁에 대한 영국의 주도적 역할을 의식하여, 국민정부로 하여금 영국이 아닌 장국에 의존케 하려는 목적에서 의도적으로 실시하였고, 결과 미국이 중국의 금융을 장악하게 되었다는 해석이 그것이다.

반면 국민정부가 폐제개혁 실시를 선포하기 이전 미국은 전혀 중국의 금융정책에 관여하려는 의도가 없었으며, 폐제개혁은 오히려 미국의 소극적인 불개입 태도의 결과라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미국정부가 중국에 대한 은정책을 수정하여 중미은협정을 체결한 이유에 대해서는, 상품 자본의 수출시장 확보와 달러 블록권을 창출하려는 미국 재계의 이해관계, 법폐를 달러에 연계시켜 금융적으로 국민정부를 지배함과 동시에 일본에 대한 억제력을 강화시킨다는 명확한 경제목표를 지닌 미국 재무부 노선의 산물이라는 평가가 있다.

한편 중미은협정에 대한 평가는 국민정부의 종속성에 대한 비판적 입장과 동시에 주도적 역할에 대한 긍정적 견해가 서로 엇갈리고 있다. 우선 비판적 평가로는 국민정부의 법폐 정책이 은협정 이후 미국에 의존하게 되었다는 지적이다. 또한 영국의 차관은 실현되지 않은 미국의 은 매각 교섭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폐재개혁 직후 실현되었으므로, 중국이 점차 미국 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반면 중미은협정이 결과적으로 항전초기 국민정부의 재정경제를 유지하고 나아가 중국의 항전력을 지원하였다는 점을 강조하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특히 미국이 은구입의 조건으로 법폐의 달러 연계를 주장하였지만 국민정부가 이를 거절하고 독립된 통화가치를 유지하는 정책을 실시한 점으로 볼때, 폐제개혁은 입안과정에서부터 국민정부의 손으로 만ㄷ르어졌고, 법폐는 어떠한 통화에도 연계되지 않았으며, 제국주의국의 대립과 모순을 뚫고 자주적인 정책으로 추진된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이와 같이 폐제개혁과 중미은협정에 대한 평가가 다양한 이유는, 그것이 전개되는 과정이 단순한 통화문제를 넘어 국민정부의 국가건설에 중요한 시점이면서 동시에 대외관계에서도 중대한 구조적 변화가 동반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기 국민정부의 통화정책은 이와 관련한 미국의 입장 및 그 배경이 되는 동아시아 국제관계의 변화를 함께 고려하면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국민정부의 폐재개혁과 중미은협정의 의미, 김정현, 동아시아연구, 1999년.
35~38페이지.

감상

1. 경제학에 무지하여 길게 평가는 못하겠지만 부정적 평가에는 너무 종속이론 냄새가 난다 -ㅅ-

2. 이게 1999년이고 이후에 나온 저서에서 화폐개혁 까는 걸 못봤으니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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