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몰로토프 관계의 퇴행 (2) 종전과 서방과의 대결 소련사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스탈린은 다시 몰로토프에 대한 공격을 재개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은 몰로토프에 대한 공격을 가하는 것은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고착화된 정치 체제에 대한 재편의 구실이 될 수 있었다. 흘레브뉴크는 스탈린, 몰로토프, 베리야, 말렌코프, 미코얀으로 구성된 5인방의 지배체제가 '불편할 정도로 오래' 유지되었다고 쓰고 있다. 이미 몰로토프는 전쟁이 끝나기 전부터 그런 점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 1945년 4월 23일 처음 트루먼과 처음 대면한 몰로토프는 굉장히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소련이 폴란드에 관한 얄타 협정을 위반했다고 비난을 퍼부은 다음에 몰로토프가 반박할 시간도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회담을 중단시킨 것이었다. 몰로토프는 '좌절'과 '괴로움'에 빠졌다. 회담에 동석했던 안드레이 그로미코에 따르면, 몰로토프는 스탈린이 자신을 이 일을 구실로 희생양으로 삼을까봐 두려워했다. 결국 고민하던 몰로토프는 이 사실을 은폐했다.

또 하나의 이유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5년 10월 9일, 정치국이 9년 만에 스탈린의 휴가를 주는 결의안을 채택하자 외국 언론에서 입방아가 무성하여 스탈린의 의심을 자극하였던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을 수행한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종전 직전 병으로 사망했고 윈스턴 처칠은 선거에서 패배해서 물러났다. 이런 와중에 서방 세계는 스탈린의 행보에 관해서 스탈린이 노할 정도의 관심을 보였다. 10월 11일 스탈린은 타스 통신을 통해 시카고 트리뷴이 군의 지지를 받는 주코프와 당의 지지를 받는 몰로토프가 스탈린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보도를 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10월 18일에는 타스 통신을 통해 주불 소련 대사가 "지난 10개월간 우리는 스탈린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확인해달라는 요청을 15차례나 받았다."라고 발언한 정보가 전해졌고 노르웨이에서 서방 시민들이 몰로토프를 "세계 열강들 사이에서 동등한 지위를 요구하는 새롭고 강한 소련을 대표"하는 인물로 보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당연하지만 스탈린은 대노했다.

그리고 악화되고 있는 서방과의 외교 관계에 몰로토프는 희생양이 되기 시작했다. 소련이 폴란드 국내군을 쓸어버리고 공산주의자들을 앉히기 시작하자 미국과 영국은 격렬히 분노했다. 대일전에 소련의 도움이 필요했던 미국은 일단 강경노선으로 선회하진 않았으나 영국의 경우, 윈스턴 처칠과 클레멘트 애틀리가 공통적으로 소련의 정책에 항의하며 대소 강경노선으로 선회했다. 패권을 쥐고자 하는 것은 소련만이 아니었고 직접적인 통제를 선호하는 소련의 방식은 서방에게 격렬한 반발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1945년 4월의 국제연합 창설 협상에서 몰로토프는 스탈린의 의지대로 소련에게 상임이사국 지위를 부여하기 위한 역할을 맡았으나 미국의 태도는 더 이상 스탈린의 비위를 맞춰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이 사실은 몰로토프에게 '썩 기분 좋은 경험'이 되지 못했다. 이후 서방과 소련은 일본 점령과 동유럽 문제로 충돌했다.

1945년 8월 만주작전이 시작된 이후 스탈린은 줄기차게 홋카이도를 점령하고 싶다는 욕구를 표시했으나 트루먼은 이를 묵살했으며 맥아더는 일본 통치에 소련을 개입시킬 생각을 추호도 하지 않고 일본의 최고 권력자로 등극했다. 미국의 태도를 확인한 스탈린은 8월 22일 홋카이도 점령 계획을 취소했다. 또한 8월 20일과 21일에 걸쳐 미국과 영국은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의 새 정부에 친서방 후보들이 포함되지 않으면 신정부를 승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통고했다. 제임스 번스 신임 미국 국무장관은 유럽 해방 선언의 위반에 대한 투쟁을 연합국이 지원할 것이라며 지원사격을 하였다. 이에 부화뇌동한 불가리아 외무장관은 불가리아의 선거는 세 강대국 대표들로 이루어진 연합국 통제 위원회의 감시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연기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2월부터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의 공산화를 위해 노력하던 소련은 당연히 반발하며 이를 '영국, 미국인들의 무자비한 압력'이라고 표현했다.

스탈린은 서방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스탈린은 불가리아에 있던 세르게이 비류조프 장군에게 어떠한 양보를 해서는 안된다는 지시를 내렸다. 스탈린은 동유럽과 일본에서의 서방의 견제를 소련에 대한 서방의 정치적 공세로 인식하였고 서방에 대한 의구심을 표현했다. 볼코고노프에 따르면,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 불만을 표시하면서도 그리스에서 일방적인 한 세력을 지원하는 서방의 태도는 스탈린으로 하여금 서방을 '파이의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려는' 숙적으로 보이게 하였다. 더군다나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과 일본의 조기 항복은 소련과 미국의 힘의 균형이 바뀌었다고 느껴지게 했고 이는 스탈린과 소련 엘리트들의 태도에 영향을 미쳤다.(여기에 주보크는 소련인들이 미국인들의 동등한 대우를 받고 '버릇 없어'졌다고 표현한다.) 

다만 스탈린은 서방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취할 때 직접 나서는 일은 꺼렸다. 그는 미국의 엄청난 국력을 인식했고 전후 소련이 얼마나 파괴되었는지 잘 알았기 때문에 미국과 직접 충돌, 특히 무력으로 충돌하는 일을 매우 꺼렸다. 또한 그는 전후 조국의 재건과 새롭게 건설된 소련 제국의 유지를 위해 서방의 호의를 필요로 했다. 개디스는 스탈린이 심지어 미국과의 '냉전'조차도 원하지 않았다고 파악한다. 어차피 자본주의 국가들에게 새로운 대공황이 닥칠 것이고 '붕괴 직전의 노후한 제국'인 영국과 미국의 싸움이 시작될 것이라는 것이며 소련은 미국에게 제품을 팔 수 있는 유일한 시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스탈린의 관측이었다. 따라서 서방에 대한 투사는 몰로토프에게 맡기는 것이 적격이었고 스탈린은 '이따금씩 끼어들어' '체면을 세워주거나' '과시적 양보를 베푸는' 일을 맡곤 했다. 따라서 9월 11일 열린 런던 회담에서 몰로토프는 미국 국무장관 번스와 영국 외무장관 어니스트 베빈을 상대해야 했다.

참고문헌
-스탈린 평전, 올레크 흘레브뉴크, 삼인.
-스탈린 평전, 로버트 서비스, 교양인.
-스탈린 평전, 드미트리 볼코고노프, 세경사.
-실패한 제국 1권, 블라디슬라프 주보크, 아카넷.
-냉전의 역사 -거래, 스파이, 거짓말, 그리고 진실, 존 루이스 개디스, 에코리브르.

덧글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7/09/07 19:39 # 답글

    스탈린 : 요것들을 요리조리 손봐야 할텐데.
    몰로토프, 베리야, 말렌코프, 미코얀 : 거 서로 낑기기 맙시다...
    몰로토프 : 오 쉣! 큰일났다! 트루먼 대통령과의 면담이 알려진다면(스탈린 : 풍악을 울려라! 푸우우우우우!)

    서방언론 : 몰로토프~~~ 불어라~~~ 몰로토프 풍선아 불어라~~~
    스탈린 : 저... 퍼큐 같은 XX들이!
    몰로토프 : 닷시는! 다시는! 절대로! 절대로! 위대한 스탈린 서기장이자 동무를 어기지 않겠소! 난 개요!

    서방 세계 : 저런 콧수염 늙다리가!
    소련 : 여긴 우리들의 나와바리다!
    몰로토프 : 이럴수록 우리가 곤란해지는데....

    미국 : 훗카이도? 루마니아? 불가리아? 풉! 신경 쓰지 마시지~
    불가리아 : 새 선거를 연기하죠.
    소련 : 이.... 이익!

    -------------------

    소련 : 어떻게 하지? 쑥대밭이 된 상황에서 저것들을 건들수 없고, 저것들의 자본과 물자가 필요한데... 얼마 안 있어 이것들은 공황을 겪을거야. 영-미 간의 쌈박질도 난다면 우리가 짭짤한 위치에 오를거야. 아! 몰로토프! 걔가 있었지! 걔를 체스말로 삼아서 싸우게 하는거야!

    몰로토프 : (ㅠㅠㅠㅠㅠㅠ)
  • 전위대 2017/09/07 19:39 #

    ^^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7/09/07 19:50 #

    이제 곧 있으면 베리야, 말렌코프, 미코얀의 강철의 대원수 작두 타기 쇼! 쇼! 쇼! 가 개봉될 겁니다.

    개봉박두! https://www.youtube.com/watch?v=m1BNQeGfNv4&t=29s 스탈린의 죽음은 꼭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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