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몰로토프 관계의 퇴행 (1) 1939~1941년 소련사

전에 연재한 스탈린이 몰로토프를 숙청하려 한 이유는?을 엮어서 좀 더 학술적인 것에 근접한 것으로 만들어보려는 시도. 보고 돌을 던지면 됩니다.



1939년 독소불가침조약이 체결되는 시점에서까지 몰로토프가 스탈린의 매우 가까운 측근이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1939년 4월 스탈린은 외무인민위원 막심 리트비노프를 해임하고 뱌체슬라프 몰로토프로 교체하였다. 이것이 독일에 대한 어떤 제스처를 상징하는 지에 대한 논의는 둘째치고, 몰로토프의 임명이 가져온 가장 큰 의미는 스탈린이 외교 정책 운용의 '일상적인' 부분까지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막심 리트비노프의 경우, 외교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스탈린과 거의 소통하지 않았으나 몰로토프의 경우 외무인민위원으로 있으면서 끊임없이 스탈린의 집무실을 찾아 스탈린과 소통하여 사소한 부분에까지 스탈린의 의사를 관철하였다. 이에 대한 결과는 1939년 8월 23일 독소불가침조약, 소위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이라고도 불리는 두 전체주의 국가의 극적인 타협이었다. 몰로토프 스스로도 자신의 임명을 다음과 같이 술회한다.

"(자신의 임명은) 외무 인민위원부를 중앙위원회에 긴밀히 연결시켜 중앙위원회의 직접적인 수단으로 만들 필요 때문에 취해졌다."

하지만 스탈린-몰로토프의 관계의 퇴행은 1940년대로 접어들면서 그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1941년 3월 소비에트 연방 소브나르콤(인민위원회의) 사무국 창설 과정에서 스탈린은 신참에 해당하는 니콜라이 보즈네센스키를 수석 부총리로 임명하였는데 이 파격적인 임명에 미코얀과 카가노비치를 비롯한 고참 볼셰비키들은 크게 동요하였으며 미코얀의 표현을 빌리자면 '상심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흘레브뉴크는 보즈네센스키의 임명에 관하여 스탈린이 몰로토프와 보즈네센스키의 경쟁을 유도한 것이 아닌가 추정하였는데 스탈린이 파격적인 신진 인사 등용을 통해 고참 인사들을 견제하는 것을 즐겼다는 것은 서비스 역시 지적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흘레브뉴크가 보즈네센스키 임명에 대해 확신하는 것은 보즈네센스키의 임명은 몰로토프의 소브나르콤 리더십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1941년 4월 28일 스탈린은 사할린 지역의 송유관 건설 관련 결의안 초안을 지적하면서 몰로토프의 '논의 결핍'을 비난했다. 스탈린은 소브나르콤 사무국 설치가 경제 건설 관련 중요 문제들을 투표를 통해 결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몰로토프가 '사인이나 휘갈기는 관료적 형식주의'를 행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스탈린은 다음과 같이 교시했다.

"나는 이런 식의 '운영'이 계속되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이 문제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에서 논의할 것을 제안합니다. 지금으로서 나는, 소비에트 연방 소브나르콤 사무국에서 논의되고 승인되었음을 확인하는 소브나르콤 사무국의 서명이 없는 한, 아무리 중요한 경제 문제와 관련된 결의안 초안에 대해서도 투표 참여를 거부한다고 말해야겠습니다."

문제는 불과 3개월 전인 1941년 1월에 스탈린은 위원들이 회의를 너무 많이 한다면서 소브나르콤의 '의회주의'를 비난한 바가 있었다는 것이다. 스탈린의 비난은 앞뒤가 맞지 않았으며 비난을 위해 든 예는 한가지에 불과하며 이 역시 예시로서 불충분한 것이었다.(흘레브뉴크는 사할린 송유관 건설은 사무국의 자세한 논의가 필요없는 사소한 문제였다고 보고 있다.) 결국 스탈린은 정말로 몰로토프가 회의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치적 의도가 있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정치적 의도는 조만간 드러났다. 1941년 5월 4일 정치국은 '소련과 당 조직 사이를 충분히 조율하고 그들의 지도자적 직무의 통일성을 절대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또한 국가 방위에 전 소련 기관의 노력이 최대한도로 요구되는 현재의 긴장된 국제 정세에서 소련 기관들의 권위를 더더욱 향상시키기 위해' 만장일치로 어떤 결의안을 통과시키게 되었다. 이 결의안에 따라 스탈린은 소브나르콤 의장의 직위에 올랐으며 몰로토프는 소브나르콤 부의장 겸 외무 인민위원이 되었고 즈다노프는 면직되었다. 흘레브뉴크에 따르면, 이는 스탈린이 영도하는 정부 독재 체제의 완성을 의미했다.

이 새로운 정부 체제 개편은 스탈린의 권위를 증대시켰음은 물론이요 몰로토프를 비롯한 고참 볼셰비키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스탈린은 자신의 정부 수반 대리를 위해 몰로토프가 아닌 젊은 보즈네센스키를 지목함에 따라 몰로토프의 권위를 손상시켰으며 역시 신세대 요인에 해당하는 라브렌티 베리야에게 공안 기관망을 맡기면서 고참 볼셰비키들의 입지 축소를 야기했다. 몰로토프는 고참 볼세비키들 중에서도 가장 큰 피해자의 범주에 들었다. 소브나르콤 의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으며 스탈린의 정부 수반 대리를 맡지 못함에 따라 그의 권위가 크게 축소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으며 스탈린이 그에 대한 매우 개인적인 불만과 감정을 표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후 스탈린은 '기회만 있으면' 몰로토프를 비난했고 이에 관한 마지막 기록은 소브나르콤 행정실장 야코프 차다예프의 기록에 따르면 1941년 5월에는 아예 몰로토프가 적이라도 되는 양 마구 비난하여 몰로토프가 '말은 쉽다'는 투로 조그맣게 불평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스탈린은 이를 놓치지 않고 몰로토프에게 '비판을 두려워하는 자는 겁쟁이다'라고 매섭게 공격을 가했다고 한다.

흘레브뉴크는 오랜 세월 스탈린을 섬긴 측근에 대한 태도 변화에 대해 여러 가지 추론을 던진다. 스탈린이 대외 관계 상황에 대한 감정을 몰로토프에게 해소하고 있었다는 것과 임박한 전쟁에 대비해 지도부를 길들이기 위해 몰로토프를 희생양으로 내세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1941년 6월 22일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바뀌었다. 국가의 멸망 위기라는 엄청난 위기 상황에 직면한 스탈린은 칩거에 들어갔고 스탈린의 측근들은 스탈린이 권좌에 있던 동안 유일하게 스탈린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강요한 것이었다. 그 의견이란 대숙청으로 확립된 권력 체제를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몰로토프는 정부 2인자로서 그 자리를 공식화하였고 스탈린이 내세운 신참들은 최고 권력에서 배제되었다. 이렇게 조정된 권력 서열은 전쟁 기간 대부분 유지되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면서 스탈린은 이 합의를 유지해야 할 필요도, 의지도 없었다.

※일전에 소개한 홍성곤 박사의 견해에 따르면, 리트비노프의 해임이 독일에 대한 우호적인 제스처라는 것은 독일의 일방적인 오해에 불과하다는 것이지만 흘레브뉴크는 리트비노프의 해임과 몰로토프의 임명은 독일에 대한 스탈린의 명백한 우호적인 제스처로 해석하고 있다. 볼코고노프는 당시 소련의 2인자인 몰로토프를 외무 인민위원에 임명함으로 스탈린이 자신이 외교정책에 얼마나 신경쓰고 있는 지를 과시했다고 보고 있으며 당시 주독 소련 대사 아스타포흐의 보고를 인용하여 이것이 독일에 대한 소련의 우호적 제스처가 될 수 있음을 인지했음을 지적한다. 볼코고노프와 서비스는 공통적으로 또한 스탈린이 리트비노프가 유대인이기 때문에 '진짜 러시아인'인 몰로토프의 임명을 스탈린이 선호했을 것이라고 본다. 유대인인 리트비노프가 독일과 화해하는데 장애물이었을 것이라는 것은 서비스, 비버, 볼코고노프 등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필자는 과거 홍성곤 박사의 견해에 큰 흥미를 가졌었으나 여러 정황 증거와 해석들을 볼때 리트비노프의 해임이 소련의 우호적인 제스처였다는 기존 이론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

참고문헌
-스탈린 평전, 올레크 흘레브뉴크
-스탈린 평전, 로버트 서비스
-스탈린 평전, 드미트리 볼코고노프
-1939년 독일과 소련의 외교 관계 재검토, 홍성곤
-제2차 세계대전, 앤터니 비버
-히틀러 평전 2권 몰락(1936~1945), 이언 커쇼

덧글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7/09/05 20:36 # 답글

    읽을수록 코뮤니스트의 역사를 처음부터 보고, 용어 이해를 해야 하지만.... 날카로운 스탈린 작두 위에서, 그것도 녹이 잔뜩 생긴 작두 스탈린 강철 권력 칼날 위에 춤추는 볼셰볘키 관리들과 작두에 베여 편하게 지낼려는 투쟁도 벌어지고... 그 스탈린 작두는 살아있는 생명체고. 몰로토프는 운이 좋은 케이스인건지, 자기 아내가 처벌을 받을때에 보인 모습을 보면은... 흘레브뉴크, 서비스, 볼코고노프, 앤터니 비버, 이언 커쇼 등. 그들의 걸출한 저서들을 읽으며 연구해도 혼란하다, 혼란해요.

    PS. 드디어 독재자들, 코뮤니스트를 구매했습니다. 이번주에 흘레브뉴크 저서도 올 것이고. 자꾸 절판되고, 중고도 비싸지고, 없어지고... ㅠㅠ 코뮤니스트, 흘레브뉴크는 팔아서 다행이지. 독재자들은 35000-39000-45000.... ㅠㅠ 45000원에 사서 망정이지. 금방 절판된게 많아서, 읽는것보다 당장 구매하는데 급급하죠. 쿨럭! 1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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