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크 흘레브뉴크의 스탈린 연구에 대한 비판 소련사

※ 이번에 삼인 출판사에서 올레크 흘레브뉴크 교수의 스탈린 평전을 정발한 기념으로 올리는 포스팅. 전에 흘레브뉴크의 저서에 대해서 소개한 바가 있는데 이번엔 흘레브뉴크의 연구에 대한 비판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 본문에는 흘레브뉴크 교수를 흘레브뉵으로 표기하였고 이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그대로 발췌하나 필자가 쓴 부분에서는 삼인 출판사의 흘레브뉴크라는 표기를 사용하기로 하겠습니다.


최근 스탈린 향수와 더불어 그의 업적을 과대평가하는 움직임이 생기고, 나아가 이 현상이 푸틴 정권 정당화의 간접적인 기제로 작동하는 현재 러시아의 상화에서, 위와 같은 흘레브뉵의 스탈린 신화 깨기 작업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시도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현실 정치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책의 학문적 질을 일부 희생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흘레브뉵은 과거 냉전시대의 정치성 짙은 스탈린 전기들의 서술을 연상시키는 자료의 선택적 이용, 비약과 억측, 맥락의 생략 등을 선뜻 감수했다. 심지어 몇몇 경우에서 그는 자료의 출처를 밝히지 않거나, 또는 아예 문서 근거 없이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일례로, 1920년대 권력 투쟁 시점부터 이미 긴밀했다는 스탈린과 비밀경찰 간의 관계는 문서고 자료를 통해 입증되지 않았다. 전후, 전쟁 승리의 공을 독차지할 마음에 스탈린이 군 장성들을 질투했다는 서술은 스탈린의 독점적 권력욕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로 사용되었지만, 역시 문서 증거를 포함하고 있지 않았다. 

나아가, 흘레브뉵은 서론에서의 약속과 달리 학계에서 매우 의심스러운 것으로 판단되어 온 자료들을 무비판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특히 그가 스탈린의 냉혹함을 증명하고자 할 때, 이런 모습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앞서 언급된 공산주의자는 "손을 더럽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스탈린의 발언은 그가 서론에서 그토록 사용을 경ㄱ몌해야 한다고 말했던 미심쩍은 회고록에서 뽑아낸 것이었다. 대숙청 기간 중의 스탈린의 '개인적 살해 사례라는 것도, 믿기 어려운 역사가 네베진이 편집한 사료집에 근거했다.

역으로, 흘레브뉵은 자신 책의 '현실 정치적' 목표에 부합되지 않는 역사가들의 주장이나 자료는 매우 꼼꼼히(?) 따져서 부정하는 편의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일례로, 그는 말년의 레닌이 그의 "유언" 등을 통해 스탈린을 공격했다는 주장을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왜곡으로 보았던 모스크바 대학 정치사가 사하로프의 이론은 근거 없는 것이라고 몰아 부쳤다.

이에 더해, 흘레브뉵의 책에는 억지스런 주장과 비약의 예도 제법 많은데, 그중 대표적인 것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흘레브뉵은 스탈린이 그의 둘째 아들의 중등학교 내 비행을 나무랐던 교사와 그 학교장을 숙청시켰다고 주장했지만, 여기에 이용된 자료는 그 교사의 교육관에 대해 스탈린이 보낸 감사 편지 뿐이었다. 얄타 회담 당시, 미국과 영국 대표단에 대한 엄중한 검문을 스탈린의 반서방주의 감정의 소산이라고 본 것은 황당한 수준의 해석이었다. 내전 말기 소련 폴란드 전쟁에서의 패배 이후, 스탈린이 건의한 예비군 수립안을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술책이라고 묘사한 부분은 저자의 군사 지식 박약을 드러낸 억측이었다. 스탈린 시대 소련인들 중 '상당 부분'이 연행 경험이 있다는 표현도 체제의 억압성을 다분히 인상주의적 수준에서 드러내기 위한 비학문적인 전략에 불과했다.(434면)

또한, 흘레브뉵의 전기에는 당대 소련이 처했던 국내외적 상황을 심도있게 고려하지 않은 채 스탈린의 정책을 설명하는 부분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 결과 스탈린의 실정과 악행에 대한 규범적 비판은 수월해졌는지 모르겠지만 이들을 그 시대의 맥락 속에서 해석할 여지는 크게 줄어들었다. 우선 1920년대 권력 투쟁의 결과를 단지 스탈린 개인의 서기장으로서의 권력, 야비한 권무술수, 그리고 비밀경찰의 지원으로만 설명하려했던 흘레브뉵은 일부 학자들이 소련 문서고 자료 공개 이후 밝혀온 당시의 복잡했던 중앙당 상황과 중앙지방 관계의 중요성에 착목할 수 없었다. 둘째, 농업집산화를 스탈린이 모두의 반대를 윟벼으로 잠재우며 강행한 것으로 보는 흘레브뉵의 입장으로는, 그 스스로가 인정한 지방 관료들의 이에 대한 열광적 반응을 해명하기 어렵다. 균형잡힌 역사가라면 농업집산화 자체에 대한 정당성만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맥락 속에서 그것이 상상 가능하고 추진되었느냐를 함께 보여주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최근 연구들이 드러낸 대숙청 시기의 정치 및 사회적 맥락들을 생략한 채, 오로지 스탈린의 '범죄'에만 집중한 그의 서술은 몇몇 중요한 역사적 문제들에 답을 줄 수 없었다. 특히, 소련 사회를 원자화시키고 파멸로 이끌고 갔다는 대숙청 직후에 벌어진 대독 전쟁에서 소련 시민들이 보여준 방위 의지를 설명할 공간은 좁다.

한편, 스탈린 실정의 결과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흘레브뉵이 사용했던 사회사적 방법은 그의 주장에 반례가 되는 경우를 스스로 자주 드러내기도 했다. 그가 소련 사회에 널리 퍼진 관행이라 인정했던 투서 문화, 즉 심지어 굴락 내의 죄수들도 가지고 있었고 당국도 반관료주의 '투쟁'의 일환으로 독려했던 투서 보낼 권리는 그가 그린 스탈린 시대의 일방적인 위로부터의 압제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 또한 흘레브뉵이 보여준 전후 화폐 개혁 실시 과정에서의 하급 관료들의 악행과 비리는 그가 주장하는 스탈린 개인의 실정 책임론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이런 못브은 차라리 게티 등의 학자들이 펼쳤던 논리, 즉 '아래로부터'의 관료제적 혼란이 소련 사회 폐해의 주요 원인이었다는 주장에 근거가 된다. 또한 스탈린 지도부가 화폐 개혁 실시 직전 그 정책이 가져올 일반민들의 불만을 크게 우려했던 모습은 흘레브뉵의 핵심 논지, 즉 스탈린은 사회와의 상호작용 없이 자신이 믿는 정책만을 일방적이고 폭력적으로 관철시키는 인물이었다는 논지에 반례가 되는 셈이다.

러시아 역사가의 스탈린 신화 깨기 기획, 노경덕, 인문노총 제73권 제2호(2016/5/31)
553~557페이지.

추가

1. 네베진은 소련이 독일에 대한 선제공격을 꾀했다는 수보로프 테제의 '열렬한' 지지자다. 정작 흘레브뉴크는 수보로프 테제를 비학문적이라고 무시한다.

2. 흘레브뉴크는 사하로프의 연구를 공격했으나 2014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스티븐 코트킨 교수가 내놓은 스탈린 평전은 사하로프의 연구를 크게 고평가하고 있다.(이 책도 살 예정. 우리나라에 들어올 것 같진 않으니 원서로 -ㅅ-)

3. 사실 흘레브뉴크의 스탈린 평전도 이번 휴가 때 원서로 살 계획이었는데 이렇게 한국말로 번역되니 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

덧글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7/08/11 19:07 # 답글

    구매 의욕이 푸우우우우~~~~욱 떨어지네요.... ㅠㅠ

    흘레브뉴크의 스탈린 저서는 장점과 가치는 있긴 하나요?
  • 전위대 2017/08/12 17:04 #

    흘레브뉴크가 스탈린 연구의 권위자이며 문서고들을 섭렵했다는 점에서 당연히 가치가 존재.
    일단 이 평전 자체가 스탈린 숭배 분위기에 일침을 내리기 위한 시의적인 작품인지라 이런 비판이 생긴 것.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7/08/12 17:11 #

    알겠습니다. 그래도 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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