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스탈린과 서기국의 미약했던 권력 소련사

(스탈린의 서기국 시절을 권력 장악의 교두보 확보로 보는 기존 해석과 달리) 실제 스탈린과 서기국의 정책들은 이미 시작 단계부터 삐걱거렸다. 제11차 당대회의 지방 당 서기 교체운동 승인 직후, 서기국은 10월 혁명 이후 당 가입자들이 서기로 있는 지방 당 또는 당 위원회에 공문을 보내, 다음 번 지방 당 협의회에서 그들을 새로운 서기로 교체할 것을 지시한 바가 있었다. 하지만 서기국은 이런 지령과 함께 지방의 상황이 특별할 경우에는 인정할 것이라는 단서를 함께 달 수밖에 없었다.

(...)

혁명경력과 출신성분 면에서 "믿을 만한" 서기들의 비중이 크게 확대된 외관상의 눈부신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 야심찬 서기국의 기획은 그 에외, 즉 지방에서 서기국의 지령과는 관게없이 당 서기를 선출한 경우가 절반 이상으로 집계되면서 결과적으로 기대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했다. 이같은 서기국과 스탈린의 '실패'를 반증하듯, 그 후 1920년대에 이어졌던 당 대회와 당 협의회, 그리고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등에는 지방 당원, 특히 서기들의 구성 및 규율문제가 계속해서 언급되었다.

노멘클라투라 체제의 운영 역시 서기장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각기 3500여개와 1500여개의 직책 목록으로 출발했던 제1호와 제2호 노멘클라투라는, 점차적으로 그 숫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에도 불구하고, 정반대의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노멘클라투라 체제가 실행된지 불과 15개월만인 1925년 초, 서기국 내 신설 부서 조직배치부는 이에 속한 직책의 숫자를 600여개 줄여 4400개로 낮춰야 한다고 제안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제안에서 조직배치부는 생각보다 거대한 노멘클라투라 관련 업무를 서기국은 감당하기 어려우며, 그 결과 서기국의 현황은 지방으로부터 올라오는 인사 청탁과 제안들을 정교한 검증 없이 사실상 그대로 수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토로했다. 결국 1925년 당 중앙위원회 조직국이 승인한 제1호 노멘클라투라 명부에는 애초 계획의 사실상의 절반인 1870개의 짗책만이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절반으로 줄어든 숫자의 직책에 당원을 심사하고 채우는 과정도 서기국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서기국의 행정적 부담 때문에, 노멘클라투라 체제의 출범 이후에도, 지방 당원들의 인사 문제는 사실상 지방의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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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1928년에도 노멘클라투라 명부의 개혁을 위한 또 한번의 논의가 있었다는 점을 미루어 본다면, 소위 '스탈린 혁명'의 전야, 즉 스탈린이 좌파를 몰아낸 후 우파를 종국적으로 패배시키기 직전까지도 노멘클라투라 체제는 그에게 지방 당원 인사권 장악이라는 권력을 선사해주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방의 분쟁을 중앙의 직접적 개입을 통해 호전시키려던 스탈린의 노력도, 그 빈도수를 줄이는 성과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기대만큼의 결실을 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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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당 중앙위원회 출신들이 이루려 했던 "협조 관계" 정립은 사실상 경쟁하는 파벌 간의 화해 또는 타협을 제안하는 수준이 대부분이었다. 대개의 경우 중앙위원회의 조치는 '당 관료들은 다툼을 멈추고 친화적으로 함께 과업을 수행한다."라는 식의 다분히 상징적 선언으로 끝을 맺는 결의문을 작성하는 선에 그쳤다.

(...)

결과적으로 지방의 분쟁은 대개 지역적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는 자연히 당시 해당 지방당에 권력을 쥐고 있든 이들 위주로 결론이 나는 경우가 많았다.

서기국과 스탈린의 권력장악문제, 노경덕, 사총 90집.
203~209페이지.

오랜만에 포스팅하는 스탈린 연구.
아치 게티 류의 수정주의에 대한 비판이 있긴 하지만, 실증적인 연구를 살펴보면 이들의 연구가 스탈린과 소련사 연구의 논의 혁신을 가져오긴 한듯.

덧글

  • 2017/07/14 22:2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7/07/15 04:14 # 답글

    스탈린의 권력 장악과 소련 공산당 내부를 본다면은... 스탈린이 아닌 다른 소련 지도자라도 대대적인 숙청 작업 같은게 벌어졌을것 같았지만, 가끔 생각이 든 게 스탈린이 권력 집권 과정에서 트로이카를 형성할 만큼 약했었.... 이 놈의 코뮤니스트 역사는 파시즘보다 더 터지게 만드네요. ㅠㅠ
  • ㅁㄴㅇㄹ 2017/07/15 13:03 # 삭제 답글

    별다른 질문입니다만,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 대한 소련의 대처는 어떻게 평가하시나요??뭐랄까, 현재 한국 주변국들의 원전 대처가 우려스러워서 말이죠.
  • 나인테일 2017/07/15 18:56 #

    알려진 수준의 위협에 당시에 필요하다고 알려진 수준으로 대응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역량을 드러내긴 했지만 어찌됐건 가진 기술과 자원의 한도 내에서는 최선을 다했고 직접적인 사망자도 의외로 그리 크게 나오지 않았죠.
  • 전위대 2017/07/15 19:53 #

    체르노빌의 목소리만 보면, 생각보단 양호하지만 그래도 역시 전체주의 독재국가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 ㅁㄴㅇㄹ 2017/07/16 21:01 # 삭제

    다른 나라, 특히 중국에서 똑같은 사태가 발생한다면 소련과 같은 대처는 무리겠죠??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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