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루쇼프의 소련군 감축에 대한 소련 군부의 반응 소련사

[흐루쇼프] 소련군의 감축
파리 13구님의 포스팅에 덧붙이는 얘기.


1959년 12월, 흐루쇼프는 간부회 위원들에게 보낸 비밀 메모에서 기절할 정도로 급진적인 군 감축 계획을 제안했다. 소련은 핵미사일 전력이 잠재적인 침략자들을 충분히 억제하는 수단을 제공하기 때문에, 대규모 군대가 더는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개혁은 소련에게 '큰 정치적, 도덕적,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 터였다. 1960년 1월 12일, 최고 소비에트에서 연설하면서 흐루쇼프는 3년 내에 120만명에 달하는 병력 감축을 발표했다. 25만명에 이르는 장교들이 퇴임하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적절한 물적 보상이나 재교육, 연급, 주택을 제공받지 못했다. 흐루쇼프의 마음 속에서 이 군사개혁은 딱 한달 전에 RVSN(소련 전략로켓군)을 창설한 데 따른 논리적 후속 조치였다.

어느 누구도 흐루쇼프의 성급한 후속조치를 감히 비판하지 않았지만, 일부 고위 군 장교들은 개인적으로 소름이 끼칠 정도로 어안이 벙벙했다. 핵미사일에 대한 강조와 현실적 힘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은 팽창주의 계획을 의심하는 분위기가 수에즈 위기 직후 확산되기 시작했다. 나중에 흐루쇼프의 비판가들은 이렇게 주장할 것이었다.

"우리는 큰 전쟁으로부터 겨우 한숨을 쉴 거리만큼 떨어져 있었다. 우리나라는 히틀러와의 전쟁으로부터 아직 회복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으며 기대하지도 않았다. 다행히도 모든 것이 잘 됐고, 흐루쇼프 동지는 즉시 그것을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의 산물로 제시했다."

군 고위 장교들은 흐루쇼프의 군사 개혁을 공개적으로 반대할 순 업었지만, '니키타의 어리석음'에 대해 불평을 터뜨렸으며, 모든 가능한 수단을 다해 저항했다. 참모총장 바실리 소콜롭스키 원수는 흐루쇼프의 1960년 감축에 항의하여 사임했다. 매우 지성적인 장군 중 일부는 기밀 잡지 <군사 사고>에서 진행된 '이론 토론'을 이용해 핵무기에 대한 흐루쇼프의 과도한 의존에 의문을 제기했다. 1960년과 1962년에, 파벨 쿠로치킨 장군, 아마자스프, 바바자냔 연대장 및 다른 필자들은 <불확실한 트럼펫>에서 맥스웰 테일러가, <핵무기와 대외정책>에서 헨리 키신저가 각각 핵 보복에 대한 과도한 강조는 항복과 자살 사이에 어떤 선택의 여지도 남겨두지 않는다고 주장한 데에 대해 의견을 같이했다.

흐루쇼프는 그의 원수와 장군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했지만, 그들에게 자신의 뉴룩(NEW LOOK) 정책을 수용하라고 강요했다. 국방장관 로디온 말리놉스키는 핵 시대의 군사 전략에 관한 기밀 책을 준비하기 위해 참모 아카데미에 특별 전문 팀을 창설하여 주저하는 소콜롭스키 원수에게 그 프로젝트를 달성하라고 명령했다. 이 책은 다음 전쟁은 핵전쟁이 될 것이라는 테제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전쟁의 개전 단계(선제공격)가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기술했다. 책은 또 소련이 핵무기를 보유한 주된 이유가 핵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공격을 억제하기 위한 것임도 확인했다. 핵전쟁은 너무 파괴적이어서 반드시 피해야 한다. 원고는 흐루쇼프가 최종 원고를 마음에 들어해 1962년 <군사 전략>이라는 제목으로 공개적인 출간을 승인할 때까지 몇번이고 고쳐 썼다. 소련 지도자의 생각에, 책은 미국의 '성급한 사람들'에게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물건이었다.

실패한 제국 -냉전시대 소련의 역사- 1권, 블라디슬라프 주보크, 아카넷.
312~314페이지.

덧글

  • 파리13구 2017/06/21 11:23 # 답글

    62년 10월의 쿠바미사일 위기는 소련 군부의 기존 불만을 키워서,

    결국 흐루쇼프의 실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봅니다.
  • 전위대 2017/06/21 11:44 #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해서 몇달 전부터 좀 공부해보려는데 다른 것이 많아서 손에 잡히지 않는군요.
  • 파리13구 2017/06/21 12:16 #

    쿠바 위기 이후 모택동이 소련에 가지게 된 배신감이

    중소 분쟁의 기폭제가 되고,

    미중 수교로 나아가는 촉매제가 됩니다.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7/06/21 12:31 # 답글

    일본, 유럽의 딜레마와 똑같네요. 군인에게 월급 주면 망하고 관직을 주면? 전체 사회 개혁과 신분제를 개편해야 하고. 무관으로 키우면 관료가 증가되고 권력 투쟁에 휩싸이고. 개혁을 하면 군인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를테고... 군인의 신분 및 직업화는 위, 아래, 중간의 골칫거리죠. 이개 16세기 모든 국가들이 겪은 고민이거든요. 이 딜레마를 여기서도 보네요. 미국도 마찬가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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