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멘붕이 와서.
1961년의 어느날
중공 중앙지도부: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
중공 중앙지도부:지금 밑의 상황이 심상치 않은데 조사 좀 해보자.
조사결과.
1. 신양 사태.
1960년에만 100만명 사망. 7%는 공산당 간부들에게 순전히 맞아죽은 숫자. -ㅅ-
2. 펑양 사태.
전 인구 33만 5천명 중에 25% 사망.
중공 중앙지도부:아 씨바 할말을 잊었슴다.
중공 중앙지도부:야, 지방 당서기들 총집합!
중공 중앙지도부:이 꼬라지 보이냐?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 겠냐?
지방 간부 A:25%죽은거 가지고 뭔 '사태' 운운이셔? 우리 동네는 이것보다 더 죽음. 우린 사망률 30%여.
지방 간부 B:우리 동네는 70%채운 곳 있다?
지방 간부 C:가보니까 7명 빼고 다 죽었더라고.
-ㅅ-
.................
1. 1961년 저우언라이가 행한 조사에 따르면, 가장 공산당의 폭정이 온건했던 후난의 86개 현 중 82개 현에서 간부들이 주민들을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때려죽였다고 한다. -ㅅ- 후난성 전체의 사망자 중에서 최소 10% 안팎은 당간부들이 때려죽이거나 생매장하거나 식량을 압수해 굶겨죽인 수치였다.
2. 당간부들은 식인을 종용하고 시체를 비료로 쓸 것도 지시했다. -ㅁ-
3. 1979년 자오쯔양은 대약진운동 당시의 사망자를 조사하기 위한 조사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하지만 프로젝트 결과는 은폐되었다. 1989년 미국으로 망명한 조사팀의 일원이자 공산당 고위 관료였던 천이쯔는 그 수치가 최소 4300만이었다고 밝혔다. 공안부에서는 5500만명을 도출하기도 했다.
4. 사태를 목도한 류사오치는 경악했다. 그는 1962년 1월 공식 보고서를 발표하며 외쳤다.
"천재가 3할이면 인재가 7할이다."
경악하는 청중을 무시하고 그는 마오쩌둥이 제시한, 열 손가락 중 실패는 한손가락, 성공은 아홉손가락이라는 비유는 오로지 소수 지역에만 통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책임이 중앙 지도부에 있다고 지목했다. 마오쩌둥은 격노했다.
"인재 대 천재를 운운하더군. 이런 종류의 발언 자체가 참사야."
그가 리즈수이에게 소리쳤다. 1962년 7월 류사오치는 마오쩌둥을 베이징으로 호출해서 소리질렀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소! 역사는 당신과 나를 심판할 거요. 심지어 식인 행위도 역사책에 남게 될 거요!"
마오쩌둥은 지지 않고 소리질렀다.
"삼면홍기는 이미 땅에 추락했고, 이제는 토지를 다시 분배하겠다는 거군. 자네는 대체 이를 막기 위해 뭘 했나? 내가 죽곤 ㅏ면 이 나라가 어찌 될까?"
주석은 이제 문화대혁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ㅁ-
사태가 이러니
내가
뭘 쓰겠습니까.
....




덧글
하던데 저기선 아예 악마의 입안으로 주민들이 걸어들어가는 게 맞았군요.
내가 그냥 좆문 중까라서 망상글 쓰고 있다고 내가 해줘요.....
안 참고 봉기한 케이스도 많이 보고됩니다. 학살로 대응이지만 -ㅅ-
더 심한건가?
전쟁때도 아닌데 지 국민을 그짓을
-ㅅ-
저러고도 지금의 중국으로 성장이 가능했다는 사실이 더 놀랍네요.
그만한 포텐셜이 있는 나라-지하자원이든 인적자원이든-를 저 모양으로 만든 마오 주석이 그만큼 "대단한" 인물이었다는 반증이기도 하지요.
=>최소한 당신 죽은 다음에 먹고 사는 건 당신 생전보다는 나아졌소이다만.
좋은 마오는 죽은 마오지.
아니면 반공기조가 더 엄격해진 세상이라서(북한과 중국이 우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엔드리스 전낙지를 찍고 있을 수도 있고.
진짜 대만 저 때 뭐 했냐? 천재일우의 기회였는데?
더 위험한 X가 온다! 인류 최악의 공포!
모택동의 대약진 운동! 후속편은 문혁! 커밍쑨....
리영희씨? 친중파들? 디쾨터와 리즈수이 책들 읽으실래요?
직접 격어보실래요? 대약진? 문혁? 어떤거요??
중국 공산당은 기다릴 시간이 없어요. 그들은 순간의 결정으로 빠른 학살을 원합니다.
1. 전대미문의 사악한 박해
2. 국가가 장기를 약탈한다
중국 당국이 법륜공 탄압 및 장기 매매를 고발한 책입니다.
이런데도 친중파... 중국 음식과 중국 제품, 중국 문화는 좋죠. 문제는 사람들을 갈아버려서 만든 화려함이라는거죠. 만력제의 무덤을 향해서, 만력제의 무덤을 위해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좋게 볼 수 있을까? 이처럼 항상 즐기더라도 친중은 어느정도 경계를 해야 합니다. 중국 음식은 맛있죠.
인간은 이래서 이기적인 동물인가 봅니다. 탄탄면 먹고 싶네요. ㅠㅠ
2017/05/19 17:49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2017/05/19 23:01 #
비공개 답글입니다.하지만 민주주의 중국은 알지?
.....천제가 다스리던 세기말에서도 저런 일은 없었습니다.....
1. 1961년 저우언라이가 행한 조사에 따르면, 가장 공산당의 폭정이 온건했던 후난의 86개 현 중 82개 현에서 간부들이 주민들을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때려죽였다고 한다. -ㅅ- 후난성 전체의 사망자 중에서 최소 10% 안팎은 당간부들이 때려죽이거나 생매장하거나 식량을 압수해 굶겨죽인 수치였다.
제가 카더라로 듣기로는
국공내전 당시
모택동은 민간인에게 관대하고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면(특히 자신의 민간인 여친을 죽인 황극공은 총살)
절대 용서가 없었기에
민간인의 지지를 받아서
국공내전을 승리했다는 카더라를 들었는데
막상 전쟁이 끝나니
광기가 드러나는군요
어쨌던 식인풍습이 저때부터 생겨난거군요. 그 맛을 잊지못해 아직도 하겠죠.. 이젠 지네나라사람도 모자라 우리나라 사람도 가끔 희생되겠죠..
지옥 그것은 단어일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