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인민공화국의 거대한 계획 경제 속에서 노동자들의 복지를 보호하기 위한 감독기구 자체는 광대한 것이었다. 노동법과 산업 측면의 규정은 상세하고 꼼꼼했으며 노동조합 연맹, 여성연맹, 공산 청년동맹, 보건부, 노동부를 망라하는 거대한 조사관 네트워크는 노동자들을 위해 주기적인 시찰을 감행했다.
"그건 별 거 아니다."
문제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권력이 없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기껏해야 가차없는 보고서를 남기는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의 모든 목표는 생산량 증대였지 자원에 불과한 인민의 생명과 안전 따위가 아니었다. 생산량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간부들은 엄중한 질책을 받고 심각하면 그날로 끝장이었지만 생산량 증대 과정에서 발생하는 많은 사망 사고에는 공산당은 신경쓰지 않았다. 외교부장 천이는 대약진운동은 전장이라면서 몇몇 산업 재해가 혁명의 발목을 잡지 못할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건 별 거 아니다."
규정은 미준수되었고 감독은 무의미했으며 생산량을 위해 매우 위험한 작업장에 노동자들은 갈아넣어졌다. 노동자들의 안전을 생각하는 것은 우파 보수주의자들의 불온한 생각이었다. 생산량을 충족해야 한다는 명분 하에 노동자들은 참혹하게 혹사당했고 피로에 절은 노동자들의 몸상태 때문에 사고는 늘었다. 부패한 작업장에서는 그나마 부족한 안전장비들조차 빼돌려졌다. 1958년 공안부는 7천건의 화재로 1억 위안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산출했다. 이 화재에는 가혹한 정부에 분노한 민중의 저항성 방화가 상당수를 차지하기는 하였으나 거대한 피해를 번진 것은 화재 진압 장비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 컸다. 화재를 진압하기 위한 소방펌프, 소방호스, 소화기, 스프링클러 등은 수입에 의존해왔으나 마오쩌둥이 자급자족을 외치며 수입을 중단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소화장비를 제조하던 80곳의 공장 중 73곳이 폐쇄된 상황이라 소방관들은 문자 그대로 빈손이었다.
노동자들은 흙, 대나무, 짚으로 대충 만든 판잣집에 과밀 수용되었고 이런 곳에서 벌어지는 화재는 대개 걷잡을 수 없었다. 1959년에는 한달에만 수백건 씩 화재가 발생했고 이유로는 몰래 조리를 하려고 피운 불에서 불씨가 튀었다거나, 담배를 피운다거나, 실수로 램프를 쓰러뜨렸다거나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화재로 대약진운동 기간 전체에 중국에서 몇명이 죽었나 하는 믿을만한 통계는 남아있지 않지만 단편적인 통계들은 있다. 장시에서는 한달에 24건의 화재와 13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후난에서는 사망자가 한달에 50명 수준이었다. 공안부는 1959년의 경우, 하루에 10번씩 화재가 난다고 기록했다.
안전사고도 폭증했다. 구이저우는 1958년에 비해 1959년에 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17배로 증가했다고 추정했고 마오쩌둥의 비서 리루이는 1958년에만 5만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했다고 추정했다. 노동부는 1960년 1월에서 8월까지 1만 3천명이 사망했다고 기록했다. 이를 받아들인다면 하루에 50명씩 죽은 것이다. 그나마 이런 기록들은 극히 일부만을 보여주었다. 노동부에서 대약진에 찬물을 끼얹을만한 많은 사고들을 집계하길 거부한 것이다.
탕샨 제철소에서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는 탓에 발을 헛디뎌 용광로에 빠져 숨지는 노동자들이 끊이지 않았고 탄전 가스가 폭발해서 수많은 광부들이 사망했다. 1960년 5월 9일 다퉁의 라오바이퉁 탄광에선 한번에 677명의 광부들이 몰살당했다. 1962년 3월 바다오장 탄광에서는 77명이 사망했다. 대약진운동을 맞이해 개장한 난징 관탕 탄광은 2주 동안 3번이나 폭발했다. 난징 전체를 기준으로, 1958년부턴 '치명적 폭발 사고'만 한달에 한번은 일어났다. 1959년 후난성 일부 지역에서는 매일 최소 2명의 광부들이 죽었다. 이런 사고들 대부분이 방지 가능했다. 교육도 받지 않은 광부들이 안전장치는 고사하고 신발도 신기지 않은 상태에서 탄광에 마구 투입되었고 갱도는 지질을 무시하고 파졌다. 상황은 중국정부도 '아수라장'으로 인정할 정도였다.
대중교통과 운송도 위험천만했다. 중량 제한, 속도 제한도 우파 보수주의자들의 횡포였고 당연히 무시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보수 점검 역시 없었다. 부품들은 폐품으로 적당히 재활용했다. 1958년 후난성에서만 4천건의 사고가 발생했고 572명이 사망했다. 후베이에서는 램프도 조명도 없는 배들이 어둠속에서 항행하다가 줄줄이 침몰했다. 우한에서는 안전방비도 구명정도 없는 여객선들에서 불이 나서 승객들이 떼죽음당했다. 간쑤에서는 1961년과 1962년에 걸쳐 한달도 되지 않아 1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사망했다. 열차의 경우, 마구잡이로 사람을 태우는 여객선들에 비해서는 조금은 안전했지만 지연과 연료 고갈이 흔했고 이 때문에 수만명이 임시 거처와 고립무원의 황무지에 버려진 기차에서 굶는 일이 흔했다. 문자 그대로 기차들이 갑자기 멈춰서 기차 안에서 기차가 다시 달리길 기다리다 굶어죽는 사람도 속출했다.
이러한 사고의 피해자들에게 보상은 없었다. 경미한 부상을 입고도 의료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해 죽어갔고 치료비 때문에 파산하거나 다치고 병들었단 이유로 일자리에서 쫓겨났다. 아픈 사람에겐 식량이 없었다. 병자와 부상자들은 생존 경쟁에서 빠르게 배제되어 죽어갔다.




덧글
PC들과 히피들, 자칭 페미니스트들, 미쿡 리버럴들로 바꿔서 일을 하게 해야 해요. 참 좋죠~~~^0^
서비스로 체득경제학자와 방송용 인문학자, 역사학자들, 힐링쟁이, 페미니스트, 답없는(정말) 친중파, 언론인들과 함께 패키지로 보내요~ 그럼 사회의 생산량이 얼마나 오를까요~ ^0^ 엄지 척!
드디어 나왔구나! 마오의 철강짓....!! 우후~~! 중국의 기상...ㅎㅎㅎㅎㅎㅎ 난 마오한테 이 말을 해주고 싶네요.
" 마이클 베이 영화가 실제로 일어난것 같습니다. 마이클 베이! 익스플로젼!!! FUCK! 뻥! 뻥! 뻥! 다 터져라! "
" 야 이! 마오 새꺄! 너 엿을 얼마나 쳐바꿔 먹은거야!!! 이 XXXX! XXX! 중국인들을 바꿔서 먹은 엿이 그렇게 맛있든! "
예, 마오는 인민을 외친다면서 맨날 산해~~~ 진미를 먹고요. 깨끗한 새신이 있으면은요~ 부하한테 먼저 신겨줘요. 발 사이즈가 맞는 부하요~ 신다가 마오가 다시 가져가서 자기가 신죠~ 왜? 새 신은 처음 신으면 발이 아프거나 까지거든요. 상처도 생기고. 새신을 길들이기 위해.... 온실 속 화초냐!?
중국인들과 엿을 바꿔 먹어서 좋냐! 마오야!? 이익... 아아악! 침착하자, 심호흡 좀 할게요.
마오의 대약진 운동을 파헤친 프랭크 디콰터와 중국사학자들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아이리스 장처럼 난징대학살과 바탄 죽음의 행군을 조사하다... 비극을 맞이했는데도....
마오는 다음 생에는 뭘로 환생할련지. 제철소의 철로 환생할건지, 참새로 환생했으면 좋겠네요.
친구없는듯
이전에 대약진 운동 시기의 임산부, 노인들에 관한 얘기를 봐서 묻는건데, 저기서 산업재해로 다치거나 불구가 된 사람들은 게으르다고 죽이진 않았을테고...... 사보타주 협의로 죽였을려나?
세습만 안했지.
중국땅이 터가 좋은가 봅니다.
단군할배는 어느 부동산 중개업자한터 이런 안 좋은 터를 소개받았는지.......
발해 대조영 본진 = 지금 중국 지린헤이룽장 싼장평야 일대
서쪽은 너무 뻥뻥뚫려있어서 못지킨다고 쳐도
동쪽만큼이라도 어떻게 중국이 아닌 이민족이 들고 있었어야 하는데
이성계가 그럴 미친 깡다구는 없었던 모양이네요
총체적 난국이네요... 용광로에 빠져죽은 노동자들이 너무 불쌍하네요 ㅠㅠ
그런데 이글루 프로필이 너무 맘에 들어서 그러는데 혹시 사진파일 받을 수 있을까요..? ㅠㅠ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