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적는 글. 재미로 봐주시면 됩니다.






여러분들은 스탈린 동무에게 세 자식이 있다는 것을 아마도 잘 아실 겁니다. 장남 야코프, 차남 바실리, 고명딸 스베틀라나입니다. 오늘 할 얘기는 제목만 봐도 아시겠지만 스베틀라나 얘기입니다. 스탈린은 자신의 딸을 끔찍하게도 사랑했습니다. 스베틀라나는 스탈린의 귀여움을 차지할만한 요소들로 가득했는데 로버트 서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스탈린과 스베틀라나, 1937년.
"그(스탈린)는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면 그들이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이기를 바랐다. 물론 그 역시 자녀들에게 재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야코프와 바실리는 아버지의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않았다. 그들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았고, 아버지를 존경하면서 동시에 허물없이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스베틀라나는 아버지를 만족시켰다. 스탈린은 자기가 딸의 '수석비서 스탈린 동지'인 양 딸에게 편지를 썼고, 스베틀라나는 편지로 "내가 이로써 명령하노니, 내가 당신과 함꼐 극장이나 영화관에 가는 것을 허락하도록 하라."하고 명령하곤 했다. 스탈린의 처제 마리아 스바니제가 1934년에 일기에 기록했듯이, 스베틀라나는 아버지를 숭배했다. "스베틀라나는 늘 아버지에게 달라붙어 비벼댔다. 스탈린도 딸을 쓰다듬고 입맞춤을 해주고 칭찬을 늘어놓으며 자기 스푼으로 음식을 먹여주었다. 당정하게도 가장 맛있는 것을 골라서."
스탈린, 로버트 서비스, 교양인.
659페이지.
문제는 독소전쟁 시작 이후 스탈린과 스베틀라나의 사이가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스베틀라나가 남성 동지들과 부화방탕한 이성교제를 하려들었기 때문입니다! 고이얀!
스탈린은 스베틀라나가 음탕(하다고 스탈린이 주장)한 옷을 입은 사진을 보자 격노하여 이를 딸이 보는 앞에서 찢어버렸고 립스틱을 바를 때마다 잔소리를 해댔습니다. 스베틀라나가 하루는 베리야의 별장에서 하룻밤 자고 오겠다고 하자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스탈린은 베리야와 스베틀라나의 교제를 의심했었다나 뭐라나요. 사실은 스베틀라나는 그의 아들 세르고 베리야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만 그래도 스탈린은 스베틀라나가 베리야의 집에 갈때마다 경호원들을 붙여주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베리야 무릎 위에 앉은 스베틀라나, 뒤에 앉은 스탈린 동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러다가 스베틀라나가 드디어 알렉세이 카플레르란 작가를 남자친구로 사귀기 시작했는데 스탈린 동무는 격노하였습니다. 이유가 다음과 같습니다.
1. 나이가 스베틀라나보다 두배나 많음. 도적!(스베틀라나는 1926년생인데 이 양반은 1907년생)
2. 유대인!
3. 자본주의 퇴폐 황색바람에 중독된 반동분자. (할리우드, 디즈니와 해밍웨이 작품을 밀수해서 스베틀라나와 돌려 보았다고 합니다.)

알렉세이 카플레르의 모습.
원래도 딸에게 이성 문제로 엄격헀던 스탈린 동무인데 이런 반동분자가 딸에게 집적거리고 그 딸이 이 반동분자에게 홀딱 넘어가버리자 스탈린 동무는 꼭지가 돌아버렸지만 그래도 딸이 사랑하는 남자니까 관용을 베풀어 그를 체포하진 않았습니다.
대신에 스탈린그라드에 프라우다 특파원으로 보내버렸습니다.

ㄲㄲ 잘가라, 다신 돌아오지 마.
그런데 카플레르는 간덩이가 가출을 했는지 스탈린 동무의 의지에 따라 조용히 있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과 스베틀라나가 사귄다는 것을 암시하는 기사들을 스탈린그라드에게 모스크바로 보냈습니다.
"지금 모스크바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을 것이다. 당신 방 창문에서는 크렘린의 뾰족뾰족한 담이 보일 거야."
이것만으로도 스탈린 동무를 열받게 하기에 충분한데 스탈린그라드에서 살아 돌아온 카플레르는 겁없게도 모스크바에 돌아오자마자 스베틀라나와 열애에 빠졌습니다. 심지어 스탈린이 파견한 경호원 클리모프 앞에서 키스를 하는 등 매우 부화방탕한 행동을 일삼았습니다. 불쌍한 클리모프는 이 사실을 보고해도 죽을 것 같고 안 보고해도 죽을 것 같은 딜레마 속에서 고민하고 있었고 결국 이 사실을 알아낸 스탈린의 경호대장 블라시크가 카플레르에게 모스크바에서 떠나라고 먼저 개입했습니다. 하지만 카플레르는 블라시크에게 지옥으로 떨어지라고 외치며 개겼습니다. 결국 스탈린 동무도 이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새끼들이!
1943년의 어느날 스탈린 동무가 스베틀라나를 불렀습니다. 스베틀라나가 도착하자 스탈린 동무는 호주머니를 툭툭 쳤습니다.
"난 다 알고 있어. 네가 전화로 대화한 내용이 여기 모두 있어!"
스탈린 동무는 스베틀라나를 도청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스탈린 동무는 처음으로 딸을 경멸기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면서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너의 카플레르는 영국 스파이야. 그는 체포되었어."
그러자 스베틀라나가 울부짖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사랑해요!"
스탈린이 비웃었습니다.
"그를 사랑한다고?"
스탈린 동무는 딸의 뺨을 두번 세게 때렸습니다.
"유모, 대체 애가 어떻게 된 거야! 밖에서는 전쟁을 하고 있는데 이 애는 이까짓 일에 매달리다니!"
스탈린은 그날 화가 풀리때까지 욕을 퍼부어댔고 카플레르는 자비롭게도 총살대가 아니라 시베리아의 굴라그로 끌려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1953년까지 복역했습니다.
근데 스베틀라나의 다음 남자친구는 세르고 베리야였다고 합니다.

괴롭구나...




덧글
2017/04/25 18:58 #
비공개 답글입니다.심지어 베리야는 이런 병크도 저질렀었는데 생존에 성공...
사실 세상 아버지들은 거의 대부분 딸에겐 무르게 마련입니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원조 박통과 그 딸과 그리고 최 모씨...(읍읍)
'저...저새끼 콱.....하고 싶지만 그렇지만..그렇지만 정말로 콱!해버리면....일단 냉장고에 집어넣고 마음이 식으면....하지만...하지만 ....이새끼 정말 콱....'
스탈린 : 동무들, 딸자식 애지중지 키워봐야 쓸모없소. 동무들은 딸을 얻지 않길 바라겠소...
2017/04/25 23:57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혼잣손으로 키워야 했으니 제아무리 강철의 대원수라도 힘들었을 듯요.
딸은 아빠 닮아서인지 아빠들이 딸에게 약해선지 독재자들의 따님들은
한성깔 하는 사람이 많은 듯합니다. 대원수고 수령동지고 대통령 각하고 다
딸 때문에 맘 고생을 해야 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