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동무의 사위로 살아남기 소련사

재미로 적는 글. 재미로 봐주시면 됩니다.

여러분들은 스탈린 동무에게 세 자식이 있다는 것을 아마도 잘 아실 겁니다. 장남 야코프, 차남 바실리, 고명딸 스베틀라나입니다. 오늘 할 얘기는 제목만 봐도 아시겠지만 스베틀라나 얘기입니다. 스탈린은 자신의 딸을 끔찍하게도 사랑했습니다. 스베틀라나는 스탈린의 귀여움을 차지할만한 요소들로 가득했는데 로버트 서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Joseph Stalin with daughter Svetlana, 1935.jpg
스탈린과 스베틀라나, 1937년.

"그(스탈린)는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면 그들이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이기를 바랐다. 물론 그 역시 자녀들에게 재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야코프와 바실리는 아버지의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않았다. 그들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았고, 아버지를 존경하면서 동시에 허물없이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스베틀라나는 아버지를 만족시켰다. 스탈린은 자기가 딸의 '수석비서 스탈린 동지'인 양 딸에게 편지를 썼고, 스베틀라나는 편지로 "내가 이로써 명령하노니, 내가 당신과 함꼐 극장이나 영화관에 가는 것을 허락하도록 하라."하고 명령하곤 했다. 스탈린의 처제 마리아 스바니제가 1934년에 일기에 기록했듯이, 스베틀라나는 아버지를 숭배했다. "스베틀라나는 늘 아버지에게 달라붙어 비벼댔다. 스탈린도 딸을 쓰다듬고 입맞춤을 해주고 칭찬을 늘어놓으며 자기 스푼으로 음식을 먹여주었다. 당정하게도 가장 맛있는 것을 골라서."

스탈린, 로버트 서비스, 교양인.
659페이지.

문제는 독소전쟁 시작 이후 스탈린과 스베틀라나의 사이가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스베틀라나가 남성 동지들과 부화방탕한 이성교제를 하려들었기 때문입니다! 고이얀!

스탈린은 스베틀라나가 음탕(하다고 스탈린이 주장)한 옷을 입은 사진을 보자 격노하여 이를 딸이 보는 앞에서 찢어버렸고 립스틱을 바를 때마다 잔소리를 해댔습니다. 스베틀라나가 하루는 베리야의 별장에서 하룻밤 자고 오겠다고 하자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스탈린은 베리야와 스베틀라나의 교제를 의심했었다나 뭐라나요. 사실은 스베틀라나는 그의 아들 세르고 베리야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만 그래도 스탈린은 스베틀라나가 베리야의 집에 갈때마다 경호원들을 붙여주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베리야 무릎 위에 앉은 스베틀라나, 뒤에 앉은 스탈린 동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러다가 스베틀라나가 드디어 알렉세이 카플레르란 작가를 남자친구로 사귀기 시작했는데 스탈린 동무는 격노하였습니다. 이유가 다음과 같습니다.

1. 나이가 스베틀라나보다 두배나 많음. 도적!(스베틀라나는 1926년생인데 이 양반은 1907년생)

2. 유대인!

3. 자본주의 퇴폐 황색바람에 중독된 반동분자. (할리우드, 디즈니와 해밍웨이 작품을 밀수해서 스베틀라나와 돌려 보았다고 합니다.)

알렉세이 카플레르의 모습.

원래도 딸에게 이성 문제로 엄격헀던 스탈린 동무인데 이런 반동분자가 딸에게 집적거리고 그 딸이 이 반동분자에게 홀딱 넘어가버리자 스탈린 동무는 꼭지가 돌아버렸지만 그래도 딸이 사랑하는 남자니까 관용을 베풀어 그를 체포하진 않았습니다.

대신에 스탈린그라드에 프라우다 특파원으로 보내버렸습니다.

ㄲㄲ 잘가라, 다신 돌아오지 마.

그런데 카플레르는 간덩이가 가출을 했는지 스탈린 동무의 의지에 따라 조용히 있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과 스베틀라나가 사귄다는 것을 암시하는 기사들을 스탈린그라드에게 모스크바로 보냈습니다.

"지금 모스크바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을 것이다. 당신 방 창문에서는 크렘린의 뾰족뾰족한 담이 보일 거야."

이것만으로도 스탈린 동무를 열받게 하기에 충분한데 스탈린그라드에서 살아 돌아온 카플레르는 겁없게도 모스크바에 돌아오자마자 스베틀라나와 열애에 빠졌습니다. 심지어 스탈린이 파견한 경호원 클리모프 앞에서 키스를 하는 등 매우 부화방탕한 행동을 일삼았습니다. 불쌍한 클리모프는 이 사실을 보고해도 죽을 것 같고 안 보고해도 죽을 것 같은 딜레마 속에서 고민하고 있었고 결국 이 사실을 알아낸 스탈린의 경호대장 블라시크가 카플레르에게 모스크바에서 떠나라고 먼저 개입했습니다. 하지만 카플레르는 블라시크에게 지옥으로 떨어지라고 외치며 개겼습니다. 결국 스탈린 동무도 이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새끼들이!

1943년의 어느날 스탈린 동무가 스베틀라나를 불렀습니다. 스베틀라나가 도착하자 스탈린 동무는 호주머니를 툭툭 쳤습니다.

"난 다 알고 있어. 네가 전화로 대화한 내용이 여기 모두 있어!"

스탈린 동무는 스베틀라나를 도청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스탈린 동무는 처음으로 딸을 경멸기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면서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너의 카플레르는 영국 스파이야. 그는 체포되었어."

그러자 스베틀라나가 울부짖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사랑해요!"

스탈린이 비웃었습니다.

"그를 사랑한다고?"

스탈린 동무는 딸의 뺨을 두번 세게 때렸습니다.

"유모, 대체 애가 어떻게 된 거야! 밖에서는 전쟁을 하고 있는데 이 애는 이까짓 일에 매달리다니!"

스탈린은 그날 화가 풀리때까지 욕을 퍼부어댔고 카플레르는 자비롭게도 총살대가 아니라 시베리아의 굴라그로 끌려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1953년까지 복역했습니다.


근데 스베틀라나의 다음 남자친구는 세르고 베리야였다고 합니다.

괴롭구나...

덧글

  • 함부르거 2017/04/25 18:57 # 답글

    천하의 독재자도 자식만큼은 마음대로 안되는군요. ㅋㅋㅋㅋ 딸이 베리야 무릎에 앉아 있는 거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지 정말정말 궁금합니다. ㅋㅋㅋ
  • 2017/04/25 18:5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위장효과 2017/04/25 19:29 # 답글

    게다가 하필이면 라브렌티 베리야 저 인간의 성적 취향이...더더욱 아버지 입장에서는 복장 뒤집어졌겠는걸요 ㅋㅋㅋㅋㅋ.
  • 전위대 2017/04/25 19:48 #

    베리야 마누라가 현명했죠.
  • 로자노프 2017/04/25 20:04 # 답글

    저건 정말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대숙청에서 살아남아있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인데요. 하기사. 스탈린 딸과 사귀는 거라 굴라그로 간거라지만 어쩌면 스탈린 딸을 안 사귀었으면 굴라그가 아니라 총살대로 갔을지도...
  • 전위대 2017/04/25 20:05 #

    스탈린 동지도 딸에겐 물렀던 것인가...
  • 위장효과 2017/04/25 20:08 #

    http://exeout2004.egloos.com/3522790

    심지어 베리야는 이런 병크도 저질렀었는데 생존에 성공...

    사실 세상 아버지들은 거의 대부분 딸에겐 무르게 마련입니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원조 박통과 그 딸과 그리고 최 모씨...(읍읍)
  • 액시움 2017/04/25 23:48 #

    근데 독소전 초기처럼 내 코가 석 자일 때도 숙청이 이루어지긴 했나요?
  • 로자노프 2017/04/26 00:20 #

    장성 한둘이 총살되긴 했다고 들은 것 같긴 한데 저도 이건 잘 몰라서. 다만 저 첫번째 남자친구는 나이를 보면 대숙청때도 충분히 성인인 30대였으니 말이죠. 행동거지 봐선 대숙청때 제일 먼저 총살대에 올라도 할 말이 없을 급이라...
  • 에르네스트 2017/04/26 07:48 #

    뭐 독소전 초기쯤 가면 정치적 보다는 패배한 죄로 총살당하는 편이죠(서부 전선 사령관 드미트리 파블로프가 스몰렌스크에서 털린 죄로 총살)
  • 위장효과 2017/04/26 08:08 #

    장성정도가 아니라 고위급 정치위원중에도 전장에서 삽펐다는 이유로-그런데 그 삽질이 진정 화려했는지라 누구도 쉴드가 어려움-총살당한 예가 있습니다.
  • 셰이크 2017/04/25 22:49 # 답글

    이것만은 쇠돌이 동무에게 공감할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저...저새끼 콱.....하고 싶지만 그렇지만..그렇지만 정말로 콱!해버리면....일단 냉장고에 집어넣고 마음이 식으면....하지만...하지만 ....이새끼 정말 콱....'
  • RuBisCO 2017/04/25 23:46 # 답글

    저 작자에게도 저런 인간적인 면이 있었군요 ㅋㅋㅋ
  • 무명병사 2017/04/25 23:54 # 답글

    서기장 동지, 동지가 버르장머리를 베려놓고는 왜 애꿏은 유모한테 화풀이질이요!
    스탈린 : 동무들, 딸자식 애지중지 키워봐야 쓸모없소. 동무들은 딸을 얻지 않길 바라겠소...
  • KittyHawk 2017/04/25 23:55 # 답글

    그런데 베리야도 스탈린과 함께 저지른 자기 죄과가 크다는 건 인정했는지 물리적 측면에서 보면 국가 재건에 바쁜 소련 입장에선 억지로 잡아둔거나 다름 없던 위성국들도 그냥 놔주려고 했고(다른 정치국 구성원들이 반대해서 수포로 돌아갔다지만... 헌데 그 베리야의 관점(위성국이나 동맹은 정작 소련을 이용만 할거다)이 옳았을 수도 있었다는게 나중에 소련 도움 없으면 미국에게 두들겨 맞을 쿠바 등이 간덩이 부은 짓들을 저지르려다가 알아차린 소련이 막후에서 실력행사로 밟아버린 사례들이 있는 걸로 아는지라...)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도 가능한선까진 풀어주고 스탈린 사후 정리를 하는 차원에서 잡혀 있던 의사들도 그건 지나치다며 놔주자고 한 걸 보면 종잡을 수가 없더군요. 물론 주코프 등에게까지 증오감을 샀던 그의 행적은 용서 받기 힘들다지만...
  • 2017/04/25 23:5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 2017/04/26 02:00 # 삭제 답글

    이럴 때 의지가 되는게 아내와 엄마인데, 아내를 잃고 반항기가 온 딸을 남자
    혼잣손으로 키워야 했으니 제아무리 강철의 대원수라도 힘들었을 듯요.
    딸은 아빠 닮아서인지 아빠들이 딸에게 약해선지 독재자들의 따님들은
    한성깔 하는 사람이 많은 듯합니다. 대원수고 수령동지고 대통령 각하고 다
    딸 때문에 맘 고생을 해야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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