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약진운동 (3) 대약진의 시작, 치수사업 중국 근현대사

"진시황은 우리에게 크게 못 미친다. 지금 우리는 열명의 진시황처럼 행동해왔다. 단언컨대 우리는 진시황보다 더 강하다. 진시황은 460명을 생매장했지만 우리는 4만 6천명, 아니 460만명은 매장할 수 있다."
-마오쩌둥

1.

15년 안에 영국을 깔아뭉개고야 말겠다는 마오 주석의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마오는 중국을 공업국가로 바꾸려 했습니다. 돈과 기술도 없는 중국이 공업화를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인민의 노예 노동입니다. 바로 대중동원인 것입니다. 산업화를 위해 필요한 자본을 외국에서 꾸는 것을 제국주의 어쩌구 하면서 거부하고 몸으로 때우려 드는 것이 이런 빨갱이 국가들 특징인데 마오쩌둥은 중국에 남아도는 인구를 이용하여 이들로 자본을 대체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중국은 농업국가란 말입니다. 인구는 많지만 이들 대다수는 농삿일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즉 춘경기가 다시 찾아오면 이들을 활용할 기회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마오쩌둥은 농한기 시즌에 쉬고 있던 농민들을 활용하여 매우 대대적인 관개사업을 실시하여 곡물 생산량을 증가시키고자 했습니다. 선조들이 수천년간 해온 것을 몇달 만에 해내겠다는 것이 당의 결심이었습니다. 1957년 10월에만 3000만명의 농민들이 모집되었습니다. 1958년 1월에는 중국 인구의 6분의 1이 관개사업에 투입되었습니다.

백화운동으로 비판적 지식인들도 쓸어버리고 우파 사냥으로 당내 온건파도 사냥한 터라 마오쩌둥과 공산당의 앞길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치수 사업은 무척이나 무지몽매한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간쑤성의 숙청된 지도자들인 쑨뎬차이와 량다준 등은 치수 사업의 속도와 범위에 의문을 제기하던 인물이었습니다. 이들은 5만 헥타르의 관개용지마다 100명의 주민들의 목숨이 들어간다고 비판했지만 이들이 숙청되고 그 자리를 차지한 장중량은 간쑤성 노동력의 70%에 해당하는 340만명의 인민들을 관개사업에 쏟아부었습니다. 엄청난 숫자의 보와 저수지들이 건설되었지만 장중량도 베이징도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장중량은 산맥과 계곡을 관통하는 대운하를 건설하여 간쑤성의 척박한 중부와 서부에 물을 공급하고 간쑤성 전체를 베이징 원명원만큼이나 신록이 우거진 지상락원으로 탈바꿈하고자 했습니다. 산을 옮기는 이 거대한 공사는 베이징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주더 원수가 <타오 강을 산 위로 끌어올리는 것은 자연을 변형시키는 간쑤 인민의 선구적 과업이다>라는 붓글씨를 써주었고 58년 6월에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1961년 여름까지 진행되었고 1962년 3월에 공식적으로 종결되었습니다. 1억 5천만 위안의 공사비와 노동일수 60만일이 소요되었고 2400명이 가혹한 노동에 혹사당하거나 사고로 깔려죽거나 일을 못한단 이유로 공산당 간부들에게 맞아죽었습니다. 이 엄청난 희생을 들여 얻은 관개 토지는 단 한치도 없었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0헥타르입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2.

이 프로젝트의 문제는, 그저 노동력과 전투 정신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으며 기술의 중시는 부르조아지들의 개소리라고 무시하던 공산당의 자세에 있었습니다. 마오쩌둥이나 그의 졸개 셰푸즈는 지질학적 측정 결과나 기술적 조사 내용에 콧방귀를 뀌며 오만하게 떠들었습니다.

"가장 미천한 자들이 가장 영리하고, 가장 특권을 누리는 자들이 가장 멍청하다."
-마오쩌둥

"우리는 신통하다. 어쩌면 우리의 신통력은 이류일 수도 있다. 어쩌면 다른 행성에 우리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고 그렇다면 우리는 이등이겠지만 만약 우리가 그들보다 똑똑하다면 우리는 일등으로 신통한 사람들이다."
-셰푸즈 뭔소린지

목표량의 계산은 오로지 옮길 수 있는 흙의 톤수로 측정되었지 적시적소에 제대로 된 공사를 하고 있느냐가 아니었습니다. 치수국 부국장 류더륜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의 일상 업무는 각성마다 전화를 걸어 그들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숫자에 관해 물어보는 것, 즉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흙을 날랐는가 물어보는 것이었다. 지금 와서 보면 우리가 모은 데이터와 수치 일부는 과장된 게 뻔히 보였지만 그때는 누구도 사실 여부를 확인할 여력이 없었다."

프랑크 디쾨터는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논평합니다.

"작업 대부분이 체계적이지 못했고, 공사에 참여하도록 갖에된 수천 명의 작업자들을 실어 나르고, 몇주씩 숙식을 제공하는 것보다 굴착기와 대형 트럭을 갖춘 몇백명의 인력이 훨씬 더 효율적으로 일을 해냈을 것이다."

삽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무식한 공사 덕분에 1958년 1월 베이징 북쪽 30킬로미터 떨어진 십상릉수고 공사의 경우, 마오쩌둥이 손수 삽질까지 하며 독려했음에도 4월부터 누수 현상이 일어나 폴란드 기술자를 공수해와서 막아보려 했지만 화려한 준공식이 열릴 때까지만 겨우 유지시킬 수 있었고 몇년 만에 저수지는 말라버렸습니다.

이런 일은 전국에 비일비재했습니다. 1957년 4월, 강의 퇴적물을 없애기 위해 시작된 싼먼샤 댐 건설 사업의 경우, 미국 유학파 황안리 등이 재앙으로 이어질 것으로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오쩌둥이 "이 헛소리는 뭔가?"라고 인민일보에 사설까지 실으며 모든 반대의 목소리를 때려잡았는터라 무턱대고 강행되었습니다. 600만 제곱미터의 흙이 옮겨졌으나 공사를 서두르는 과정에서 퇴적물을 빠져나가게 해야 하는 배출구를 콘크리트로 막아버려서(...) 오히려 퇴적물의 축적은 엄청나게 빨라졌고 강의 수위도 올라가 시안의 주요 공업지대가 침수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저우언라이는 토사가 오히려 두배로 늘었음을 인정했고 개축공사를 해야 했는데 개축공사 결과 저수 수위가 낮아져서 비싼 돈 들여 설치한 발전기도 쓸모없어졌습니다. 결국 중국 정부는 너무도 많은 토사를 감당할 수 없어 외국인들의 싼먼샤 댐 방문 금지로 대응했습니다.



3.

위에서 보셨듯이 일처리가 이따위인데 제대로 된 성과가 있을리 만무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중앙은 각 성의 지도부들을 닦달하여 더 큰 성과를 요구했는데 그 성과라 해봐야 더 많이 파낸 흙더미에 불과했습니다만, 중앙에서 그걸 원하니 밑은 그걸 따라야지 않겠습니까. 1958년 1월 15일 인민일보가 윈난 성을 비난하자 셰푸즈는 다른 지역을 따라잡기 위해 노동력의 최대 50%를 관개공사에 투입하는 한편 하루에 10시간 씩이던, 철야를 하던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1월 19일 인민일보는 윈난성에서 250만명이 흙을 나르고 있다고 보도했고 셰푸즈는 3년 안으로 윈난성이 완전히 관개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윈난 사람들은 마오쩌둥 본인조차 혀를 내두른 가혹한 노동에 뼈가 빠지도록 혹사당한 것은 물론이요 줄에 묶이고 두들겨 맞고 갖은 욕설을 들어야 했으며 본보기로 칼부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임시변통 노동막사란 것이 세워져서 불순분자들을 수용했습니다. 불만에 대해 솔직하게 조사팀에게 직고한 사람들은 반동분자, 방해공작원으로 규정되었습니다.

농부들의 우파적 요구에 굴복했다고 비판받은 루량현의 경우, 새 지도자 천성녠이 나타나 병자들까지 모조리 다 작업장으로 밀어넣었고 주민들에게 문자 그대로 가죽 채찍을 휘둘렀습니다. 헌병대가 돌아다니면서 노예노동을 강제 집행했고 1958년 2월 첫 아사자가 보고되었습니다. 6월엔 부종이 퍼졌으며 아사자가 속출했습니다. 의료진들은 차마 이것이 굶주림에 의한 것이라 보고하지 못하고 전염병이라고 거짓말하며 항생제를 처방했습니다. 수많은 시체들이 거적때기에 덮여 도랑과 연못으로 버려졌습니다. 간쑤성 사람들은 공사장을 저승이라고 불렀습니다. 언론보도용으로 30분만 일하긴 했어도 어쨌든 삽을 잡아보아 노동의 가혹함을 알았던 마오쩌둥은 1958년 3월 장웨이칭의 보고를 들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즈푸는 300억 세제곱킬로미터의 흙을 옮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내 생각에 그러면 3만명이 사망할 것이다. 쩡시성은 200억 세제곱킬로미터의 흙을 옮길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러면 2만명이 사망할 것이다. 장웨이칭은 6억 세제곱킬로미터만을 약속했는데 그러면 아마도 안 죽을 것이다."

본격적인 대약진이 시작되기도 전에 중국에서 수만명의 목숨이 사라졌습니다.

4.

이 병신같은 공사는 1950년대 말부터 더 많은 인명을 집어삼켰습니다. 1959년 호우로 허베이 성은 물에 잠겼습니다. 엄청난 노예 노동으로 만들어진 저수와 보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습니다. 허난, 산둥, 안후이, 장쑤에 이르는 중국 전역에서 모든 것이 물에 잠겼고 사람들은 야위었습니다. 일부 지역은 사망률이 10%에 달했습니다. 700밀리리터에 불과한 강우량이 모든 것을 파괴했습니다. 심한 경우엔 300밀리리터의 강우량으로 재난이 찾아왔습니다. 주민들은 관개공사에 대해 분노를 터트렸고 이 사태를 조사한 후야오방도 한탄했습니다.

"일부 간부들은 정직하고 교훈을 배워 가고 있으나 일부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심지어 일부는 자연재해라고만 주장한다."

그 다음에 찾아온 것은 가뭄이었습니다. 전통적인 논밭은 4~5일간 물을 머금었지만 관개공사를 거친 논밭에선 72시간을 버티지 못했습니다. 관개시스템이 토사로 막히면서 두배의 용수가 필요했습니다. 토양 침식량은 50% 증가했고 펌프도 저수지도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후베이 성의 경우, 관개공사 전인 1957년에 200만여 헥타르에 물이 공급되었으나 관개공사 후인 1961년엔 100만 헥타르에만 물이 공급되었습니다. 후난 성은 엄청난 자금과 인력을 들여 고작 2만 헥타르의 경작지만 얻을 수 있었습니다. 급기야 댐들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광둥과 허난에서 댐들이 줄줄이 무너졌습니다. 1980년까지 허난성에서만 2976개의 댐이 무너지고 1975년 8월 태풍 때 댐의 붕괴로 23만명이 사망했습니다. 허난 성 수자원 부서 부장은 싸늘하게 논평했습니다.

"그 시대에 생긴 쓰레기는 아직 완전히 치워지지 않았다."

덧글

  • 지녀 2017/04/20 17:10 # 답글

    첫줄에 어안이 벙...해졌습니다.

    이제 읽어봐야지...(...)
  • 전위대 2017/04/21 19:42 #

  • 존다리안 2017/04/20 17:45 # 답글

    박정희를 독재자로서 적쟎은 사람들이 열심히 깝니다만...
    솔직히 박통은 모주석에 비하면 우리 민족의 희망이요. 신시대의 지도자였습니다.
    어떻게 인간들 대가리가 저렇게 망가질 수 있는 건지...
  • 위장효과 2017/04/20 20:44 #

    이쪽 공산당 지도자중 그나마 뭔가 제정신 박힌 인간은 호 아저씨 하나 정도 아닌가 싶습니다.

    마오 주석도 그렇지만 비율로 따지자면 몇 배 더 큰 규모로 대살육을 해치운 폴 포트같은 경우도 있고, 아니 당장 우리만 해도 머리 위에 3대째 저 병신 짓거리 하는 돼지 3대를 이고 있으니...
  • 산마로 2017/04/21 08:27 # 삭제

    마오만큼은 아니지만 호치민도 학살에 책임이 있고, 전쟁과 일당독재를 만든 것도 호치민입니다.
  • 2017/04/21 19:4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7/04/20 20:3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4/21 19:4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위장효과 2017/04/20 20:42 # 답글

    대륙의 기상 대륙의 기상 그러지만...

    진짜 이 정도면 수 양제가 와서 보고 따꺼! 하고 엎드릴 지경이네요.
  • 전위대 2017/04/20 20:48 #

    1. 수양제 운하는 마오의 댐을 떡발라버릴 정도의 퀄리티.

    2. 사실 호지명도 모씨에 비해서 많이 정상적인 것이지 삽질이 워낙 많은지라 -ㅅ- 당장 베트남 토지개혁건으로 10만명 죽인건...
  • 위장효과 2017/04/20 20:52 #

    1. 천년전 전제군주와 그 참모진만도 못한 콩사탕 크라쓰...

    2. 어디까지나 그나마...
  • 천하귀남 2017/04/21 14:59 # 답글

    권력유지를 위해 반대파를 밀어버리는 과정에서 옳지 않은것에 제대로 반대의견 내줄 사람이 남지 않을테고 그러면 안전장치가 없으니 대형사고 치는것은 시간문제가 될 뿐이지요.

    독재자가 길게 하면 할수록 빠지게 되는 문제라 봅니다.
  • 전위대 2017/04/21 19:42 #

    이래서 말하는 자를 죽여놓고 망하지 않는 나라가 없는 법이지요.
  • 2017/04/21 15:2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4/21 19:4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동빵홍에 취한다 2017/04/21 18:42 # 삭제 답글

    다시 무덤에서 마오쩌둥이 되살아나서 대륙을 한10년만 더 통치했으면 하네요
  • 전위대 2017/04/21 18:42 #

    습씨가 모씨 따라하고 있는 듯.
  • 네리아리 2017/04/21 19:16 # 답글

    진짜 이러면 비꼬지도 못하겠네요. 진짜 몇만명 죽는게 대수롭지 않고 통계숫자로 보일정도로 최악이네요.
  • 전위대 2017/04/21 19:41 #

    그렇죠 -ㅅ-
  • RuBisCO 2017/04/22 08:10 # 답글

    인도의 어처구니 없는 관개사업(제대로 사업을 돌릴 행정력이 없으니까 한다는게 개뱔 농가에 지하수 펌프를 달거나 우물을 팔 돈을 나눠주고 퉁쳤죠. 결과는 ㅡㅡ;;)조차도 저보단 정상적으로 보이는군요.
  • 지나가던과객 2017/04/22 09:03 # 삭제 답글

    수양제가 한 공사는 당대에는 삽질이었지만, 후손들이 유용하게 사용했다고 하죠.
    하지만 마오 주석의 삽질은 정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발전할 시간을 벌어줘서 정말 고마움을 느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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