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양정부의 빚내기 놀이 중국 근현대사

위안스카이가 집권한 1912년부터 1916년까지 중앙과 지방은 총 68회에 걸쳐 5만 5646여 만량에 달하는 외채를 조달하였다. 50회의 외채는 주로 군비지출에 사용되었고 그밖에 철도, 전신 건설 등에도 사용되었다. 1912년에서 1927년으로 시기를 확대해보면 외채를 468회 빌렸고, 총대출금은 13억 4800만 원에 달했다.(청나라는 208회, 국민정부는 108회) 대부분은 국내 전쟁의 군비로 쓰였는데 일부분은 전쟁의 배상금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국가의 주권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 당시 중국의 외채 규모는 사실상 청 정부를 넘어선 것이다. 이 시기에는 주로 일본에서 돈을 조달하였는데 총 부채의 70% 이상을 차지하였다. 이 부채를 통해 제국주의 열강은 중국의 관세를 장악하게 되었고 엄격한 대출조건을 통해 북양정부에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중국에 대한 유럽 열강의 관심과 여력이 줄어들면서 북양정부에 대한 차관도 줄었다. 북양정부가 외채를 통한 자금조달을 의도대로 하지 못하게 되면서 대량의 국채를 발행하게 된다. 1912-1926년간 재정부는 27종의 국내 채권을 발행했다. 그 채권규모는 6억 1400만원에 달했다. 채권은 할인되어 유통되었는데 가장 낮게는 20%까지 할인되어 정부의 실제 수입이 발행액보다 적은 상황도 나타났다.

북양정부의 재정적자 원인과 군벌통치에 미친 영향, 성시일, 영남대학교 중국연구센터
중국과 중국학 25집, 86~87페이지


3줄 요약

1. 북양군벌은 468회에 걸쳐 13억 4800만원의 빚내기를 함. 그 이유는 전쟁놀음 때문.

2. 그게 안 먹히니까 국채로 6억 1400만원 빚내기를 함.

3. 그 똥은 국민정부가 치움. -ㅅ-

덧글

  • 레이오트 2017/03/26 15:24 # 답글

    채권은 그 할인률이 2%여도 그 가치가 폭락한다는데 할인률 20%면 이건 그냥 휴지조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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