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62년에 가가린의 비행 이후 대대적인 선전에 고무된 소련 우주 프로그램의 지도자들은 미국 영토의 어느 곳으로도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을 군사 우주기지의 건설을 위해 로비를 시작했다. 소련군 사령관 우주 담당 부관인 니콜라이 카마닌 장군은 군 고위 사령부와 흐루쇼프가 우주의 군사화에서 잠재력을 보지 못하는 데 실망했다. 카마닌은 1962년 9월 13일자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말리놉스키, 그레치코, 자하로프는 우리가 우주군을 창설한 최초의 국가가 될 기회를 놓쳐버렸다. 나는 우주군이 지구상에서 공산주의 지배를 촉진할 수 있는 절대적인 군사력이라고까지 말하겠다."
1961년 10월 슈퍼 폭탄의 실험은 프로젝트들을 파생시켰다. 미래의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될 안드레이 사하로프는 비슷한 폭탄을 큰 어뢰로 잠수함에서 발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뒤 1962년에는 학술원 회원 미하일 라브렌티예프가 북아메리카 연안을 따라 지진으로 일어나는 쓰나미와 비슷한 거대한 인공파도를 발생시키기 위해 100메가톤급 폭탄을 사용할 것을 제안하는 메모를 흐루쇼프에게 보냈다. 라브렌티예프는 미국과 전쟁을 할 경우 이 파도가 적에게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가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일련의 실험을 거친 후 소련 과학자들은 대륙붕이 그런 초강력 파도로부터 뉴욕시를 비롯한 미국 도시들을 보호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 괴이한 프로젝트는 취소되었다.
실패한 제국, 블라디슬라프 주보크, 아카넷
331~333페이지.
2번의 인공섬은 나중에 쿠바 핵위기를 오버랩시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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