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만 공습 이후 일본 대사관 직원들의 운명은? 기타 근현대사

쇼와 육군을 보고 인상깊은 부분이라 언젠간 포스팅하려고 했는데 이제서야 하게 되는군요.(그게 작년 여름이었는데!) 자질구레한 서문 없이 바로 들어갑니다.

1.

1941년 12월 7일 오후 1시 50분, 일본 정부의 최후의 대미통첩을 가지고 노무라 기치사부로, 구루스 사부로가 국무성으로 감. 잠시 후 중대 특별 늬우스 방영. 바로 진주만 공습의 늬우스.

"'Pearl Harbor attacked! Pear Harbor attacked!' 라디오에서 반복하여 진주만 기습을 알리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관헌에 의해 전화는 끊겼고 외부와의 교통은 특별 허가를 받은 자 외에는 모두 금지되었다. 이리하여 6개월에 이르는 적국에서의 억류생활이 시작되었다."
-주미 일본대사관 주재 해군무관 사네마쓰 유즈루의 기록.

2.

그런데 대사관 직원들은 기밀서류와 암호장비 등을 폐기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정문을 안 닫음(...). 30여명의 기자들이 난입하여 진주만 기습 이유, 암호 기계를 처리하면서 피어오른 연기에 대해 설명을 요구했는데 대사관 대변실이자 해군무관실 소속의 사사키 군이치가 영어를 잘했던 관계로 이들을 말빨로 쫓아냄.

3.

하지만 기자들의 난입은 정말 얌전했던 것이었고 잠시 후 매사추세츠 대로 쪽으로 분노한 미국 군중들이 몰려들기 시작. 분노한 군중들이 화염병을 만들어서 일본 대사관을 불사르려 했지만 50여명의 기마경관이 달려와 이들을 제지. 이때 기마경관들의 지휘관인 어느 대위가 "도쿄에 있는 그루 미국 대사를 잊지 마라!"며 절규하여 군중들은 겨우 진정함. 하지만 대부분 청년으로 구성된 군중들은 대사관 포위는 풀지 않고 "Treacherous attack", "Dirty Jap"따위의 욕을 퍼부음. 이 군중은 엄청난 숫자로 불어났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물러남.

4.

이후 미국 경찰들이 대사관에 들어와 비품과 물품을 엄밀히 검사하고 일부 물건을 압수. 12월 7일 저녁까지 대사관 직원들의 가족들도 모두 대사관에 수용됨. 대사관 안에 주거시설이 부족하여 갑자기 늘어난 대사관 안의 일본인들은 테이블이나 리놀륨 바닥 위에서 잠.

5.

대사관 주위는 미국 경찰, 관헌이 엄중히 감시, 호위하고 있었고 관저 입구 근처 방에 연락원 명목으로 미국 관리가 파견됨. 하지만 미국은 대사관 내부 일엔 간섭하지 않고 식량과 일용품 입수의 편의를 봐주었으며 라디오 청취도 허용하여 대사관은 외부와의 교통, 통신을 제외하곤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음.

6.

12월 10일, 일본과 미국 외교관들이 각각 교환될 것이란 정보가 전해져서 이제 살아서 귀국하거나 가족들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 체념하고 있던 일본인들은 크게 기뻐함.

7.

12월 29일, 대사관 직원과 그 가족 일동은 대사관에서 소개되어서 버지니아 주 포트스프링으로 이송됨. 그들은 미국 경찰의 엄중한 경호를 받았으며 워싱턴 D.C 주민들이 쏟아져나와 그들을 구경. 이후 그들은 특별 열차를 타고 정치가나 고급 관리들이 사용하는 고급 호텔인 홈스테드 호텔에 수용됨. 미국 정부는 호텔 전체를 일본인들을 수용하기 위해 징발함. 노무라 기치사부로 대사의 비서 겸 통역인 엔세키 마나부는 다음과 같이 회고.

"대사관에 일용품이 없어서 나는 대사관을 후위하고 있던 FBI의 로이 모건을 대동하고 슈퍼마켓에 물건을 사러 갔다. 얼굴을 아는 점원이 전쟁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싸움이다. 너와 나는 친구다'라고 말했다.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건을 사고 돌아온 엔세키 마나부가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려 하자 매니저가 일본인이냐?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면 여기서 나가라 라고 쪽지를 건네자 로이 모건이 그 쪽지를 찢어버림.

8. 

쇼와 육군에서 그 이후는 적지 않아 자세히는 알수 없지만 노무라 대사 등은 1942년 8월에 일본으로 송환. 구루스 사부로 대사는 공직 추방되었으나 노무라 대사는 이후 조지프 키넌 검사의 초청을 받아 데이고쿠 호텔에서 같이 식사를 하는 등 미국에서도 이 양반은 할만큼 했다는 것이 인정되었는지 대우가 좋았다 함.


대충 쓴 졸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진주만 공습 직전 루스벨트 대통령이 히로히토에게 친전을 보낸 일이 있었는데 히로히토는 이것을 진주만 공격 직전에야 받아봄. 왜냐? 육군성에서 미국에서 오는 모든 전보는 15시간 늦게 와야 한다는 방침을 정했기 때문.(...) -ㅅ- 이 원칙엔 루스벨트가 보낸 친전이라도 알 바 아님.

덧글

  • 2017/01/12 18:5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1/12 18:5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위장효과 2017/01/12 18:50 # 답글

    3. 어느 대위는 경위로 번역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8. 예전에도 적었는데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거사에서 부상당한 두 사람이 각기 태평양 전쟁의 시작과 끝에 관여했다는 게 역사상의 이야깃거리지만(노무라 키치사부로 주미공사가 원래 해군 출신-해군병학교26기에 최종 계급 해군대장-인데다가 상해사변당시 3함대사령관이었고, 시게미츠 마모루 외상은 상해사변당시 주중공사였죠.) 미주리호의 항복조인식에서 해군사절로 참여한-육군 장교들은 특유의 하이칼라인데 반해 해군 장교들은 오픈칼라의 약식제복을 입었습니다- 요코야마 이치로 해군소장이 바로 저 진주만 공습 당시 워싱턴 주재 해군무관으로 대사관 식구들과 같이 있었던 것도 이야기할만 합니다. 시게미츠 외상이 서명하는 것을 정면에서 잡은 칼라 사진을 보면 그의 좌측 후방에 요코야마 소장이 서있습니다. (맥쇼군은 뻣뻣하게 서있는데 푹 숙인 시게미츠 외상의 옆 모습이 대비되는 측면 사진 말고요^^)
  • 전위대 2017/01/12 18:51 #

    3. 저도 군인이 아니라 경찰을 대위로 번역한 것을 의아히 여겼습니다만 일단 원 번역이 그러니 그렇게 적었습니다.

    8. 흥미로운 일이죠.
  • 위장효과 2017/01/12 18:59 #

    3. 일단 번역자를 족칩시다!!!

    8. 요코야마 소장이 해외주재무관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해서 미국통으로 인식되었다고 합니다-비슷한 예가 바로 산본오십육 연합함대 사령장관.)
  • KittyHawk 2017/01/12 18:57 # 답글

    히로히토의 국내외 정치 대응 과정 중에 가장 흥미로운게 2.26 사건 때는 확실히 바보같았지만 충정으로 움직인건 분명했던 기타 잇키와 장교들에 대해선 '내 노신들 죽여놓고 뭔 소리냐?'식의 감정이 담긴 반응을 보여 그들이 와해되게 만들어 놓았더니 이후의 중일전쟁 등에선 '포로에 대한 국제법에 근거한 처우를 할 필요가 없다', 사이판의 신민들에겐 '옥쇄'를 지시하고 이것 때문에 그 도조조차 경악했다는 일화를 보면 대체 이 자는 무슨 생각이었던건가 싶어지더군요.
  • 전위대 2017/01/12 18:59 #

    일단 연구 좀 해봐야겠습니다.
  • 위장효과 2017/01/12 19:19 #

    1. 충정이라고 보기에는...나중에 죽기전 남긴 사세구에서 쇼와를 도련님이라고 표현한 거 보면 충정은 아니었던 거 같습니다. 게다가 기타 잇키는 국체론을 부정한 인물이기도 하고...나중에 천황중심주의로 돌아섰다고도 평가하는 글이 있지만 막상 2.26 재판과정에서 다른 주동자들(특히 육군 소장파 장교들)과 달리 강력한 천황의 통치를 온전히 긍정하는 것도 아니었고요. 진짜 이래저래 희한한, 정의하기 어려운 인물이더라고요.(사실은 평가를 포기...)

    2. 전쟁말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해군군령부총장 오이카와 코시로가 어전대본영 회의에서 "앞으로 해군은 육상공격기와 함재기등 항공전력을 중점으로 투입할 계획입니다."라고 상주하자 "그럼 해군의 수상함 세력은 뭐할 건데?"라고 반문해서 어마뜨거라 하고 해군 수뇌부로 하여금 야마토의 자살출격계획을 짜게 만든 것도 히로히토라는 게...그런데 또 막판에 가면 아나미 고레치카 육군대신, 토요다 소에무 군령부총장등의 결사항전론을 꺾은 사람이 히로히토입니다. 찾아볼 수록 뭔가 중요한 포인트마다 결정은...
  • 명탐정 호성 2017/01/16 05:52 #

    2.26 사건은 자기 예정에도 없는 일을 하여 자신(히로히토)를 놀라게해서 빡치게해서 그런거 같고

    중일전쟁이나 사이판은 그냥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그런거 같습니다.
  • 네리아리 2017/01/12 19:08 # 답글

    주미일본대사에겐 아닌 밤중에 홍두깨...같은...
  • 전위대 2017/01/12 19:13 #

    본인들도 전쟁이 일어날 줄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12월 7일에 일어나는 건 그냥 날벼락...
  • 네리아리 2017/01/12 19:14 #

    ...세상에 대사관들조차도 12월 7일에 일어날줄 몰랐다니 이건 또 충격이네요.
  • 전위대 2017/01/12 19:15 #

    지난 번에 글을 썼지만 도조 히데키도 12월 7일 전쟁이 터진다는거 얼마 전에 알았으니 -ㅅ-
  • 전위대 2017/01/12 19:15 #

    정확한 날짜는 11월 29일 -ㅅ-
  • 위장효과 2017/01/12 19:21 #

    그러면서 정작 연합함대는 "우리 공격하기 30분전에 미국무부에 대미선전포고문이 들어가야 해!":라고 강조했고, 진주만 기습이 성공한 다음에 "우리 공격들어간지 한 시간 뒤에 국무부 방문해서 포고문 전달했답니다."라는 소식을 전달받고는 다같이 멘붕했다죠...
  • 까마귀옹 2017/01/12 19:54 #

    혹시 그 대본영 아해들, '대사관에게 미리 알리면 기밀 유출 되니까 그 전에는 알려주지 말자....'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요?
    선전포고를 왜 하는지도 모른다는 뜻인데 대본영 아해들이라면 그럴듯 해서.
  • 까마귀옹 2017/01/12 19:52 # 답글

    1. 저 최후통첩서 가지고 간 노무라에게 헐 장관이 한 말을 외교상 예법을 빼고 해석하면 'ㅆㅂ ㅅㄲ들아, 니들이 이러고도 나라냐? 꺼져!'죠. 진짜.

    3,4. 그러고 보니 도쿄에 있던 미국, 영국 등의 외교 공관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물론 외교관들이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도 궁금하지만, 그 공관 건물들과 집기들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 궁금해서요. 특히 도쿄 공습 때(...).
  • 전위대 2017/01/12 20:06 #

    한번 알아봐야겠군요.
  • 위장효과 2017/01/12 22:14 #

    연합함대 입장에서는 어쨌든 국제법적인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는고로 워싱턴 시각으로 공습 시작 30분전에 해당 문서가 수교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그렇게 전달됐고요.
    문제는 기밀문서이기 때문에 대사관 일반직원이 아닌 고위외교관이 직접 암호기 돌리고 타이핑했는데 하필 독수리타법인지라 시간이 무지 걸렸...(망할) 그 덕에 이미 진주만 공습의 소식이 국무부까지 들어간 상황이었고, 코델 헐 국무장관은 그야말로 개빡쳐서 욕을 퍼부었고...

    위에 워싱턴 주재 일본대사관 직원-대사부터해서 일반직원들까지-이 1942년 6월에 귀환한 것도(미드웨이 직후였을 겁니다) 외교관및 주재무관 교환협정에 따라서 주일미국대사관 직원들과 교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겁니다. 이건 사실 독소전 개전후에도 진행되었고요. 참고로 개전 당시 주소 독일 대사 폰 데어 슐렌베르크는 나중에 7.20음모에 가담했다가 교수형에 처해졌고요.

    그리고...사실 대본영이 총사령부 비슷한 모양이긴 합니다만 어디까지나 육해군에서 보낸 대표자들에 더해 내각수뇌부가 모여서 회의하는 집단이지 뭘 결정하는 동네는 아니었습니다-애초에 결정해서 일 한 적이나 있나...-진주만 공습에서는 아예 연합함대(해군군령부도 아니고)사령부가 나서서 필히 공습 전에 전달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고 이걸 관철시키긴 했지만...현실은 시궁창.
  • 까마귀옹 2017/01/12 22:42 #

    그러고 보니 제가 초짜 밀덕 시절에, 일본 해군의 '연합함대 사령장관'이라는 용어에 대해 '일본 해군에서는 한국군의 해군작전사령부 쯤 되는 편제를 연합함대라고 부르나? 그런데 이소로쿠 이 양반이 왜 이렇게 목소리가 커? 자기가 해군 총장도 아니고.'라고 생각했었죠..
  • 지나가던과객 2017/01/12 20:00 # 삭제 답글

    대일본제국은 표면은 천황중심의 중앙집권국가인데 실제는 막부시절의 봉건국가체제를 유지한 희한한 나라로 보이네요.
    저런 시스템으로 청, 러시아와 상대로 이긴게 용합니다.
    육군과 해군이 사이가 안 좋은것도 문제지만, 선전포고문을 기밀로 한답시고 공습 시작 후에 전달되게 하다니......
    더군다나 천황에게 온 타국의 국가원수의 친필서한도 제 때 전달되지 못하게 한걸 보니 지금 일본 우익놈들의 천황사랑이 이해가 안 갑니다.
  • 전위대 2017/01/12 20:06 #

    중심의 천황이 일을 좆같이 함.
    쇼와 평전을 보니까 서로 대등한 수많은 부서들의 접점은 오로지 천황인데 다들 자기들이 독립된 어쩌구 지랄하면서 따로 노니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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