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스 일대기 (118) 일본군의 항복과 만주 경쟁 장제스 일대기

1945년 9월 9일 항복하는 일본군 사령관 오카무라 야스지. 왼쪽은 허잉친이다.


1945827일 오후 5, 난징 교외 다쟈오 공항에 7개의 수송기와 1백명의 국민당군이 내렸다. 상하이엔 탕언보가 지휘하는 3방면군의 선두 부대들이 도착했다. 98일 허잉친이 난징에 도착했다. 99일 난징 중앙군관학교 강당에서 오카무라 야스지 대장과 허잉친 일급상장이 마주 앉았다. 오카무라 야스지의 의자는 그가 패배자라는 것을 반영하여 허잉친의 의자보다 낮은 의자였다. 허잉친은 항복 문서에 조인하였고 이로 인하여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북위 16도 이북과 만주를 제외한 중국 본토, 타이완에 주둔한 모든 일본군이 국민당에 완전히 굴복하였다. 지나파견군의 숫자만 105만에 달했고 모든 일본인의 숫자를 합치면 300만을 넘었다. 일본군은 항복했지만 이제 모든 것이 호전되는 것은 아니었다. 8년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토의 복구, 난민의 수습, 한간 처리, 경제 회복을 비롯하여 산더미같은 과제들이 남아 있었고 무엇보다도 전쟁 기간 동안 수십배로 몸집을 불린 공산당이 큰 문제였다. 장제스는 오카무라 야스지가 항복한 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오늘날 국민당과 국민당 정권의 위기는 1931918일 일본이 선양을 침략한 이래로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만일 우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의 계획들이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입을 정도로 스탈린과 마오쩌둥에게 기회를 주게 될 것이다.”

 

장제스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만주를 빨리 국민당이 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압도적인 공업력과 곡물 생산을 자랑하는 요충지인 만주를 차지하는 것만이 장제스가 중국 대륙의 유일한 지배자라는 것을 현실화하는 것이라고 장제스는 생각했다. 하지만 앨버트 웨드마이어는 그것이 너무도 위험한 계획이라고 여겼다. 전선이 너무도 급격히 확장되는 것에 웨드마이어는 분명히 반대했다. 그는 산해관을 기점으로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이 낫다고 여겼다. 그래서 웨드마이어는 장제스에게 차라리 만주를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소련 5개국의 보호통치에 맡기고 그 동안 만리장성 이남에 유능한 행정관과 군사지도자들을 파견하여 장제스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에는 소련의 일방적 행동을 견제하는 목적도 있었다. 웨드마이어는 공산주의자들을 믿지 않았고 그들이 한번 차지한 곳에선 절대로 자발적으로 물러나지 않는 종자들이니 국제적인 견제가 필수적이라 보았다. 또한 웨드마이어는 국민당을 지원하기 위해 육군 7개 사단을 중국에 파견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합동참모장 회의는 이를 거부해고 대신 해병대 2개 사단을 파견해주었다. 이에 웨드마이어는 해병대 병력으로 산둥 반도와 베이징을 사수하는 방어선을 꾸렸다.

 

하지만 장제스는 1931년 이래로 14년이나 외세에 강점되었던 만주를 또 다시 외세에 맡기는 것을 단호히 거부했으며 마오쩌둥이 만주를 차지하는 것 역시 용납하려 하지 않았다. 마오쩌둥이 부유한 만주를 차지하는 것은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으로 여겼다. 만약 공산당이 만주를 공산화시킨다면 그곳을 바탕으로 만리장성 이남으로 내려올 것이었다. 장제스는 그런 위험성을 감수하려 하지 않았고 즉각 쑨리런의 제1군을 비롯하여 카보네이드 작전에 동원하기로 한 최정예 부대를 만주에 급파했다. 장징궈를 비롯한 만주 지역사령부가 세워졌고 사령부엔 두위밍이 임명되었다.

 

물론 만주를 탐내는 것은 마오쩌둥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오쩌둥은 19456118차 전국대표회의에서 동북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가 있으며 일본이 항복한 이후 화북의 공산군을 만주로 급파했다. 만주를 점령하고 있던 소련군은 마오쩌둥의 공산당은 지원하는 한편 장제스의 군대는 조직적으로 방해하여 국민당은 병력을 만주로 수송하는 애로사항이 꽃피었다. 애초에 국민당 주력이 화중, 화남에 몰려 있어 화북이 근거지인 공산당보다 시작부터 어려웠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소련에 방해에 분노한 장제스는 소련 연락관들을 추방하고 미국에 도움을 호소했다. 스탈린은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기에 소련군 지휘관 말리노프스키에게 국민당이 동북 지방에 정치권력을 세우는 일을 원조하라는 새로운 지령을 내렸고 장춘에서 소련군은 공산당원 시장을 해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만주에 파견된 13만의 국민당군은 넓은 만주를 관리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만주에 파견된 국민당군과 인사들은 남방 출신이라 만주에 연고가 없었다. 만주를 지배했던 장쉐량을 석방하여 그를 활용하자는 주장도 제기되었으나 장제스는 단칼에 거부했다. 반면 공산당은 장쭤린의 아들들을 이용하여 봉천파의 인맥을 적극 활용했다. 언듯 보기에 장제스는 만주를 지지하는 듯 했지만 워싱턴과 모스크바의 도움으로 유지되는 아슬아슬한 것이었고 만주 내부의 공산당의 역량과 국민당의 역량을 비교해보자면 공산당이 월등했다. 만주 진출이 용이했던 공산당은 수십만에 달하는 부대와 당원을 파견하여 국민당이 장악한 일부 대도시를 제외한 만주의 90%를 장악한 상태였다. 소련은 만주의 공업시설과 재화를 마구 약탈했으며 일본군에게서 압수한 무기로 공산당을 무장시켜주기까지 했다. 덕분에 린뱌오의 동북인민자치군의 무장은 크게 향상되었다. 소련의 이러한 행동은 국공내전의 향방을 크게 결정지었다.


덧글

  • 위장효과 2016/04/19 18:08 # 답글

    그런데 만주의 공업력이란 게 기본은 만철등 일본의 만주국 설립 이후 진출한 일본계 기업들에 의해 이루어졌던 거 아니었나요? (그때 진출했던 기업들 중에는 브리지스톤도 있었다니 뭐) 철도야 근간은 러시아-일본이 러일전쟁 이전부터 깔아뒀던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확장되었고, 공업단지들도 이시와라 간지 등이 자신의 협력자들과 더불어서 만주를 대소 전선의 배후기지로 키우기 위해 건설했던 것들이니...
  • 전위대 2016/04/19 18:12 #

    일본이 건설한 것도 있는데 장쭤린-장쉐량 시절의 공업화도 상당합니다.
  • 위장효과 2016/04/19 18:16 #

    아, 장씨 부자를 생각못했군요.

    그리고 장쉐량을 석방하여 활용하자는 주장...이건 시도해볼법도 했는데 너무 옹졸했네요. 하긴 십 몇 년이 지났긴 했어도 장쉐량 가문의 본거지였으니 거기가서 딴 생각 품으리란 의심은 할 법도 했지만.
  • 전위대 2016/04/19 18:26 #

    풀어줬다 뒤통수당한 일이 너무 많다보니요... 솔직히 저 시절 중국 군벌들이라면 다 저러는게 정상입니다. 신의란 건 없던 시대였죠. 그나마 장제스 정도 되니까 저 정도까지 올라갔지 나머진 장제스가 차지했던 지위를 얻으려고 평생 아등바등하다가 내부 배신으로 몰락했죠.
  • 레이오트 2016/04/19 19:40 # 답글

    놈놈놈에서 묘사된대로 만주에는 채산성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양의 원유가 매장되어 있어서 더더욱 만주가 필요했지요.
  • 전위대 2016/04/19 20:03 #

    다만 이때는 유전이 발견되기 전입니다. 있지 않을까 하는 추정은 있었지만요.
  • 레이오트 2016/04/19 20:07 #

    석유가 아니더라도 만주는 중국 내에서도 여러가지 자원이 풍부한 지역으로 유명했으니 여러모로 필요한건 변함이 없지요.
  • 재팔 2016/04/20 17:33 #

    만주에 원유가 매장된 걸 일제가 확인했다면 함부로 대미개전에 뛰어들진 못했겠지요.
  • 2016/04/19 20:0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별일 없는 2016/04/19 21:30 # 답글

    그냥 미국애 말듣고 산해관 이남을 공고히 한다음 명처럼 금주같은 산업도시들을 일부 장악하고 장악하기 힘든 만주의 산업기반 시설들을 폭격으로 철저히 파괴해버리고 보어전쟁같이 추토작전으로 갔다면 모르겠네요.
  • 전위대 2016/04/20 18:24 #

    국공내전은 워낙 떡밥이 많아서 -_-
  • 별일 없는 2016/04/20 20:14 #

    솔직히 너무 무모하긴 했음 할꺼면 수십만 대군으로 밀고 올라가서 도시고 농민이고 다 색출해서 죠져가면서 천천히 올라가야되는데 625전 맥아더 데모버전같음. 크리스마스까지 만주다 먹어라 ㅋㅋㅋ
  • 無碍子 2016/04/19 22:14 # 답글

    만주는 한입에 먹기에는 너무 크지만 포기할수는 없는 땅입니다. 만약 포기했다면 포기했다고 욕 먹었을 겝니다.

    공산당의 근거가 화북이므로 북경으로 천도하는 게 가장 좋았었습니다. 남경에서 화북과 만주를 경영하기에는 너무 멀어요. 군대 지휘나 병참이 곤란해지는게 당연하다고 봅니다.

  • 전위대 2016/04/20 12:19 #

    1. 확실히요.

    2. 문제는 장제스의 정치적 기반이자 중국 경제력의 심장부가 난징-상하이 일대라서... 북경은 수도로 삼기엔 너무 기반이 일천했습니다.
  • 내눈을바라봐 2016/04/20 12:14 # 답글

    저분은 대가능을 대불가능으로 바꾸는 분이시군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찬성한건 박수를 보내나 마오쩌둥에게 압도적인 전력으로 뺏긴건 두고두고 답이 없었죠.그 절반도 뺏기고. 한국과 관련한 썰에는 이승만이라는 양반에게 저 양반이 제주도를 달라 마라한 썰이 있었는데, 이 글이 사실이면 얼마나 같잖은지 느껴집니다.
  • 전위대 2016/04/20 12:16 #

    제주도 썰요? 루스벨트가 류쿠를 중국에 귀속시켜 주겠다고 할떄도 류쿠는 독립국이었다고 거부한게 장제스였는데 어디서 그런 썰을 들으셨슴까? -_-
  • 내눈을바라봐 2016/04/20 17:57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0093176
    아무래도 그 제주도 달라 마라한 썰은 좀 오바긴 한데 기지 제공해달라고 바득바득 우긴건 사실이군요.

    “누구에게도 제주도에 있는 기지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며, 한국이 불확실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주권과 영토 가운데 어떤 것도 양도할 수 없다”며 제안을 거부해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기록됐다."

    그 썰이 나온건 뭐 이건거같은데, 제주도에 있는 기지를 저런 것들한테 제공할 따윈 없죠. 대만 하는 짓은 이때부터 답이 나온거네요. 말이 좋아 제주도에 군사 기지 제공해달라 아니던가요? 대륙이나 포모사나 하는 짓이 답이 없는데 왜 제공해주나요?

    그리고 대가능을 불가능으로 만드는 마오쩌둥과의 싸움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뭐 님과 의견이 다를 순 있지만 제 개인적으론 저짓은 하질 말았어야죠. 제 개인적으로 더 이야기를 하자면 중국 못지않게 대만까지도 아직까지도 명나라-조선하던 때로 착각하는 것같아서 매우 불쾌하군요.
  • 전위대 2016/04/20 18:24 #

    1. 군사기지 요구와 달라고 한건 좀 많이 다르죠.

    2. 뭐 저도 만주 경쟁이란 것이 이해는 가지만 안하는게 나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산해관 이남을 바탕으로 기존 세력부터 굳혔어야 하는데 너무 무리했죠. 그렇다고 1931년 만주사변 때 불어온 내셔널리즘 열풍을 보면 그걸 방치하는건 그거 나름대로 국민당 정권에 위기로 작용할 수 있지 말입니다.

    사실 1947년의 백숭희가 지휘하던 만주진공 작전이 성공하느냐 마냐에 그걸 자살행위라 부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미국의 정전 명령 때문에 도중에 중지되었기 때문에 결국 다 떡밥으로 밖에 남을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국공내전 때 장총통은 전선을 정리할 기회를 몇번이나 날리고 자기 최정예 부대 수백만을 자기 손으로 중공에 갖다바치면서 자살행위한게 한두개가 아니지만 말입니다.
  • 내눈을바라봐 2016/04/20 21:30 #

    마지막으로 우리 입장에서 군사기지 요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대만의 요구가 너무 뻔뻔하군요.
    자기네들 싸움에 왜 우리나라가 군사기지를 요구해야 하나요? 우리나라가 대만보고 우리도 중공군의 위협에 대비해서 우리 국군을 위해서 군사기지 제공해달라고 하면 지들은 뭐라고 할까요? 한쪽은 1.4후퇴나 야기시키고 이전엔 군사기지 요구라 대륙 못지 않게 섬도 그때도 참 우릴 졸로 봤군요.
  • 스펀지송 2019/06/23 20:14 # 삭제 답글

    일본은 만주의 자원을 탐내서, 점령했지만 막상 개발자금이 모자라서 곤경에 처했죠. 만주 개발과 경영을 지휘한 닛산 콘체른」의 총수 아이카와 요시스케는 미국의 차관과 기술로 만주를 개발하려고 했을 정도로 난항을 겪었죠.
    일본의 국력으로 거대한 만주를 개발해서, 이익을 창출하기가 불가능하단 사실을 깨닫자, 인구와 자원이 풍부한 화북 침략을 노려서, 만주 개발을 위한 새로운 경제권 창설을 노리다가 중일전쟁이 터졌죠.

    엘사님 말씀처럼 장개석의 만주 점령은 무모했기에 차라리 미국 말대로 산해관 이남에서 방어를 했으면 최소한 중원은 지배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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