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스 일대기 (116) 마오쩌둥과의 만남 장제스 일대기


1945828일 공산당의 영도자이자 홍군의 영수인 한 사내가 비행기를 타고 충칭에 도착했다. 마오쩌둥이 장제스를 만나기 위해 온 것이다. 20세기의 중국대륙을 풍미했던 두 거물의 만남이었다. 마오쩌둥을 충칭으로 초청한 것은 미국 대사인 패트릭 헐리 장군이었는데 전쟁 종료 이후 중국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으르렁거리는 장제스와 마오쩌둥의 사이를 중재하기 위함이었다. 이미 장제스가 마오쩌둥에게 3차례의 회담을 제의한 바가 있었으나 마오쩌둥은 당 내부의 자신의 지위를 강화하는 회의를 처리하기에 바빠 이에 응답하지 못했고 헐리의 초청이 있고난 후에야 이를 받아들였다. 서로를 협약 위반자와 친일 파시스트로 비난하던 장제스와 마오쩌둥은 국가통일에 대한 자신들의 열정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으므로 만남에 동의했다. 마오쩌둥은 충칭에 주재한 소련 군사 대표단에 자신의 피난처를 확보해줄 것을 요구했고 장제스가 비행기를 격추시키는 술수를 부릴 것에 대비하여 헐리가 직접 비행기를 타고 옌안에 와서 자신을 데려갈 것을 요청했다. 이에 장제스는 마오쩌둥을 크게 비웃었다.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짓인가! 공산당원이 그렇게 겁이 많고 뻔뻔스러울 줄은 상상도 못했다. 불과 사흘 전에 공산당 신문과 라디오는 헐리가 반동적인 제국주의자라고 욕을 퍼붓지 않았던가. 동일한 제국주의자가 이제는 마오의 안전을 보장하는 보호자가 되다니.”

 

장제스는 마오쩌둥을 만나기 전에 그를 개방적 태도로 맞이할 것이라는 원칙을 세우고 종합적 해법이라면 정치와 군사 문제를 모두 포함할 것도 결정했다.

 

최대한의 관용으로 그들의 정치적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 그러나 군사적 통일의 완전성에 대해선 절대적으로 타협이 있을 수 없다.”

 

패트릭 헐리와 함께 공항에 도착한 51세의 마오쩌둥은 정치와 군사 문제는 마땅히 공정함과 합리성에 입각할 뿐 아니라 평화와 민주주의에 기초해야 하고 또한 독립적이고 풍요로운 강대한 신중국을 건설하기 위해 똘똘 뭉쳐서 해결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마오쩌둥에게 처음으로 타본 비행기의 소감이 어땠냐는 기자의 질문에 마오쩌둥은 매우 효율적이었다고 대답했고 이어 헐리의 검은 캐딜락을 타고 충칭으로 이동했다. 마오쩌둥이 충칭에 도착하자 장제스는 마오쩌둥을 환호하는 연회를 마련했고 우리가 이제 1924년의 그날들로 되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는 축사를 했다. 마오쩌둥은 담배와 장제스가 마련한 고급 요리들을 즐겼고 장제스는 그날 일기에 나는 그를 성심성의껏 대접했다.”고 적었다.


 

이후 44일간 장제스와 마오쩌둥은 대화를 나누었다. 둘은 공식 리셉션과 사진 촬영을 했고 몇차례의 비공식적인 사담을 나누기도 했으며 12차례의 공식회담을 가지고 9차례나 곁에 앉았다. 장제스는 마오쩌둥과 대화를 시작하고 이렇게 적었다.

 

오늘 아침엔 동이 트기도 전인 5시에 일어나 기도를 했다. 공산주의자 마오쩌둥이 깨달음을 얻어 마음을 고치고, 그리하여 이 나라가 진정으로 평화로운 통일을 이룩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하지만 공산당과 장제스의 타협은 순조롭지 않았다. 저우언라이가 공산당이 북방의 다섯개 성의 지배권과 베이징 군사 위원회 주석 직위, 그리고 공산당의 자체적 군대를 보유하길 원했고 장제스는 이 조건에 크게 분노하여 공산당원들을 인류에 고통만 끼치는 비열한 자들이라고 욕했으나 곧 흥분을 가라앉히고 마오쩌둥의 숙소까지 찾아가 답례를 했으며 829일엔 마오쩌둥과 아침식사를 같이 했다. 이후 실질적인 회담은 밑의 실무자들에게 넘겨졌다. 으르렁 거리는 회담장 밖에서 장제스는 사교장에서 보라! 그가 설마 나에게 전리품을 주지 않겠는가?”라고 말했으며 마오쩌둥은 다과회에서 장제스 총통 만세를 연호했지만 둘 다 자신들이 원하는 목표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협상이 잘 풀리지 않자 장제스는 929일 일기에 공산당이 그간 저지른 악행을 모두 정리하고 만약 1호 전범인 마오쩌둥이 처벌받지 않는다면 항일전쟁 기간 동안 쓰러진 병사와 인민의 원혼을 달랠 수 없을 것이라고 분을 토했다. 마오쩌둥은 홍군 28개 사단의 편성을 요청했고 국민당이 이를 수용할 뜻을 보이자 저우언라이는 그걸 순식간에 48개 사단으로 올려버렸다. 장제스는 공비와의 협상이 불공정함과 불성실함 때문에 있을 수 없다고 불평했다.


덧글

  • 레이오트 2016/02/24 11:17 # 답글

    후에 장제스는 "그 때 곧바로마오쩌둥을 제거했어야 하는데 난 그 사실을 몰랐어."라고 한탄하게 되지요.
  • 전위대 2016/02/24 11:22 #

    사실 만주진공 작전이 파멸적이었던 것인지라....
  • 無碍子 2016/02/24 16:21 #

    전위대님

    만주를 포기하기에는 너무아깝지않습니까?
    만주로 올라갈때쯤 북경으로 천도했더라면 요심의 전황이 달라졌을거 같습니다.

    그리고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잘 읽고있습니다.
  • 전위대 2016/02/24 17:40 #

    무애자//확실히 당시 만주의 가치가 엄청난 것이긴 했지만 장제스의 만주 진공 작전이 너무 적절치 못한 시기에 너무 준비없이 무작위로 일어났다는 점에서 결국 자살 방아쇠였거든요. 최대 물주인 미국의 마음까지 완전히 돌려버렸으니 외교적으로도 대실패였고 장제스는 지배밖에 모르는 파시스트란 마오의 선전도 먹혔고 군벌도 정리가 안된 상황이라....
  • 스펀지송 2019/06/23 20:02 # 삭제 답글

    우연히 방문하게 되었는데, 너무도 훌륭하고 재밌는 글들 잘 읽었습니다. 한국에서 희귀한 중일전쟁사를 보게 되서 너무 기쁘네요. 모택동이란 인간은 참으로 운이 좋고, 능수능란한 인물이란 생각이 듭니다.

    장개석이 왜 일본과 전쟁을 미루면서까지 그를 제거하려 했는지 이해가 되죠. 그런데, 미, 소련은 모택동을 너무 과소평가했던 거 같아요. 20세기 항우와 유방의 대결이 연상됩니다.
    중일전쟁의 승리를 이끈 장개석은 항우, 가만히 앉아서 천하를 먹은 모택동은 유방

    역사는 반복되는 걸까요? 그래서 우리가 역사를 배우나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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