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위키 북경정변 문서 작성

https://namu.wiki/w/%EB%B6%81%EA%B2%BD%EC%A0%95%EB%B3%80
풍옥상이 오패부 뒤통수를 갈긴 쿠데타 되시겠습니다. 이 사건으로 조곤도 물러나고 선통제도 쫓겨나죠.

어쩌다보니 중화민국 역대 대총통 문서들을 작성하고 말았습니다 나무위키 똥꼬쇼

2대, 5대 리위안훙
https://namu.wiki/w/%EB%A6%AC%EC%9C%84%EC%95%88%ED%9B%99

3대 펑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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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쉬스창
https://namu.wiki/w/%EC%89%AC%EC%8A%A4%EC%B0%BD

6대 차오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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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집정 돤치루이
https://namu.wiki/w/%EB%8F%A4%EC%B9%98%EB%A3%A8%EC%9D%B4

돤치루이 문서는 일단 좀 보충이 필요할듯 하고, 배경설명을 위해 1,2차 직봉전쟁, 강절전쟁, 회선사건, 북경정변 문서 등도 써야겠습니다. 공부는 해도 해도 참 끝이 없으니 원... 그나마 고려원 중국학 총서들의 도움을 엄청 받고 있습니다. 동포 여러분들께서도 기회가 되신다면 한번 구해보시길.

나무위키 광저우 상단 사건 문서 작성 나무위키 똥꼬쇼

https://namu.wiki/w/%EA%B4%91%EC%A0%80%EC%9A%B0%20%EC%83%81%EB%8B%A8%20%EC%82%AC%EA%B1%B4
요즘들어 쑨원 시기 문서 작성에 너무 맛이 들린듯... 이것도 생각보다 자료가 많아서 새로 썼습니다.

나무위키 홍콩 선원 대파업 사건 문서 작성 나무위키 똥꼬쇼

https://namu.wiki/w/1922%EB%85%84%20%ED%99%8D%EC%BD%A9%20%EC%84%A0%EC%9B%90%20%ED%8C%8C%EC%97%85
1922년 홍콩 선원 노동자들이 영국 식민당국에 맞서 일으킨 파업입니다. 놀랍게도 이겼죠.
정작 같은 민족인 오패부는 참혹하게 짓밟았지만 말입니다.

나무위키 군민재정 통일선언 문서 작성 나무위키 똥꼬쇼

https://namu.wiki/w/%EA%B5%B0%EB%AF%BC%EC%9E%AC%EC%A0%95%20%ED%86%B5%EC%9D%BC%EC%84%A0%EC%96%B8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군민재정 통일선언과 양희민, 유전환 토벌은 별개의 사건에 가깝긴 한데 둘 다 자료가 드럽게 부족해서요(...) 오죽했으면 공산당 공식 자료 뒤적이면서 겨우 쓰고 있는 판이니 말입니다.

차차 자료를 수집해서 개선을 해야겠습니다.

나무위키 2.7 사건 문서 작성 나무위키 똥꼬쇼

https://namu.wiki/w/2.7%20%EC%82%AC%EA%B1%B4
오패부와 소련의 합작 가능성을 완전히 쫑내버린 노동운동 탄압입니다. 계획에 없었는데 상세히 다룬 자료들을 찾아서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소련은 왜 카라한 선언을 번복했는가? 소련사

1919년, 소련 외무인민위원회 부위원 이자 위원대리인 레프 카라한은 소위 <카라한 선언>이라 불리는 대중국 선언 1호를 발표하여 러시아 제국이 그간 가지고 있던 모든 밀약을 폐기하고 중국에 가지고 있던 특수 권익을 반환하며 영사 재판권을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 카라한 선언은 중국인들로부터 대단한 환영을 받았으며 중국 내부의 친소 분위기의 조성과 공산주의의 육성에 큰 기폭제로 작용했다. 실제로 카라한 선언 이후, 북양정부는 러시아 제국에 대한 승인을 철회하고 소련을 승인하여 국교 체결에 대해 논의했다.

하지만 1921년 12월, 첫 공식 사절단이자 주중국전권대표인 파이케스 사절단이 중국에 도착했을 때, 파이케스 사절단은 기존의 대중국 선언을 확인하면서도 무상으로 모든 것을 돌려주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중국 내부의 러시아 재산을 실질적으로 상당수 회수하고 있던 북양정부는 이에 대해 반발했다. 파이케스는 국교 수립에 실패하고 1922년 8월 귀국했고 그의 후임 아돌프 요페는 카라한 선언의 준수를 주장하며 1922년 9월 27일 외몽골 문제, 중동로 문제에 대해서 정치국 중앙의 레닌, 트로츠키, 스탈린, 카라한,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라데크에게 편지를 보내 항의했다.

"나는 알 수 없다. 우리의 1919년과 1920년 선언 중에서 인용할 구체적인 지시란 무엇인가? (...) 물론, 모종 '수완'을 써서 이런 선언을 한장의 백지로 만들어 버릴 수 있지만, 이는 중국에 대한 우리의 정책의 파멸일 것이고, 최종적으로 우리의 전면적인 멸망의 시작이다. 왜냐하면 대외정책에서 우리는 가장 일반적인 제국주의자가 될 것이고, 상당한 정도에서 세계혁명보루의 작용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손실은, 대내정책에서 중대한 경제적 양보를 하는 것과 비교해서 훨씬 엄중할 것이다. (...) 신경제정책의 적극적인 옹호자로서 나는 우리의 대외정책을 '상업목적'에 이용하면 우리의 철저한 와해를 조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허나 정치국 중앙은 몽골에서의 붉은 군대 주둔과 몽골에 대한 중국의 주권 승인은 모순되지 않는 것이라고 요페의 항의를 일축했다. 요페는 당중앙이 구상하는 러중몽 삼국회의는 중국인들에게 '불량한 인상'을 조성할 것이며, 우페이푸를 자극하여 중국군이 다시 한번 외몽골 출병을 단행할 수 있을 것이라 경고했다.

"치체린의 통보가 정확하다 하여도, 몽골 문제에서 하나의 주요한 점을 소홀히 하였는데, 즉 우리의 세계정책이다. (...) 몽골의 200만 주민들이 모두 우리를 옹호하고 중국에 반대한다면, 치체린의 관점이 원칙적으로 정확하여도 전략적으로는 틀린 것이다. 물론, 우리가 소민족이 대민족에 반대하는 폭력을 지지하지만, 만일 몽골인의 투쟁이 아무런 반향도 일으키지 못하고 중국인의 투쟁이 전 세계에서 거대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면, 세게에서 아무런 작용도 없는 200만 몽골인을 위하여 거대한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4억의 중국인과의 관계와 모든 정책에 손상 줄 필요는 없다. (...) 그러므로 나는 당신들에게 나의 계획과 책략에 동의할 것을 다시 한번 부탁한다."

하지만 소련은 외몽골과 중동로 이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 때문에 '부르주아 민주주의자', '혁명적 부르주아'와의 통일전선을 구축하여 중국 내부에서의 혁명을 추진한다는 코민테른의 방침에 대해서도, 외몽골에 대한 주권을 강경히 주장하는 우페이푸는 그가 노동운동을 탄압한 2.7 참안 이후로 완전히 합작 대상에서 배제되었다. 기존에 우페이푸에 대해서 중국의 확고한 지배자이며 이상적인 합작 대상이라고 고평가하던 소련은 우페이푸에 대해서 사리사욕에 매몰된 군벌에 불과하다고 평가를 뒤집었다. 따라서 소련은 쑨원이 영도하는 중국 국민당과의 합작에 매진하게 되었다.

과연 소련이 카라한 선언을 번복한 이유는 무엇인가? 민국사관이나 중국의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관점에서는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있던 소련이 공산주의 전파를 위해 간교한 술책을 부리면서 입으로는 특권 반환을 비롯한 달콤한 말을 하고 실질적으로는 제국주의 정책을 행했다고 비난한다. 결과적으로 피해자인 중국인들 입장에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 무리만은 아닐 것이다. 본고에서도 딱히 소련의 입장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다만 지적하고 싶은 것은 소련이 단순한 음험한 제국주의적 음모론 계산 하에서 행했다기 보다는, 나름의 내부적 맥락이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는 것이다. 1923년 1월 20일 트로츠키는 요페에게 카라한 선언을 준수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중동철도문제에 대해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왜 제국주의를 포기하는 것이 우리의 재산권 포기를 선결조건으로 하는지 지금까지도 이해할 수 없다. (...) 우리는 중국 농민이 왜 러시아 농민에 의거하여 철도를 소유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당신은, 중국은 어찌되었든 지불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왜 쑨원 혹은 다른 사랑미 부분적으로 점차적으로 우리에게 중국 인민이 이 철도를 사용하는 비용을 갚지 못하는가? 왜 이를 제국주의라 하는가?
당신은 중국이 가난하다고 반복적으로 말하였다. (...) 친애하는 아돌프 아블라모비치, 내가 당신을 일깨워주는 것을 허락해달라. 러시아도 매우 가난해서, 근본적으로 주위의 식민지 반식민지 국가의 인민을 원조할 능력이 없다. 두말할 것도 없이, 중국에 대한 중동철도의 재산을 포기하는 것은 8억 루블을 증정하는 것과 같다. 이외에 또 4000만 루블의 대출을 제공하는 것은 아주 사람을 유혹하는 조치이다. 중국인은 철도를 얻고 4000만 루블도 곧 다 써버릴 것이며, 이러고 나서 계속 대출을 요구할 것이다. 만일 이런 것들을 얻지 못한다면 그들은 미국으로 향할 것이고, 자기의 호감을 그곳에 돌릴 것이며 이 점은 우리가 이미 터키의 예에서 보아왔다."

트로츠키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우리 코가 석자다.

2. 중국에 철도를 반환하면 중국의 추가적 요구를 들어줄 역량이 없는데 그렇게 되면 중국은 미국에 붙을 것이다.

단순히 제국주의적, 전통적 민족주의와 자국이익에 입각한 외교를 행했다고 폄하하기만은 어려운 맥락이 존재하는 것이다. 실제로 소련은 어려운 경제 사정 속에서도 1923년 1월 26일 쑨원에게 200만 루블의 지원금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는 중국 공산당에게 지급한 1만 2천 루블의 200배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이후 다이지타오는 국공합작을 공산당의 국민당 기생정책 정도로 폄하했고 이는 민국사관이나 일부 강경한 반공서적에서 정설로서 기재되어 있다. 하지만 국민당에 대한 소련의 정책을 단순히 국민당을 내부에서 엎어버리기 위한 음모로 폄하하는 것은 진실에 접근하기 좋은 방법은 아닐 것이다.

물론 필자는 확고한 반공주의자고, 4.12 사건이나 국공결렬을 단순히 반동적이고 매판적인 국민당 우파의 '반혁명적 배반행위'로 매도하는 혁명사관에 대해 극도의 혐오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타파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한가지 극단적으로 매몰된 관점을 타도하기 위해 다른 방향으로 매몰된 관점을 동원하는 것이 현명한 길은 아니라고 본다. 자신이 동조하지 않은 세력, 사상의 내부적 맥락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고 솔직히 표현하자면 괴로운 일이고자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내부적 맥락을 이해하려는 것과 그것을 동조, 옹호하는 것을 혼동하면 안될 것이며 자신이 동조하지 않는 것이라 하여 그것을 악마적인 술수로 치워버리는 것은 역사에 대한 올바른 태도가 아닐 것이다. 글을 쓰면서 오늘도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 오늘도 정진, 내일도 정진, 모레도 정진.

참고문헌

1. 본문에 인용된 요페와 트로츠키의 서한, 우페이푸에 대한 평가 등은 대부분 <국공합작과 孫文·요페공동선언 : 몽골문제와 중동철도문제를 중심으로, 이승휘, 중국근현대사연구 29권 29호, 중국근현대사학회>에서 인용하였다.

2. 소련과 중국의 초기 외교적 접촉 및 중국 공산당의 국공합작에 대한 초기 견해와 수용 과정에 대해서는 신승하의 <중화민국과 공산혁명>, 대명출판사에서 소상하게 다루고 있다.

3. 카라한 선언에 관련된 소련의 태도 변화와 중소 교섭의 난황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객관적인 설명은 가와시마 신의 <중국 근현대사 2권 근대국가의 모색(1894~1925)>, 삼천리를 간단히 참조하는 것이 좋다.

4. 쑨원과 소련의 접촉에 대해서는 해롤드 시프린의 <손문평전>, 지식산업사에서도 자세히 다루고 있다.

5. 코민테른의 국공합작 추진 배경과 초기의 합작 대상 물색 과정 및 중국 공산당 내부의 논의에 대해서는 <政治勢力 간 통일전선 측면에서 본 제1차 國共合作의 고찰, 이준태, 아태연구 15권 1호, 경희대학교아태지역연구원.>

6. 그외에 벤자민 슈워츠의 중국 공산주의 운동사, 신상초의 중국 공산주의 운동사 등을 부가적으로 참고하는 것이 좋으며 국공합작 과정에서 쑨원과 랴오중카이 등의 활동에 대해서는 민두기 교수가 편집한 <중국국민혁명 지도자의 사상과 행동>, 지식산업사와 <중국국민당 좌파의 기수 랴오충까이(寥仲愷)와 국민당 개조작업, 장공자, 글로벌정치연구 2권 2호,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정치연구소.>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7. 민국사관의 소련과 중국 공산당에 대한 태도, 즉 기생정책이나 내부 적화 야욕이라는 관점은 장개석비록이 잘 다루고 있다. 이건일 교수의 <모택동 VS 장개석> 역시 민국사관을 따른 대표적인 책 중 하나이다.

나무위키 랴오중카이 문서 작성 나무위키 똥꼬쇼

https://namu.wiki/w/%EB%9E%B4%EC%98%A4%EC%A4%91%EC%B9%B4%EC%9D%B4
오랜만에 좀 만족스러운 질을 갖춘 문서가 나온 것 같아 기쁩니다. 민두기 교수가 편집한 중국국민운혁명 지도자의 사상과 행동과 김문희 박사의 하향응 관련 연구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나무위키 부원지쟁 문서 작성 나무위키 똥꼬쇼

https://namu.wiki/w/%EB%B6%80%EC%9B%90%EC%A7%80%EC%9F%81
1차 호법운동에서 큰 뼈대를 가져오긴 했는데... 뭐 일단 완성입니다.

나무위키 외몽골 출병 문서 작성 나무위키 똥꼬쇼

https://namu.wiki/w/%EC%99%B8%EB%AA%BD%EA%B3%A8%20%EC%B6%9C%EB%B3%91
계획하지 않은 상태에서 또 문서를 싸고 말았습니다. 관련 연구가 많아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난징 국민정부는 지주들의 천국이었나? ㄴ민국시대

오랜만에 올려보는 연구 포스팅.
본인이 흥미를 가지는 20~30년대 중국 농촌에 관한 내용입니다.

1930년대 강남의 지주는 그렇게 강력하지 못했으며 지주도 대지주는 소수였고 대부분 중소지주였다. 강남 농촌에서 소작농도 생활이 곤란했지만 지주 역시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1920년대 강남 지주의 토지 수익률은 급락했고 지주는 높은 세금과 낮은 소작료로 인해 끊임없이 압박받아 1920~1930년대 중국 농촌 사회에서 지주의 영향력은 크게 쇠퇴했다. 근대 이후 지주의 물리력 남용이 줄어들었는지 아니면 증가했는지는 여러 자료로 볼때 확실하게 단언하지 못한다. 이것은 오히려 지주 개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었다. 지주의 가혹행위는 현저히 줄어들었으나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행해졌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행위가 더 이상 국가의 용인이나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난징국민정부는 지주의 권한을 법적으로 제한하여 지주의 입장을 크게 약화시켰다.

(...)

강남의 지주층은 근대 이후 계속 쇠퇴하였으며 특히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더욱 위축되었다.

근대농촌사회연구, 박정현, 고려대학교출판부.
98~99페이지.

보충

1. 기존의 연구들은 중국의 지주들은 중국 근대화의 장애물로 해석하며 이들이 봉건적 지주제를 유지시켜 중국 농촌을 쇠퇴시켰다고 지적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들은 표본이 화북지역에 집중되어있으며 지주들의 실질적인 영향력이 약화되었다는 역사적 현상을 도외시하였다.

2. 중국 지주들의 수익률은 지속적으로 낮아져서 20년대 이후에는 상당히 처참한 수준이었는데 난징대학의 존 벅 교수는 지주의 수익률을 8.5%로 잡았지만 퍼킨스의 경우, 2.5%에 지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이는 농촌의 쇠퇴의 원인이 지주라기보다는 지주 역시 농촌 쇠퇴의 피해자였다는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주들의 경제적 손해가 심해져서 30년대에는 지주들이 늘어가는 자신의 토지를 한탄하며 토지 매매에 열심이었다는 기록조차 있다.

3. 단순히 지주들의 수익률이 악화된 것 뿐 아니라 지주들의 사회적 영향력 역시 지속적으로 악화되었다. 부재지주들의 증가와 소작료 수취를 위한 '조잔'의 설치는 지주들의 횡포로 해석되곤 하였으나 거꾸로 말해서는 대리인의 고용과 관청과의 결탁 없이는 소작료 수취가 불가능해질 정도로 지주들의 사회적 영향력이 약화되었다는 한가지 증거인 것이다. 또한 부재지주의 증가는 지주들을 봉건적 농촌의 지배층에서 자본주의적 투자가로 변모시켰다. 이에 따라 20년대부터 소작쟁의는 대부분 지주와 농민의 다툼이라기보다는 지주와 농민 사이의 대리인들의 농간에서 기인한 일이 많았으며 대리인들의 농간에는 지주 역시 피해자 반열에 들었따. 특히 국민정부가 감조정책을 도입, 소작농을 옹호하면서 지주 세력은 계속 약화되었고 조잔의 영향력도 약화되었다. 1949년 중국의 공산화 이후 조잔은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본 영화들 영화(극장)

1. 코코

매우 훌륭함.
역시 콧수염쟁이들이 세상을 망친다.

2. 올 더 머니

훌륭함. 리들리 스콧 요즘 괜찮네.

최근에 중고장터를 열심히 뒤진 성과 책 이야기

장개석 연구, 배경한, 일조각.

중일전쟁과 중국혁명, 윤휘탁, 일조각.

코민테른과 중국혁명 관계사, 향청, 고려원.

중국혁명과 가정윤리, 조용관, 고려원.

중국 당대 40년사, 신승하, 고려원.

홍수전 평전, 고지마 신지, 고려원.

중국 공산주의 운동사, 벤자민 슈워츠, 형성사.

중국 공산주의 운동사, 신상초, 집문당.

중국 국민혁명 지도자들의 사상과 행동, 민두기, 지식산업사.

중국현대정치사상사, 체스터 탄, 지식산업사.

근대중국농촌사회연구, 박정현, 고려대학교출판부.

전후 중국 경제사(1945~1949), 김지환, 고려대학교출판부.

코민테른과 세계혁명 1,2권, 김성윤, 거름.


이제 코민테른과 고려원에서 내놓은 화북사변만 구한다면 어느 정도 원하던 자료를 확보할 수 있을듯...

최근 본 영화 영화(극장)

1. 다키스트 아워
개리 올드만이 처칠이라니... 분장 참 잘했네... 연기력도 좋고.
훌륭함.

2. 메이즈 러너: 데스큐어
어쩌다보니 싹 다 극장에서 보게 된 시리즈인데 나름 잘 봤음. 애초에 머리 비우고 보는 시리즈에서 기대하는 것도 없음.
훌륭함. 다만 1,2편 안보고 보면 좀 문제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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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간단하게 썼습니다.
대충 이런 일이 있었구나... 정도나 소개하려고요.

나무위키 안직전쟁 문서 완성 나무위키 똥꼬쇼

https://namu.wiki/w/%EC%95%88%EC%A7%81%EC%A0%84%EC%9F%81
2016년 4월에 쓰다가 때려친 이후로 거의 2년 만입니다. 에고고. 1차 직봉전쟁, 2차 직봉전쟁은 언제 쓸까요.

나무위키 영풍함 사건 문서 작성 나무위키 똥꼬쇼

https://namu.wiki/w/%EC%98%81%ED%92%8D%ED%95%A8%20%EC%82%AC%EA%B1%B4
이른바 6.16 사변이라고도 불리는 그 사건입니다. 진형명과 손문이 결렬되고 2차 광동 정부가 붕괴된 원인이었죠. 예전에는 배은망덕한 군벌놈들의 반란으로 욕했지만 지금은 좀 재평가되는 편입니다.

나무위키 2차 호법운동 문서 작성 나무위키 똥꼬쇼

https://namu.wiki/w/2%EC%B0%A8%20%ED%98%B8%EB%B2%95%EC%9A%B4%EB%8F%99
이걸로 호법운동은 대충 공부했군요. 이제 군벌들간의 아귀다툼만 좀 공부한다면 원세개 사망~1925년 국민정부 수립까지의 중국 역사가 좀 정리되겠습니다.

이제 영풍함 사건 문서를 써야겠군요.

나무위키 1차 호법운동 문서 작성 나무위키 똥꼬쇼

https://namu.wiki/w/1%EC%B0%A8%20%ED%98%B8%EB%B2%95%EC%9A%B4%EB%8F%99
예전에 쓴 호법전쟁 문서의 배경을 무지막지하게 끌어다 쓰긴 했는데 여튼 뭐 그렇습니다. 언제 두 문서 분리하나 했더니 이제야 분리하는군요. 사실 말이 호법운동이지 실제로는 원세개 사망~호법전쟁까지의 중화민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서술한 것에 가까워 보이긴 합니다.

나무위키 장훈복벽 문서 보완 나무위키 똥꼬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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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몇년 전에 레지날드 존스턴의 자금성의 황혼을 주 배이스로 삼아서 쓴 문서인데 지금 보니 빠진 내용이 많고 부실해서 좀 보강했습니다. 공부의 길은 멀고 험합니다.

나무위키 중화민국 국회 해산 문서 작성 나무위키 똥꼬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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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침에 썼는데 이제야 쓰네요.

나무위키 선후대차관 사건 문서 작성 나무위키 똥꼬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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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중화민국군 사망자 130만이라고 나오는데... (중일전쟁)118.139.224.71
#1 중화민국군 사망자 130만이라고 나오는데... (중일전쟁)118.139.224.71
#1 국민당군대 사망자는 130만 아닌가요? (태평양 전쟁)118.139.22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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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열심히 나무위키의 노예질.
먹고살기 바쁜데 뭐하는짓인지 참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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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개 아조씨의 황제놀이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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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말하는 3차 혁명이자 원세개의 요단강행의 결정적 원인입니다.
 
국민당 공산당 쌈박질은 좀 지겨워서 신선한 시대로 좀 다뤄봤습니다. 생각보다 자료가 많네요. 홍헌제제랑 계축전쟁(2차 혁명)까지 쓰고 다시 창사 폭동을 마저 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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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사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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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사변

어찌 백색테러와 적색테러를 하나씩 쓰게 되었습니다.

대체 파시즘의 본질은 무엇인가? 전체주의 연구

파시즘에 고정된 '핵심'이 없다는 발견은 그 자체 현 단계 파시즘 연구의 중요한 성과로 평가될 수 있다. 1968년 울프가 편집한 파시즘의 본성(The Nature of Fascism)이 파시즘 비교사의 포문을 연 이래로 연구자들은 파시즘의 '본질'을 찾아내려는 긴 여정에 나섰다. 그 후 파시즘을 정치-문화 혁명으로 보는 모스의 견해에서 큰 영향을 받은 그리핀이 1991년에 위의 책과 같은 제목의 <파시즘의 본성>을 출간하여 그 긴 여정을 매듭짓고자 했다. 그리핀을 비롯한 합의 학파의 연구자들은 기본적으로 파시즘을 민족 재생 신화를 중핵으로 하는 혁명적 대중 정치 운동으로 파악하면서 '일반적 개념으로서의 파시즘'의 정의를 추구했다. 그런데 다시 20년 후에(2011년) 도브리나 패스모어 등이 <파시즘의 본성 재고>(Rethinking the Nature of Fascism)에서 파시즘의 고정된 '핵심'을 상정하려는 시도 자체를 심각하게 회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합의학파의 정의가 파시즘 연구의 의미 있는 성과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것은 이른바 '문화로의 전환'이라는 흐름에 발맞추어 파시즘을 단지 자본주의나 특정 사회 계급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부차적 현상으로 보는 전통적 시각에 의문을 던지고 파시스트 이데올로기와 문화의 독자성과 역동성을 밝혀내려고 했다. 또한 합의 학파의 정의는 혼란스러운 사실들 속에서 파시즘과 파시즘이 아닌 것을 구분하고 그 동안 주목받지 못한 현상들을 발견하는 데 유용한 기준으로서 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그 정의는 이데올로기와 문화의 측면에 치중하여 파시즘을 "그 내부로부터, 그 자신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방식대로" 읽어냄으로써 한편으로는 파시즘을 점점 더 혁명적인 운동으로 파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혁명이 말한 것과 실제 행한 것의 간극을 경시했다.

기실, 우리는 파시즘이 혁명을 추구하면서도 "권력에 접근하기 위해 결정적으로 우경화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파시즘의 '본성'이 민족 재생을 위한 혁명의 추구에 있다고 보면 아마도 이는 변질일 것이다. 그러나 이와 똑같은 논리로 그런 변화를 통해 파시즘의 진정한 '본성'이 발현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파시즘의 '본성'이 혁명의 추구인지, 권력의 추구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파시즘의 고정된 '핵심'을 버리고 파시즘을 '관계'와 '과정' 속에서 볼 필요가 있다.

파시즘의 알리바이? -1930년대 영국과 프랑스의 파시즘을 둘러싼 쟁점과 시각-,장문석, 영국 연구 제29호.
227~228페이지.

골때리네. -ㅅ-

1,2차 초공작전 문서 작성 나무위키 똥꼬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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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초공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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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초공작전

결국 쓰고 말았군요. 근데 2차 초공작전은 정말 자료가 부족했습니다. 활용가능할 것으로 추정되는 책이 몇권 더 있는데 나중에 한번 뒤져보고 노력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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