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공지 군대 잡담

음 안녕하십니까. 블로그 주인장 전위대입니다. 지금껏 제가 연재하고 있던 장제스 일대기, 스페인 민주화 시리즈, 이라크 점령사 시리즈를 모두 연재중단합니다. 이 기간은 최대 2년 이상이 될 수 있으며 운이 좋다면 좀 더 빠르게 돌아올 수 있지만 어떻게 될 지 전혀 모르는 일이니 어떠한 확답도 드릴 수 없군요.


그러면 저는 왜 연재를 중단하는 것일까요? 여기저기서 떡밥은 흘렸지만 그렇습니다. 본인은 군대를 갑니다. 바로 내일 입영입니다. 사실 장제스 일대기는 이렇게까지 오래 끌 줄은 몰랐고(공부를 하면 할 수록 느껴지는 본인의 공부 부족으로 의욕이 사라진 것도 있습니다... 매일 연재하던게 한달 단위로 연재가 됐으니...) 스페인 민주화 시리즈도 군대 가기 전까진 다 끝날 생각이었는데 마지막 두편을 남기고 결국 이렇게 사라지게 되는군요.


뭐 구질구질하게 길게 쓸 것은 없겠고 2년간 몸 성히 다녀오겠다는 말씀 밖에 드릴게 없네요. 최대한 빨리 연재를 재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p.s 1. 장제스 일대기는 원래 국부천대까지만 다루려 했으나 대만 역사서를 몇권 구해서 장제스가 죽는 순간까지로 연장합니다. 그게 언제 재개될진 모르겠지만요 ㅠㅠ


p. s 2. 나무위키가 제가 없는 동안 반달들에게 함락되지 않길 바랄 따름입니다. 우리 역밸 동포 여러분들께옵서 나무위키를 하시는 분도 계시다면 부디 역사 관련 문서들을 지켜주소서.


공군 합격 군대 잡담

5.16절에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러 진주로 사라집니다.
그렇게 되면 2년간 빠빠이군요. ㅠㅠ

어제 더 킹 관람 영화(극장)

전혀 기대하지 않은 영화여서였는진 몰라도 생각보다 준수한 작품. 하지만 아쉬운 점도 많다.

좋은 점.

1. 남간 말대로 마틴 스콜세지를 생각나게 하는 화려한 연출.

2. 적절한 ost 선정.

3. 정우성을 비롯한 배우들의 화려한 연기. 특히 정우성 연기에서 지림.

4. 중반까지도 영화를 잘 휘어잡는 썩은 맛.

5. 한국 현대사를 갖고 노는 블랙코미디.

6.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분의 환한 미소.

나쁜 점.

1. 중반을 넘은 후에 나타난 난데없는 허망한 전개.

2. 썩은 맛이 사라지는 나이브한 결말.

3. 심각한 노빠기질.

4. 얄팍한 역사인식.

5. 마틴 스콜세지 영화와 달리 이런게 가능한가 싶은 비현실성.

6. 노골적인 현실 정치 홍보.

그래도 볼만한 영화였고 영화관에서 잘 봤다. 상급의 꽤 볼만함.
한국 영화 치곤 잘 만들었다.

휴가가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잡상 잡상

1. 모아나 자막판으로 한번 더 볼까?

2. 남간에서 자기의 채고조넘을 까는 걸 막겠다고 발광하다고 오히려 비판이 폭주하는 경우들이 있지. 대표적인 것이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설민석 문서도 비슷한 문서가 아닐까.

3. 헬조센 담론에 대해서, 뭐 다들 먹고 살기 힘든건 알겠는데 마치 딴 나라 젊은이들은 아무것도 안하고 탱자탱자 놀아도 다 취직되고 호의호식하는 지상락원이다 라는 개소리에 대해서는(SNL에서도 비슷한 드립 치는거 보고 좆같았지) 염병한다는 말 외에 할게 없다. 그래 나가서 살아보세요.

너의 이름은 감상 영화(극장)

걸작
신카이 이 인간이 해냈어!

모아나 감상 영화(극장)

훌륭함.
화려하고 미려하고 환상적이고 신비롭다.
활기찬 매력이 좋다.
하지만 뽕이 안나오네링? 완성도는 채고조넘 인사이드 아웃이나 그 아래의 주토피아 정도에까진 못 미치지만 수작은 된다.
더빙으로 봤는데 들어가기 전에 자막으로 봐야지.

원령공주도 좀 생각난다.

이야 남간 침공당함 트롤열전

이름은 말할 수 없고, 다만 스스로를 샌더스로 착각하지만 트럼프만도 못한 모 인물의 추종자들이 남간 점령하고 집단 깽판 중. 지랄들 한다.

몰랐는데 방문자수 8만명 돌파 잡상

작고 귀엽지 않습니까?

할례를 하지 않고 수용소에 간 유대인 기타 근현대사

일전에 로자노프님이 올리신 젠저 일가 얘기를 보고 생각나서 올리는 글.

저기에 나온 젠저 일가는 할례를 하고도 걸리지 않았습니다만, 그 반대되는 케이스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프랑스 유대인이 잡혀서 수용소에 끌려갔는데 맨 처음 수용소에 들어가서 샤워를 하는데 자꾸 이 친구를 주변의 유대인들이 보는 겁니다.

"야, 너 할례 안했냐?"
"왜, 안하면 안돼나?"(기억이 안나는데 얘가 할례가 뭔지도 모를 정도로 유대물이 빠진 애였던 것도 같은데 불확실하니 일단 패스)
"미친 새끼야, 게슈타포에게 바지 까보고 유대인 아니라고 하면 여기 올 일 없잖아."
"그런가?"
"뭐 이런 병신이 있어 ㄲㄲㄲㄲ"
"아이고 배야, 할례 안하는데 여기 오는 병신도 있냨ㅋㅋ"
"개죽음 오지구요."

....뭐 대충 이런 얘기.

나치의 병사들에서 본 대목인데 다시 봐야 할듯.

이 시간까지 눈알 빠지게 호이4하는 중 잡상

철인모드로 중화민국 하는데, 일중 국경에 55개 사단 박고 해안가에 또 80개 사단 정도 박은 다음에 일본에 친선공작 했더니 중일전쟁이 안 일어나는 기적을 발견함. 덕분에 마음놓고 공업화하면서 군 현대화와 군벌 사냥...이나 하려 했는데 광서의 이종인 토벌이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벌어짐. 1940년에 침공했는데 1942년에야 겨우 끝낸 건 둘째치고 장개석 쪽 피해가 무려 75만(...). 이종인도 13만 명 정도의 피해를 봤는데 씨벌 무슨 90만이나 피해가 나오냐.
대체 얼마나 전쟁이 치열했는지 갓 임관했던 준장 새끼들이 대원수까지 승진해서 트레잇을 대여섯개씩 주렁주렁 달고 다님.... 지리것다. 그나마 운남의 용운 처리하는 건 2만 3천 정도의 피해로 끝남.

터번을 벗은 호메이니 호메이니 일대기(完)

무려 연재한지 1년 7개월이나 된 호메이니 일대기입니다만... 그때 귀찮음으로 구하지 않고 넣지 않았던 사진을 이제야 넣습니다.
1979년 겨울, 터키 공화국 부르사의 울루 자미 모스크를 방문하는 호메이니. 이 사진은 터번과 성직자 복장을 벗은 상태의 호메이니를 찍은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사진을 찍은 것은 당시 호메이니를 돌보던 터키 공화국 정보부 대령 알리 제티네르 대령의 아들인 탄주 제티네르인데 문제는 호메이니의 허락을 받지 않고 도촬한 것이다.(...) 호메이니는 터번을 벗은 자신의 모습을 찍었단 사실에 무척이나 빡쳤지만 알리 제티네르 대령이 사진을 지우겠다고 달래서 화를 가라앉혔다고 한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이 사진을 보고 있는 의미는 뭐다?(...)

얼라이드 감상 영화(극장)

재밌고 배우 연기도 좋고 맵시가 느껴지는데 저메키스 이름값엔 못미친다. 상급의 꽤 볼만함...

사야할 책

공장의 역사
옥스퍼드 영국사
국가의 부와 빈곤
근대의 탄생

차단 당하고 징징대는 양반 하나 있는 모양인데 잡상

내가 하지도 않은 말로 혼자서 뇌내망상 논리 전개질은 여전하네. 여기서 지껄이는 수준 보고 알았다만. 자기네 본거지에서 뭔 짓 하던 알바 아니지.

일본에서 공군 창설이 좌절된 이유? 기타 근현대사

허버트 빅스의 히로히토 평전 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대목.

이시와라 간지:덴노 헤이카! 우리도 공군을 만들어야할 필요가 있슴다!
히로히토:공군? 육군과 해군은 내가 통수권 잡는게 헌법상으로 명시되어 있는데 공군인지 뭐시깽인진 없잖아? 그거 순 내 말 안듣는 군벌 집단 아니냐? 좆까라.

라나 뭐라나....

전혀 학술적이지 않은 배설물에 불과하니 비판해주시오.

종교 근본주의는 파시즘인가? 파시즘 연구

아마 이 포스팅이나 이 다음에 연재될 수도 있는 미국의 파시즘, 유럽의 파시스트들 3편이 파시즘 시리즈의 종지부를 찍을 듯 합니다. 이번 공부하면서 얻은 것 자체는 꽤 되었습니다만 본인의 한계를 더욱 알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여러분, 공부의 길은 끝이 없다는 것은 확언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글은 본인의 무식함으로 인해서 팩스턴의 서술에 거의 그대로 끌려나갈 수밖에 없을듯 한데 양해바랍니다.(아니, 사실 본인의 파시즘 연구 시리즈 자체가 다 그렇긴 합니다. 이것만 예외인것처럼 포장하려는 개소리엔 돌을 던집시다)

꽤나 논쟁적인 부분. 팩스턴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이란은 파시즘 정권이었는가? 인도의 힌두교 근본주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만든 조직인 알 카에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은 어떨까? 미국의 경우 기독교 근본주의가 이런 역할을 수행할까?"

곧이어 팩스턴은 미국 역사학자 스탠리 페인의 견해를 소개했습니다.

"스탠리 페인은 종교가 파시즘이 되려면 세속화에 의해 형성된 공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종교적 파시즘은 성직자 계급이 지닌 문화적 힘 뿐 아니라 '전통종교의 계율과 가치'가 파시즘 지도자에게 한계를 부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제 리딩으론 결국 종교적 파워는 파시스트 지도자들을 제약하기 때문에 세속화된 공간에서 파시즘화가 일어나서 종교까지 파시즘화되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는 것? 물론 무식한 좆문가인 본인 리딩은 무시하는게 답입니다.)

팩스턴은 이런 주장이 유럽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들어맞을지 모르지만 유럽의 경우에도 일반화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렇다면 유럽의 파시즘들을 보겠습니다. 유럽의 경우, 이탈리아와 독일 모두 파시스트들은 반교권주의 성향을 깊게 드러냈습니다. 무솔리니는 카톨릭에 적대를 드러냈고 히틀러는 합스부르크 왕조를 까면서 카톨릭도 덩달아 깠었죠. 하지만 모든 파시즘이 종교를 적대했다거나, 종교가 국민 정체성을 대변할 수 없다고 단언한 것은 아닙니다. 가령 벨기에와 스페인, 핀란드, 루마니아의 파시스트들은 강력한 교권주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최소 냉담자, 심하게는 무신론자인 무솔리니도 로마 카톨릭과의 협상의 유용함을 알고 라테란 협정을 통해 교황청과 협상했습니다. 팩스턴은 종교적 파시즘의 출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종교는 그 정체성 측면에서는 국가만큼이나 강력할지 모른다. 일부 문화권에서는 실제로 종교적 정체성이 국가적 정체성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종교 근본주의에서는 종교 내의 단합과 활력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국가의 단합과 활력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것과 매우 유사하게 작용한다. (유대교 극단주의자와 이슬람 근본주의자, 힌두교 근본주의자들의 국가 부정을 소개) 이런 공동체에서는 종교에 기반한 파시즘의 출현이 가능하다. 결국 그 어떤 파시즘도 상징이나 구호가 다른 형태의 파시즘과 비슷할 이유는 없으며, 실제로 그러하듯이 각 나라의 애국주의 레퍼토리를 얼마든지 끌어들일 수 있다."(개인적으로 굉장히 중요시하는 파트. 꼭 반유대주의를 외쳐야 파시스트인게 아닙니다. 팩스턴은 KKK, 흑인우월주의자, 이슬라모포비아들도 얼마든지 파시스트화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하지만 대중정치로써의 파시즘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팩스턴답게 팩스턴은 알 카에다와 탈레반을 비롯한 현대의 이슬람 근본주의를 민주주의에 대한 반발이나 자유주의 제도의 포기가 결여된, 전통 위계 사회에서 일어난 운동으로 보아 파시즘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팩스턴이 주목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파시즘화입니다.

"이스라엘의 국가 정체성은 오랜 디아스포라 기간 동안 유대인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인권을 확인하고자 하는 열망과 떼어놓을 수 없다. 이 민주적 전통은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에 맞서 싸우는 중에도 '자유주의 제도를 포기'하지 않도록 막는 구실을 한다. 그러나 그 전통을 약화시키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팔레스타인 측의 비타협적 태도에 직면할 때마다 보이는 강경한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유대인 인구의 무게 중심 변동이다. 과거에는 유럽에 거주하며 민주주의 전통에 익숙한 유대인들의 영향력이 컸지만, 그 무게 중심이 민주주의 전통에 무관심한 북아프리카 및 근동 지역에서 이주해온 유대인들에게로 옮겨가고 있다. 2001년 이후 제2차 인티파다에서 있었던 자살 폭탄 공격은 수많은 이스라엘 민주주의자들마저 온건한 태도를 버리고 우익으로 돌아서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팩스턴은 이스라엘의 우익 연합 정당인 리쿠드당에서 파시즘 냄새가 난다고 지적합니다.

"선택받은 민족의 주장은 이제 특별한 '세계적 사명'을 내세우며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공간'을 요구하고 그 민족의 운명을 가로막는 적을 악마화하여 그 공간을 획득하기 위해 무력 사용이 필요함을 인정한다는 '지배인종'의 주장을 닮아가기 시작한다."

3줄 요약

1. 파시즘화에는 세속화된 공간이 필요하단 주장이 있느나 꼭 그렇진 않다.
2. 강력한 종교적 정체성은 국가적 정체성을 대체하여 파시즘화의 단초를 제공한다.
3. 이슬람 근본주의는 파시즘은 아니지만 이스라엘의 파시즘화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 제국은 파시스트 정권이었나? (2) 파시즘 연구

"천황제 이데올로기와 신화, 제사 의식에 기초를 둔 쇼와 시기의 국가주의를 엄밀히 '파시즘' 현상의 일환이라 해도 좋을지 여부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논의가 분분하다. 그러나 민족적, 인종적 집단이, 숭배와 존경의 대상이 되는 인물을 빙자하여 신성시된 점은 공통된다. 군국주의와 독재, 전쟁에 대한 찬미, 그리고 젊음, 정신성, 도덕 재건, 국가적 사명 등을 강조한 점도 마찬가지로 공통된다. 일본이 한결같은 일본이었음은 분명하며 독자적이기도 했다. 히로히토는 선동이나 최면술로 대중을 조종하는 총통도 수령도 아니었다. 그러나 독일과 이탈리아도 이데올로기나 조직 구조상 동일하지 않았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1930년대에 개혁을 주장한 주요 파시즘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유사성, 숭배 대상이었던 지도자들이 비슷하게 수행한 심리적 역할, 그리고 역사적 후진성 등과 같은 공통점을 이들 국가 간의 명백한 차이보다 중시해야 한다."

히로히토 평전, 허버트 빅스, 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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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키케로님이 언급하신 댓글(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모두 근대의 서구물질문명의 산물로 이를 초극하는 제3의 길을 주장-경우에 따라서는 꽤나 물질에 대한 정신우위적인-하고, 단순제국주의적인 팽창을 넘어 지리정치적인 광역권(Grossraum)에 근거한 신세계질서를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 제니스 미무라는 일본은 파시즘 국가로 보는게 맞다고 주장합니다. 존 다우어의 경우에는 일본이 스스로에게 지구상에서 가장 혈통적으로 순결한 민족이며, 그것이 가장 도덕적이라는 정당성도 동시에 부여한다고 이데올로그를 지녔다는 면에서 나치즘과 유사하며 마찬가지로 파시즘으로 분류할수 있다고 주장합니다.)도 있고 공부하던 중에 발견한 대목이라 흥미로워 발췌합니다.

장제스 수정 일대기 연재 예고 장제스 일대기

제곧내
말 그대로 조너선 펜비 저서에만 의존하여 지극히 부실하기 그지없는 장제스 일대기를 여러 소스를 바탕으로 보충, 재연재하는 작업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근데 언제 시작될 진 모름. -ㅅ-(...)

계획 초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제이 테일러의 장제스 평전 원서와 서문당 다큐멘터리 현대사, 삼천리 중국 현대사 시리즈, 장제스 일기를 읽다를 바탕으로 중국 역사를 좀 체계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보충하며 세부적 에피소드들마다 여러 소스를 바탕으로 다시 보충할 예정입니다.

3편
민두기의 신해혁명사, 서문당 다큐멘터리 현대사, 신해혁명의 성격과 중국에 미친 영향(오수열) 바탕으로 수정.

9편
중국통일추의의 재검토, 진형명의 1922년 정변에 대한 재검, 진형명의 국가건설 구상, 하향응의 정치활동과 사회인식 바탕으로 수정.

11~16편.
국민당 개조 시기의 보로딘 연구 바탕으로 수정.

17편~18편.
왕징웨이 연구(배경한), 중산함 사건 전 왕정위의 정치적 입장과 활동(장명아).

........
생각보다 존나 어려운 작업이다.... 천천히 해야 할듯.



1910년의 천황제 비판 기타 근현대사

"지금의 정부를 무너뜨리고 천황이 없는 자유국으로 만든다고 하는 것이 왜 모반인이 하는 짓이 아니고 정의를 중시하는 용사가 하는 일인가 하면, 현 정부나 천황은 제군들이 소학교 교사들에게 속아 넘어간 대로 신의 아들도 그 무엇도 아닌 것이다. 지금 천황의 조상은 규슈 지방의 촌구석에서 나와 살인이나 강도질을 하여 같은 도둑 패거리인 나가스네히코를 멸망시켰다. 말하자면 구마사카초한이나 크나큰 산의 술고래 동자가 성공한 것이다. 신도 아무것도 아니라 함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2500년이나 이어졌다고 하면 자못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기 십상이나, 대를 이어 밖으로는 오랑캐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안으로는 신하들에게 장난감 취급을 받아온 것이다. 이렇게 뻔한 것을 대학의 박사라는 둥 학위자라는 둥 하는 비겁자들은 말하지도 쓰지도 못한 채 새빨간 거짓말로 남을 속이고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다."

-대역사건에 가담했던 조동종(曹洞宗) 승려 우치야마 구도(內山愚童)의 천황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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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야마 구도(1874~1911)



찾을수 있던 사진이 이것 뿐이라서리 -ㅅ-

진주만 공습 이후 일본 대사관 직원들의 운명은? 기타 근현대사

쇼와 육군을 보고 인상깊은 부분이라 언젠간 포스팅하려고 했는데 이제서야 하게 되는군요.(그게 작년 여름이었는데!) 자질구레한 서문 없이 바로 들어갑니다.

1.

1941년 12월 7일 오후 1시 50분, 일본 정부의 최후의 대미통첩을 가지고 노무라 기치사부로, 구루스 사부로가 국무성으로 감. 잠시 후 중대 특별 늬우스 방영. 바로 진주만 공습의 늬우스.

"'Pearl Harbor attacked! Pear Harbor attacked!' 라디오에서 반복하여 진주만 기습을 알리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관헌에 의해 전화는 끊겼고 외부와의 교통은 특별 허가를 받은 자 외에는 모두 금지되었다. 이리하여 6개월에 이르는 적국에서의 억류생활이 시작되었다."
-주미 일본대사관 주재 해군무관 사네마쓰 유즈루의 기록.

2.

그런데 대사관 직원들은 기밀서류와 암호장비 등을 폐기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정문을 안 닫음(...). 30여명의 기자들이 난입하여 진주만 기습 이유, 암호 기계를 처리하면서 피어오른 연기에 대해 설명을 요구했는데 대사관 대변실이자 해군무관실 소속의 사사키 군이치가 영어를 잘했던 관계로 이들을 말빨로 쫓아냄.

3.

하지만 기자들의 난입은 정말 얌전했던 것이었고 잠시 후 매사추세츠 대로 쪽으로 분노한 미국 군중들이 몰려들기 시작. 분노한 군중들이 화염병을 만들어서 일본 대사관을 불사르려 했지만 50여명의 기마경관이 달려와 이들을 제지. 이때 기마경관들의 지휘관인 어느 대위가 "도쿄에 있는 그루 미국 대사를 잊지 마라!"며 절규하여 군중들은 겨우 진정함. 하지만 대부분 청년으로 구성된 군중들은 대사관 포위는 풀지 않고 "Treacherous attack", "Dirty Jap"따위의 욕을 퍼부음. 이 군중은 엄청난 숫자로 불어났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물러남.

4.

이후 미국 경찰들이 대사관에 들어와 비품과 물품을 엄밀히 검사하고 일부 물건을 압수. 12월 7일 저녁까지 대사관 직원들의 가족들도 모두 대사관에 수용됨. 대사관 안에 주거시설이 부족하여 갑자기 늘어난 대사관 안의 일본인들은 테이블이나 리놀륨 바닥 위에서 잠.

5.

대사관 주위는 미국 경찰, 관헌이 엄중히 감시, 호위하고 있었고 관저 입구 근처 방에 연락원 명목으로 미국 관리가 파견됨. 하지만 미국은 대사관 내부 일엔 간섭하지 않고 식량과 일용품 입수의 편의를 봐주었으며 라디오 청취도 허용하여 대사관은 외부와의 교통, 통신을 제외하곤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음.

6.

12월 10일, 일본과 미국 외교관들이 각각 교환될 것이란 정보가 전해져서 이제 살아서 귀국하거나 가족들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 체념하고 있던 일본인들은 크게 기뻐함.

7.

12월 29일, 대사관 직원과 그 가족 일동은 대사관에서 소개되어서 버지니아 주 포트스프링으로 이송됨. 그들은 미국 경찰의 엄중한 경호를 받았으며 워싱턴 D.C 주민들이 쏟아져나와 그들을 구경. 이후 그들은 특별 열차를 타고 정치가나 고급 관리들이 사용하는 고급 호텔인 홈스테드 호텔에 수용됨. 미국 정부는 호텔 전체를 일본인들을 수용하기 위해 징발함. 노무라 기치사부로 대사의 비서 겸 통역인 엔세키 마나부는 다음과 같이 회고.

"대사관에 일용품이 없어서 나는 대사관을 후위하고 있던 FBI의 로이 모건을 대동하고 슈퍼마켓에 물건을 사러 갔다. 얼굴을 아는 점원이 전쟁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싸움이다. 너와 나는 친구다'라고 말했다.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건을 사고 돌아온 엔세키 마나부가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려 하자 매니저가 일본인이냐?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면 여기서 나가라 라고 쪽지를 건네자 로이 모건이 그 쪽지를 찢어버림.

8. 

쇼와 육군에서 그 이후는 적지 않아 자세히는 알수 없지만 노무라 대사 등은 1942년 8월에 일본으로 송환. 구루스 사부로 대사는 공직 추방되었으나 노무라 대사는 이후 조지프 키넌 검사의 초청을 받아 데이고쿠 호텔에서 같이 식사를 하는 등 미국에서도 이 양반은 할만큼 했다는 것이 인정되었는지 대우가 좋았다 함.


대충 쓴 졸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진주만 공습 직전 루스벨트 대통령이 히로히토에게 친전을 보낸 일이 있었는데 히로히토는 이것을 진주만 공격 직전에야 받아봄. 왜냐? 육군성에서 미국에서 오는 모든 전보는 15시간 늦게 와야 한다는 방침을 정했기 때문.(...) -ㅅ- 이 원칙엔 루스벨트가 보낸 친전이라도 알 바 아님.

대약진운동은 국민당 농업정책보다 우월하다? 중국 근현대사

과거 리그베다, 얼마 전까지 나무위키에서도(?) 버젓이 적혀 있던 주장이

마오쩌둥 시절에 대약진으로 수천만명 죽긴 했지만 장제스 시절에도 비슷하게 죽었으며 마오쩌둥은 어디까지나 나라 잘 살게 하려다가 실수로 죽인 반면에 무능한 장제스는 나랏일에 손놓아서 죽었기 때문에 장제스가 질 나쁜 지도자다. 또한 마오가 대약진운동을 한 것도 위대한 마오쩌둥이 공산화 이후에 기근을 퇴치하고 중국에 지상락원을 만들어서 그 자신감으로 나온 것^^

아마 대약진운동 문서 등에 이딴 주장이 적혀 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여기서 당장 보이는 개소리 몇개 지적하면

1. 장제스가 나랏일에 손놓았다는 것은 맞지 않은 설명이고 실제론 국민정부는 농촌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노오오오력을 함.
(이에 대해서 언젠가는 글 씁니다. 언젠간 ㅠㅠ) 뭐 이건 굳이 마오빠의 문제라기보다는 실제로 197,80년대까지 서구학계 정설이 장제스는 지주와 자본가만 챙기느라 농민들이 죽던 말던 신경쓰지 않았다는 입장이긴 했음.(지금은 부정되는 추세)

2. 공산화 후에 기근 퇴치됐다는 것은 개소리고 오히려 농업생산량과 영양섭취량은 국민당 시절에 비해 폭락함.
(이것도 언젠간 글 씁니다. 정말로 ㅠㅠ)

뭐 이정도 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1931년 장강 대홍수 당시에 사람이 많이 죽은 것은 사실이란 말입니다. 장제스의 정책 실패(사실 대공황 관련해서 장제스의 정책이 문제시되는 경향도 있지만)나 무능이 원인이라기보다는 당시 막장인 중국 상황이 최대 원인이긴 해도요. 물론 장제스는 당시 최종 책임자로써 비난을 피해갈 수 없긴 합니다.

자꾸 잡소리 길어지는데 1920년대~1931년 사이에 중국 농촌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해보겠습니다.

1928년, 1929년 양년에 걸쳐 대한재(大旱災) 발생 - 이재민 9400만(...)
1931년 장강대홍수 - 20여개 성에 걸친 피해, 그 중에서 절강, 호남, 호북, 강서, 안휘, 하남, 산동의 피해가 제일 컸으며 이 7개 성에서만 2억 5500만 무의 전답이 유실, 857만 호가 재해를 입었는데 이는 전 중국 농민의 29%에 해당. 1931년 한해의 농산물 피해만 4억 5천 700만 원 어치. 극심한 기근으로 인해 일부 지역에서 식인 사례가 보고. 1930년과 1931년 양해의 수해 피해는 총 20억원.

결과적으로 1927년~1935년까지 1600만명 사망.

참 가슴 아픈 일이긴 한데 위에서 장총통보다 우월하다고 서술된 모주석은 뭘 했더라?

"마오쩌둥이 추진했던 대약진운동에 뒤따른 기근 동안 생긴 인명 손실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대표적인 반공학자 리처드 워커가 추정하기로는 100만명~200만명이었지만 1996년의 연구에서는 그 수를 3000만명이라고 한다. 중국 안에서 이용 가능한 다큐멘터리 자료를 바탕으로 현재 파악되고 있는 그 대기근의 실상은 1960년대의 가장 열렬한 반공주의자들이 언급한 것보다 훨씬 참담하다."
-로스 테릴, 마오쩌둥 평전.
서문 33페이지.

8년간 재해로 1600만명 사망한 것과 국가사업으로 2년만에 최소 3천만(요즘엔 5천만명 설도 있다지요?) 날려버린 것 중에서 후자가 우월하다는 것은 무슨 심산일까 싶다는 것이.... 오늘 글에서 하고 싶은 말 되겠습니다.







남의사가또 싶은 개잡글이 나오고 말았는데 뭐 그렇습니다... 그렇다고요....
이 쓰레기같은 글에 대한 태클과 비판과 조리돌림을 환영합니다.


만약 인쇄되었다면 화장실 휴지 외에 달리 쓸 길이 없을 것같은 졸필입니다만 뭐 참고문헌이랄 것은 있습니다. 참고문헌들에 대한 모욕이긴 합니다만.

마오쩌둥 평전, 로스 테릴
장제스 일기를 읽다, 레이 황
해방의 비극, 프랑크 디쾨터
중국혁명사, 서지영
1930년대 산서성 토지촌공유제의 배경과 성격, 김지환
1930년대 농촌 위기와 남경국민정부의 농업정책, 강경낙
1920~1930년대 난징국민정부의 농촌정책, 장쑤성 남부를 중심으로
남경정부시 국가주도하 국민경제 건설, 강명희

언제 한번 쌍십협정 각잡고 써야 하는데 잡상

자료부터 좀 수집해야할듯.

그리고 중국 당시 토지 문제도. 자료를 찾아보니 천차만별인듯. 존 벅처럼 중국 농촌엔 불평등 따위는 없었다는 주장부터 중국 농촌의 90%가 지주것이었단 통계도 있고. 골아프다.

다만 중국 지주들이 프로이센 융커나 러시아 대지주들과 같은 확고부동한 지배계층이 아니었단 쪽은 맞는 듯 하고 무엇보다도 무상몰수 무상분배가 답이라는 마오 주장은 개소리.

잡상 잡상

1. 휴가가 얼마 안 남았다. 도키도키

2. 휴가나갔던 사람들이 돌아와서 내일부터 좀 숨 트일 듯.

3. 육회가 먹고 싶다.

4. 부대찌개가 먹고 싶다.

5. 마끄도나루도가 먹고 싶다.

6. 술이 마시고 싶다.

7. 어젯밤부터 갑자기 치통이 심해지다가 점심 즈음에 멀쩡해짐. 뭐였을까?

8. 춥다. 너무 춥다 ㅠㅠ

9. 온천에 가고 싶다.

10. 여행을 가고 싶다.

뭔가 요구사항만 많은 잡상인듯.

메이지 천황은 영친왕을 총애했는가? 기타 근현대사

예전부터 나온 떡밥으로... 일본에 끌려갔었던 영친왕이 정작 메이지로부터 총애를 받았었다는 둥 하는 말이 있었는데 허버트 빅스의 히로히토 평전을 보다가 흥미로운 부분 발견해서 좀 발췌해봅니다.

"히로히토가 열살이 될때까지 10년동안, 아버지인 요시히토 황태자는 황손어전과 같은 담장 안에서 몇분 안되는 거리에 살며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했다. 지치부노미야는 후에 곧잘 아버지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곤 했지만, 할아버지인 메이지 천황에 대해서는 얘기하는 일이 없었다. 지치부노미야가 기억하는 한 메이지 천황은 손자들을 자상하게 대하는 법이 없었으며 손톱만큼도 애정을 표하는 일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한 번도 여느 가정집의 할아버지처럼 손자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고 할 만큼 귀여워해주지 않았다. (...) 나는 한 번도 할아버지의 육성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

다카(전위대주:스즈키 간타로의 아내 아다치 다카, 당시 22세)의 말에 따르면, 메이지 천황은 손자들과 만나는 것을 극단적으로 피했으며 그들의 생일 외에는 거의 만나는 일이 없었다. 설령 만난다 해도 겨우 2,3분에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의 화기애애한 만남이라고 하기보다는 군주를 알현하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메이지 천황은 군복 차림으로 책상 앞에 서서 어린 손자들의 인사를 받고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그리고 손자들은 곧바로 물러가야 했다. 손자들에게 애정을 표한다고 해봐야 고작 장난감을 선물하는 정도였다."

히로히토 평전, 허버트 빅스, 삼인, 47페이지.


이 서술 요약:메이지는 손자들 따위 아오안.

"메이지 천황은 고종을 퇴위시키고 황위 계승자인 황태자 이은(전위대주:영친왕)을 도쿄에 거주케하자는 이토의 안에 찬성했다. 이은을 데려오는 것은, 공식적으로는 교육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한국 황실이 반일 행동을 그만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1907년 12월 15일, 열살 짜리 이은은 이토의 손에 이끌려 황손어전을 방문하여, 히로히토, 지치부노미야, 다카마쓰노미야를 만났다. 그 후 2년 넘게 메이지 천황은 이은의 보호자가 되어, 여태까지 자신들의 손자들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정성을 쏟으며 선물을 하사했다."

????

그 떡밥이 레알이었나? 앞으로 더 찾아봐야 할듯.



그나저나 오늘 밸리에 나말고 글 올리는 사람이 없어서 이거 도배로 내려갈 것 같지만(...) 일단 올리고 봅니다.

일본 제국은 파시스트 정권이었나? 파시즘 연구

드디어 이 글.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논쟁적인 부분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이 부분에 대해선 제가 소장하고 있는 2권의 히로히토 평전을 비롯하여 일본제국사를 좀 더 공부하고 기타 잇키 평전 등도 읽고 하면서 차차 보충을 하며 천천히, 더 깊게 논의해야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단정적으로, 또는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만 공부를 시작하는 차원에서 팩스턴의 견해를 한번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양차 세계대전 사이 일본의 파시즘에는 두 가지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다. 하나는 지식인층과 국가 부흥 운동 주도자들이 일으킨 '아래로부터의' 영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인데, 이들은 파시즘과 매우 유사한 성격의 강령을 지지하며 운동을 시작했으나 정권의 탄압으로 궤멸되었다. 또 하나의 접근은 국가 기관들에 의한 '위로부터의' 조치에 초점을 맞춘다. 이 접근 방식은 1930년대에 확립된 팽창주의적이며 군사화된 독재 정권이 뚜렷한 "천황제 파시즘"의 성격을 갖추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파시즘, 로버트 팩스턴, 교양인, 443페이지.

일본 제국이 파시즘이었다고 보는 사람들.

"일부 학자들은 1931년에서 1940년 사이에 일본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군국주의적 팽창주의 독재를 파시즘이라고 보았다. 천황의 권위, 대기업, 고위 관료, 군부가 계급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동맹 세력을 형성하고 비상 통치 체제를 만들어 지배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파시즘, 로버트 팩스턴, 교양인, 446페이지.

1. 2차 세계대전 동안 연합국 선전원.

2. 일본학계. 의외지만 일본 학계의 동향은 일본 제국을 소위 '위로부터의 파시즘'으로 분류하고 있다.

일본 제국 내부의 파시즘 움직임

1. 기타 잇키의 1919년 일본 개조 법안 대강 발표와 기타 이시의 영향을 받은 벚꽃회, 혈맹단 등의 비밀결사 조직. 이들은 결국 1936년 2월 26일 2.26사건을 일으킴.

2. 정당정치를 싫어한 고노에 후미마로 공작의 내각이 1937년 6월에 출범.

3. 1942년 선거에서 나카노 세이고의 동방회가 3%를 득표.

4. 파시스트들로 구성된 쇼와연구회의 성립.

하지만 위의 움직임들을 반박할 수 있는 사건들.

1. 기타 잇키는 2.26사건 진압 후 처형됨.

"이렇게 해서 천황 자신이 일본의 '아래로부터의 파시즘'에 직접 종지부를 찍어버렸다."
파시즘, 로버트 팩스턴, 교양인, 445페이지.

2. 고노에 후미마로는 쇼와연구회의 조언은 들어도 사회연대주의와 반자본주의는 거부.

3. 나카고 세이고는 가택연금.

"...요컨대 일본 정부는 파시즘을 취사선택해 받아들인 셈이었다. 국가 행동에 의한 '선택적 혁명'을 통해 조합주의적 경제 조직과 대중 통제의 수단을 일부 취하는 한편, (모방한 것이기는 하지만) 명백하게 파시즘 운동의 성격을 띤 무질서한 대중 행동주의는 억압했던 것이다."
파시즘, 로버트 팩스턴, 교양인 446페이지.

팩스턴의 결론
"제국주의 일본이 파시즘을 모방했으며 파시즘의 특성을 여럿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일본식 파시즘은 단일 대중 정당이나 대중운동이 없는 상태에서 통치자들에 의해 실시되었으며 유럽식 파시즘의 영향을 받은 일본 지식인들을 무시하거나 억압했다. "마치 무솔리니와 히틀러를 타도한 결과로 유럽에서 파시즘이 확립된 것과도 같았다."

(...)

제국주의 일본은 (유럽 파시즘의 명백한 영향과 독일, 이탈리아와의 일부 구조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이들 두 국가처럼 결정적인 문제에 직면하지는 않았다. 일본은 혁명의 위협에 직면하지도 않았고 대외적 패배나 대내적 분열을 극복할 필요성도 없었다.(지배층이 그런 사태를 두려워했으며 아시아 침공을 방해하는 서양을 증오했던 것은 사실이다.) 제국 정권은 파시즘 특유의 대중 동원 기술을 사용했지만, 지도자들과 경쟁을 벌이는 공식 정당이나 자생적 대중 운동은 존재하지 않았다. 1932~1945년의 일본 제국은 파시즘 체제라기보다는 국가가 지원하는 상당 수준의 대중 동원을 가미한 팽창주의적 군부 독재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공산주의의 파시즘 정의 파시즘 연구

"프롤레타리아를 억누를 수 있는 국가의 합법적 수단이 불충분하다고 판단되었을 때, 대 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와 싸우는 데 동원한 도구."
-1924년 7월 코민테른의 정의.

"가장 노골적인 테러리즘 독재이며 금융자본 가운데 가장 반동적이고 가장 국수적이며 가장 제국주의적인 세력."
-스탈린 집권 시기 이후로 정립된 정의.

어디까지나 참고용으로만 한번 보는 것이 이롭다.

링크수 100돌파 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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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작고 귀여운 블로그지만 성장하고 있습니다. 분발하겠습니다.

결국 싸지방 무료화 군대 잡담

대신 독점화가 심해질듯

스탈린 정권과 히틀러 정권의 비교 파시즘 연구

한때 흥했던 전체주의의 이론에 따르면 스탈린이나 히틀러나 그놈이 그놈이란 주장이 있는데 그걸 떠나서 두 체제의 특성, 통제 방법, 범죄성의 차이에 대해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는가 하는 것은 나무위키에서도 그렇고 오랜 떡밥이었는데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히틀러 정권과 스탈린 정권의 비교

공통점

1. 일단 체제의 탄압 대상이 되면 좆된다. 

"...두려움에 떨면서 한밤의 기습을 기다리거나 수용소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상황은 양쪽 체제 모두 거의 흡사했다."

2. 법은 '더 높은' 명령에 종속. 소련은 계급, 독일은 인종.

3. 지도자가 카리스마가 있다.

차이점

1. 정권의 목표와 사회 동학의 차이

히틀러:아오 귀족놈들에 군부놈들에 자본가놈들에 처리할거 존나 많네. - 당, 관료, 자본가, 교회 등의 알력과 협력의 관계가 형성
스탈린:우리 사회엔 볼셰비키 말고는 없지비. - 전통적 사회 경제 권력? 그거 먹는건가염? 

"기존 보수 세력과 권력을 적어도 어느 정도는 공유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파시즘 독재는 그 기원, 발달 단계, 행사 과정에서 스탈린 독재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2. 최종목표의 차이

히틀러:독일 민족의 레벤스라움
스탈린:모든 것의 보편적 평등.

3. 급진화의 비교

"파시즘 급진화는 스탈린주의의 급진화와 달랐다. 파시즘은 폭력을 독특한 방식으로 이상화하여 지배 인종에 어울리는 미덕으로 삼았다. 게다가 스탈린의 명령으로 숙청을 시행했던 관리들이 자기들은 보호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해도, 소련 체제에는 나치즘에 내재되어 있던 경쟁이라는 요소, 다시 말해 당 동형 조직과 기존 엘리트층이 지도자의 총애를 받기 위해 벌였던 경쟁이 없었다.(전위대주:물론 소련의 여러 기관과 세력의 알력은 있었습니다만 동형 조직과 표준 국가의 싸움은 아니었죠.)

(파시즘) 급진화의 핵심은 팽창주의 전쟁이었다. 파시즘 이탈리아가 급진화되었다고 본다면, 급진화가 가장 많이 이루어진 것은 장소로는 아프리카 동부의 점령지였고 시기로는 이탈리아 파시즘의 마지막 광기가 분출되던 때였다. 나치 정권은 소련 말살 전쟁과 더불어 급진화를 극한 너머까지 밀어붙였다. 나치 관리들은 총력전을 벌여야 하는 특수 상황에서는 1940년 서유럽 침공 당시보다 훨씬 더 폭력적인 행위도 요인된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처음에는 체제의 적들, 다음으로는 파시즘의 보수파 동맹 세력들, 마침내는 독일 국민들까지 상대로 하여 이성을 잃고 완전 몰살을 기도하며 무차별 폭력을 휘둘렀다."

4. 권력 계승의 문제와 카리스마의 차이.

히틀러:카리스마에 대한 지나친 의존으로 권력 계승 자체가 불가능해보임. 실제로 모든 파시즘 정권은 성공적 권력 계승 사례가 없음. 권력 계승이 필요한 단계까지 가지도 못했지만 -ㅅ-
스탈린:카리스마가 강하긴 했으나 그 카리스마와 이미지를 공산당과 공유. 덕분에 스탈린이 죽고도 공산당은 권력 투쟁은 겪어도 공중분해되진 않고 새로운 지도자와 체제로 이어짐.

5. 강령 문제

전의 말을 바꿀 때

히틀러:바꿨다. 꼽냐? 내가 설명할 이유 있음? - 설명 필요 x
스탈린:어찌저찌했던 간에 나는 맑스-레닌 주의를 승계한거야! 이러이러 한거다! - 이데올리기에 합치된다는 합리화를 해야 함.

2. 어느 쪽이 더 범죄적 정권이었나?

그리고 매우 민감한 문제인, 어느 정권이 더 범죄적인 정권이었나 하는 문제에 관한 팩스턴의 견해.

"스탈린의 공포정치를 히틀러의 경우와 동등하다고 보는 이들은 1931년 기근을 가장 강력한 근거로 들어 이 기근이 우크라이나인들을 겨냥한 대량 인종 학살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크라니아 기근은 (범죄에 가까운 방치의 결과임은 사실이지만) 러시아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히틀러와 스탈린이 똑같다고 보는 견해에 반대하는 이들은 두 체제의 근본적 차이를 지적한다. 스탈린은 피해망상에 젖어 '계급의 적' -마음만 먹으면 바꿀 수 있는 후천적 조건에 붙인 딱지였다.- 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였는데, 희생자 대부분은 독재자 자신의 동포 시민들 중 주로 성인 남자들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히틀러가 제거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인종의 적'이었으며 이 조건은 갓난아기라 해도 피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히틀러는 묘비와 문화유산을 포함한 민족 전체를 말살하고자 했다. 이 책에서는 양쪽 체제가 모두 악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여성과 아동에게조차 구제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체했던 나치의 생물학적 인종 대학살을 훨씬 더 강하게 비판한다."

3. 둘다 같은 전체주의 아니냐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

1950년대 전체주의 이론가들:히틀러나 스탈린이냐 그냥 전체주의자들 아니냐?

1956년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와 카를 프리드리히:폭력적 경찰통제국가+공식 이데올로기 기반의 일당 독재국가+통신수단, 무력, 경제조직에 대한 권력 독점 국가=둘다 같네.

1960년대 미국 신세대:야! 너 공산주의 깔라고 나치랑 공산주의랑 등치하는거지? 이 냉전주의자야!

서독:무슨 소리! 히틀러는 자본주의자라서 문제였던게 아니라 자유를 증오한 사람이어서 문제였던 거라고! 자본주의와 나치의 결탁을 주장하는 맑시스트들의 소리는 틀렸다!

(소련이 퇴갤하셨습니다.)

1990년대 전체주의 이론가들:이 새끼들이! 공산주의 빨던 놈들 다 어디갔냐? 나치나 빨갱이냐 같다는거 증명 안됐냐?

이러한 움직임에 대한 팩스턴의 견해

"전체주의 이론은 완벽한 통제에 대한 열망과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용한 수단에 초점을 맞추어 나치즘(과 스탈린주의)을 설명하는 것을 취지로 한 이론이다. 나치즘과 공산주의가 통제 방식에서 유사점이 많다는 것은 사실이다. (...) (나치와 볼셰비키의 차이점 설명-위의 비교 참조.) 전체주의 이론은 나치 통치 체제의 이 같은 근본적 특성(전위대주:나치와 기본 보수층의 알력과 협력)을 간과하여 결과적으로 히틀러가 자신들을 파괴하려 했다는 전후 엘리트층의 주장을 강화해주는 경향이 있다.(히틀러가 전쟁 말기에 최후의 재앙을 맞아 엘리트층까지 파괴하려 한 것은 사실이지만.)

파시즘은 개발 독재인가? 파시즘 연구

이제 막바지에 이르는 파시즘 포스팅. 앞으로 스탈린주의와 히틀러주의의 비교, 일본제국은 파시즘 정권이었는가? 유럽의 파시스트들 3편, 미국의 파시즘 편 정도만 연재하면 한동안 파시즘 연구는 안 올라올듯 합니다.

"...영향력있는 또 하나의 연구 흐름은 파시즘을 강제 저축과 노동력 통제를 통해 산업 성장을 촉진시키려는 목적으로 세워진 개발독재라고 본다. 이 해석을 발의한 학자들은 이탈리아의 경우를 주된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이미 공업 대국의 위치에 올라 있었지만 독일 역시 1918년의 패전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는 막대한 과업을 완수하려면 국민들을 통제할 필요가 절박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해석에 따르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파시즘이 합리적인 경제적 목표를 추구했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심각한 오류를 범한다. 히틀러는 정치적 목표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경제를 내던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무솔리니의 경우조차 경제적 합리성보다 위신을 훨씬 더 중시했다. 무솔리니가 1926년에 리라화 가치를 지나치게 절상하고 1935년 이후로는 지속 가능한 경제발전보다 팽창주의 전쟁이라는 위험을 선택한 것이 전형적 사례다. 이탈리아 파시즘이 정말로 개발독재를 목표로 삼았다면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고 보아야 한다. 이탈리아 경제가 1920년대 무솔리니 치하에서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 성장률은 1914년 이전과 1945년 이후가 더 높았다. 

파시즘을 개발 독재로 보는 이론은 -대중 동원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고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역사적 전제조건도 전혀 없는- 제3세계 권위주의 통치 체제까지 모조리 '파시즘'이라고 낙인찍어버리는 아주 이상한 결론에 이르고 만다."

파시즘, 로버트 팩스턴, 교양인
470~471페이지

어찌 너무도 많은 사례에 대한 대답이 될듯.
그리고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자는 다 파시스트라고 주장하는 자들에게도.
심지어 공산주의의 무결점을 주장하기 위해 스탈린, 마오쩌둥, 덩샤오핑에 대해서도 사실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공산주의 코스프레를 하는 파시스트라고 하는 자들이 있었으니 말 다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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